우리는 종종 어제보다 더 성실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불안해합니다.

성실함은 분명 미덕이지만, 때로는 그 성실함이 더 큰 가능성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가장 안락한 족쇄가 되기도 합니다.

샘 올트먼의 글에서 마주한 문장은 제게 사고의 단위를 바꾸게 했습니다.

"여러분이 성공의 척도로 삼는 것이 무엇이든—돈, 지위, 세상에 미치는 영향 등—거기에 '0'을 하나 더 붙이는 데 집중하는 것이 유용합니다."(Sam Altman)

이 문장은 단순히 '더 많이'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어떤 차원'에서 살 것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10%의 개선이 아닌, 삶의 자릿수를 바꾸는 '규모의 사유'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 개선 게임 vs 창조 게임

세상을 바꾼 혁신가들의 궤적을 좇다 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제프 베조스, 일론 머스크, 피터 틸. 이들은 기존의 궤도 위에서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달리는 경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궤도 자체를 바꾸거나, 아예 새로운 궤도를 만드는 선택을 했습니다.

삶에는 두 가지 종류의 게임이 있습니다.

하나는 '개선 게임(Improvement Game)'입니다.
기존의 규칙과 환경 안에서 더 열심히, 더 효율적으로 일하여 성과를 10% 향상시키려는 노력입니다. 이미 있는 차선 위에서 속도를 높이는 것이죠. 이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지만,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합니다.

다른 하나는 '창조 게임(Creation Game)'입니다.
기존의 규칙을 깨고 완전히 새로운 판으로 이동하여 결과의 '자릿수'를 바꾸려는 시도입니다. 10% 개선이 아닌, 10배 성장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10배 성장이 10% 개선보다 오히려 명쾌할 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10%를 개선하려면 현재의 내 하루, 굳어진 습관, 이미 맺어진 관계라는 촘촘한 제약 조건 위에서 아둥바둥해야 합니다. 하지만 10배 성장을 목표로 하면, 이 모든 제약을 지우고 백지상태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기존 방식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니, 완전히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전제가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2. 시냇가에서는 파도를 탈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창조 게임으로 진입할 수 있을까요?
단순히 "생각을 크게 하라"는 조언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내가 발 딛고 있는 '터의 크기'를 가늠해보는 냉철한 현실 감각입니다.

시냇가에서는 파도를 탈 수 없습니다. 파도를 타려면 바다로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믿으며 성실함을 최고의 무기로 삼습니다. 하지만 상한선이 명확히 그어진 구조 안에서, 성실함은 종종 우리를 배신합니다. 아무리 밤을 새워 일하고 주 100시간을 투입해도, 애초에 결과값이 100으로 고정된 게임판 위라면 우리의 노력은 증발해 버리고 맙니다. 이는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그저 그곳이 '더하기의 법칙'만 통용되는, 구조적으로 폭발적인 성장이 불가능한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노력은 결과를 더하지만, 구조는 결과를 곱합니다.

우리가 서 있는 '터'가 어디냐에 따라 노력의 결실은 자릿수가 달라집니다. 10배의 성장을 원한다면 자문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나의 노력이 덧셈으로 쌓이는 곳에 있는가, 아니면 곱셈으로 폭발할 수 있는 곳에 있는가.

구조적으로 10배의 성장이 불가능한 곳에서 성실함만으로 승부하려는 것은, 어쩌면 가장 슬픈 형태의 노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3. 나의 실험: 자본의 바다에서 배운 것들

저는 이 ‘0 하나 더 붙이기 사고방식'을 자본의 영역에서 실험해 보았습니다. 지난 2년간 카바나(CVNA) 투자를 통해 50배의 수익을 거둔 경험은, 이 사고방식을 몸소 체험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애플과 같은 이미 완성된 우량주에 머물렀다면, 2년 만에 자릿수가 바뀌는 수익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제가 한 일은 남들보다 더 부지런히 공부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산업의 구조가 재편되는 변곡점, 즉 거대한 파도가 칠 수 있는 '바다'로 나가는 선택을 했을 뿐입니다.

물론, 바다에 나간다고 해서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클로(OKLO)' 투자 실패는 10배라는 욕망만 앞선 채 '환경(시기)'을 읽는 차분함과 냉철함이 부재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AI 시대의 전력 병목'이라는 거시적 논리는 완벽해 보였고, 제가 선택한 방향은 분명 시냇가가 아닌 바다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간과한 것은 그 바다의 '기상도'였습니다. 카바나를 매수할 당시에는 모두가 파산을 걱정하며 떠난 고요한 바다였지만, 오클로를 바라보던 2025년 가을은 달랐습니다. 종목 토론방에서는 "사면 오르는 돈 복사기"라는 환호성이 가득했고, 너도나도 장밋빛 미래만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미 소음이 가득한 파티장(버블)에 뒤늦게 도착해놓고, 나만 아는 기회라고 착각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10배의 성장을 위해 바다로 나가는 것은 '필수 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을요. 방향이 옳아도 시점이 틀리면 배는 뒤집힙니다. 0을 하나 더 붙이는 삶은 단순히 무모한 도전이 아니라, 거친 파도 앞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때를 기다리는 냉철함까지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4. 당신이 꿈꾸는 이도류는 무엇인가요

이 '자릿수 바꾸기'는 비단 자본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의 잠재력 또한 '어떤 게임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값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여기, 스스로 '기저율(Base Rate)'을 깨뜨리고 새로운 지평을 연 사람이 있습니다.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입니다.

그는 투수와 타자 중 하나를 선택해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하는 '개선 게임'을 거부했습니다. 대신 현대 야구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투타 겸업(이도류)'이라는, 아예 차원이 다른 '창조 게임'을 선택했습니다. 모두가 "하나에 집중하지 않으면 둘 다 실패할 것"이라며 평균의 법칙을 들이밀 때, 그는 외부의 통계가 아닌 내면의 가능성을 응시했습니다.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면 못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뭐든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단정 짓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그의 경쟁 상대는 야구 역사의 전설들이나 동시대의 라이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미래에 가능하다고 여겨질지도 모를 가능성’과 경쟁했습니다. 그가 보여준 것은 단순히 두 가지를 다 잘하는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야구선수란 이러해야 한다'는 카테고리의 정의 자체를 바꾸어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이 나이엔 안 돼", "이 분야에선 이게 한계야"라는 세상의 기저율에 갇혀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그어놓은 한계선을 지우고 나만의 '이도류'를 꿈꿀 용기가 있는지 오타니를 통해 돌아봅니다.

마치며

'0을 하나 더 붙이는 삶'은 단순히 더 많은 것을 가지겠다는 탐욕의 선언이 아닙니다. 내 삶의 그릇을 키우는 ‘존재의 확장’에 가깝습니다.

선형적인 개선의 굴레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생각의 틀을 깨고 새로운 차원의 질문을 던지는 일. 그것이 우리를 시냇가가 아닌 바다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열심히 노를 젓기 전에, 잠시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봅니다.
당신은 지금 10%의 개선을 위해 시냇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나요,
아니면 자릿수를 바꾸기 위해 바다로 나갈 준비가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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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을 하나 더 붙이는 삶

성실함은 때로는 더 큰 가능성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가장 안락한 족쇄가 됩니다. 10%의 개선이 아닌, 삶의 자릿수를 바꾸는 '0 하나 더 붙이기' 사고방식. 시냇가에서는 절대 파도를 탈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