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있어도, 관계 속에

처음엔 마음에 들어오지 않던 작품이 다가오는 순간들. 동경하던 사람의 시선이 궁금해서 며칠을 다시 찾아가 바라본 그림이 전시장을 떠난 뒤에도 자꾸 떠오릅니다.

홀로 있어도, 관계 속에

프리즈에는 작품이 참 많습니다. 하나하나 다 보려고 하면 지치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이번에는 페어에서 한 작품이라도 내 것이 되면 충분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시장을 떠난 뒤에도 계속 떠올리고, 조금 더 알고 싶어지는 작품 하나요. 이번 프리즈에서는 오랫동안 동경해온 사람의 시선을 따라 그런 작품을 만났습니다.

동경하던 시선을 따라

첫날, 오랫동안 동경해온 악셀 베르보르트 갤러리 부스부터 찾아갔습니다. 갤러리를 운영하는 보리스 베르보르트는 한 작품 앞에 오래 서 있었어요. 한참을 바라보더니 휴대전화를 꺼내 세심하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는 작품을 보는 그 모습을 담았습니다.

사진을 찍고 나서 보리스가 옆에 있던 제게 말을 건넸습니다. 대단하지 않느냐고, 정말 굉장한 작품이라고요. 세계적인 갤러리스트와 같은 작품 앞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페어가 주는 선물이 아닐까 합니다.

보리스가 말한 작품은 중국 작가 스지잉(Shi Zhiying)의 그림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어요. 다만 보리스가 그렇게 바라보는 작품이라면 제가 아직 못 보고 있는 무언가가 있겠지 싶었어요. 어떤 점이 그토록 오랫동안 보리스의 시선을 가져갔는지, 그 시선을 조금이라도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닮아가고 싶었고요.


돌 곁의 넓은 공간

다음 날, 또 그다음 날에도 가장 먼저 악셀 베르보르트 부스로 찾아가 같은 작품을 오래 바라보았어요. 그러다 마침내 그 그림이 제게도 들어왔습니다.

일상적인 물체 하나가 특별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캔버스의 모든 요소가 그 하나를 빛나게 하려고 놓여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보다 보니 반대 같기도 했습니다. 그 물체 하나 때문에 주변의 공간까지 달라 보이는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환경이 물체를 아름답게 하는지, 물체가 환경을 아름답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물체와 주변 공간이 관계를 맺고 있는 상태로 느껴졌어요. 그리고 이상하게, 오래 보고 있으면 마음이 놓였습니다.

이우환의 관계항이 떠올랐습니다. 돌과 철판을 보면서도 그 사이의 거리와 주변 공간을 함께 생각하게 하는 작업들. 이우환의 저서 『여백의 예술』에도 여백을 설명하는 인상적인 대목이 있습니다. 큰 북을 치면 소리가 주변으로 울려 퍼지는데, 이우환은 북을 포함해 그 울림이 미치는 공간을 여백이라고 말합니다. 북과 떨어져 있는 자리에도 울림은 닿습니다. 지금 그 그림을 다시 생각하면서도, 돌 하나와 그 주위의 넓은 공간을 함께 떠올리게 됩니다.


비어 있음 속의 충만함

집에 돌아와 스지잉을 찾아보다가, 2025년 악셀 베르보르트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All Things in Kinship》의 서문을 보게 됐습니다. 비평가 Shen Qilan이 쓴 글은 이런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돌과 돌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가?
중력이다.

서문은 돌에서 거울 속 반영으로 옮겨가는 관람자의 눈길을 따라갑니다. 무게와 색은 서로를 불러내고, 선과 형태는 시선을 이끌어 사물들 사이에 리듬을 만듭니다. 비평가는 사물들이 맺는 보이지 않는 관계와 친밀함을 중력에 빗대고 있습니다.

중력이라는 말이 좋았습니다. 떨어져 있는 것들 사이에도 무언가가 있다는 것. 제가 본 그림에서도 돌 하나는 거울 속 반영과, 또 주변 공간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았어요. 비어 있는 공간이 그저 빈 곳은 아니었어요.

빈 곳은 꼭 채워야만 충만해지는 걸까요. 여백에 다른 사물을 더 그려 넣지 않아도 시선은 그 사이를 오갈 수 있다는 걸 작품은 보여줬어요.

서문에 나온 공영(空盈), ‘충만한 비어 있음’이라는 말을 그런 감각으로 이해해봅니다. 비어 있는 공간에도 관계는 있을 수 있다는 것.


고독도 아름다울 수 있구나

서문에 인용된 작가의 말도 마음에 남았습니다.

고독한 돌 하나도 관계 속에 존재한다.
외로운 파도 하나도 만물과 연결되어 있다.

매년 이맘때면 우울이 찾아오곤 해요. 작품을 감상할 때는 그 마음과 그림을 연결해 생각하지 못했어요. 오래 바라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는데, 인용된 작가의 말을 읽고 나서 위로받는 기분이었어요. 나도 혼자가 아니구나.

돌은 홀로 있는 모습 그대로도 관계 속에 있었습니다.
홀로 있음과 관계 맺음이 함께 공존하는 아름다움.

그렇게 생각하니 고독도 참 아름다울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물체의 존재감과 주변 공간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갔는데, 이제는 그 안의 고독까지도 다르게 다가옵니다. 알아갈수록 작품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사람과 작품 사이의 중력

보리스가 작품 앞에 오래 서 있던 모습도 다시 떠오릅니다. 그 시선이 궁금해서 저는 같은 그림을 며칠 동안 다시 찾아갔고, 집에 와서는 작가를 찾아보고 전시 서문을 읽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 오랜 화두들을 만났고, 요즘의 마음도 조금 들여다보게 됐어요.

사람과 작품 사이에도 중력 같은 것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동경하던 보리스의 감탄에서 시작된 관심이 저를 그 그림 앞으로 거듭 데려다 놓았으니까요. 처음에는 제게 들어오지 않았던 작품이, 전시장을 떠난 지금도 이렇게 생각할 것을 건네고 있습니다.

지금 그 그림을 떠올리면 돌 곁의 넓은 공간도 함께 생각납니다. 그 안에 홀로 있는 모습까지 아름답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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