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의 한가운데입니다.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여름을 하나쯤 마음에 품고 살아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독 햇살이 뜨거웠고 모든 것이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런 계절 말입니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바로 그런 여름의 풍경을 스크린에 오롯이 담아냅니다. 1983년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나른한 오후와 싱그러운 과일, 그리고 풋풋한 사랑의 설렘과 아픔까지.
하지만 여름은, 그리고 그 여름의 모든 순간은 영원하지 않기에 더 애틋하고 특별한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토록 아름답지만 덧없는 순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여기, 스쳐 가는 순간을 영원에 새기는 과정을 담은 아름다운 영화가 있습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찰나의 경험을 어떻게 평생을 지탱할 기억으로 완성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태도 - 환대 - 애도’라는 세 개의 문을 통해 보여줍니다.
1. 태도: 감정을 온전히 느끼기
어떤 순간을 평생의 기억으로 만들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영화는 그 순간의 감정을 섣불리 이름 붙이거나 재단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느끼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사랑이 끝나고 열병 같던 시간이 지나간 자리. 영화 말미, 아버지는 아들의 경험을 '첫사랑'이나 '동성애' 처럼 세상이 붙여놓은 이름표 안에 가두지 않습니다. 그는 아들의 감정 세계에서 사회가 붙인 딱지들을 조심스럽게 떼어냅니다. 아버지의 눈에 비친 것은 특정 정체성의 사랑이 아니라,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온 마음을 다해 이끌리고 그로 인해 기쁨과 고통을 겪는 하나의 순수한 우주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지켜내라고 건네는 것은 관계를 한마디로 재단할 어떤 이름표가 아닙니다. '온 마음을 다해 무언가를 느끼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 그 자체입니다.
영화는 이 사려 깊은 태도를 대사로만 그치지 않고 하나의 영화적 언어로 완성해냅니다. 카메라는 관객에게도 같은 태도를 요구하는 듯, 좀처럼 인물에게 가까이 다가서거나 서둘러 개입하지 않습니다. 그저 한 걸음 떨어진 채로, 싹트는 감정의 미세한 떨림과 머뭇거림, 속삭임들을 묵묵히 그리고 오래도록 지켜볼 뿐입니다. 내용과 형식이 조화를 이루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영화의 태도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환대: 감정이 머물 공간 만들어주기
그렇게 한 인간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태도는 구체적인 환대의 모습으로도 나타납니다. 감정이 살아남기 위해 안전한 집이 필요하다면, 엘리오의 부모님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을 지어줍니다.
보통의 부모라면 섣부른 위로를 건네거나 어색한 침묵으로 상황을 외면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영화 속 아버지는 아들의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을 택합니다.
이별 후 상심에 빠진 아들. 아버지는 소파에서 아들과 마주앉아 아들의 남은 생을 지탱할 소중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사랑을 판단하거나 규정하는 대신,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유대 자체로 먼저 인정해줍니다. 단순한 위로를 넘어 한 인간의 감정과 경험 전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보듬어주는, 이상적인 형태의 환대를 보여줍니다.
“어떤 것도 느끼지 않기 위해, 스스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만들다니.
이 얼마나 끔찍한 낭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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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네 안에는 슬픔이, 고통이 있겠지.
그 감정을 죽이지 마라. 네가 느꼈던 그 기쁨까지도 함께.”
아버지의 이 말은, 엘리오가 자신의 감정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그리고 감독은 이 따뜻한 선물이 건네지는 순간을, 더없이 따스하고 섬세한 선율로 감싸 안습니다. 아버지의 조언이 나지막이 이어지는 동안 라벨의 '어미 거위' 모음곡이 흐릅니다. 곡 특유의 부드럽고 동화적인 선율은 아버지의 진중한 말이 아들에게 부드럽게 스며들도록 돕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영화가 끊임없이 경계를 허무는 작품임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감독이 '어미 거위'라는 제목의 곡을 '아버지'의 장면에 사용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이 음악은 부성애와 모성애의 경계를 허물어 성별의 구분을 넘어서는 '완전한 부모의 사랑'을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영화의 주제와 일관성을 이루는 섬세한 연출입니다.
네가 겪고 있는 감정은 혼자가 아니야
아버지의 말이 엘리오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환대였다면, 영화는 예술과 문학을 통해 엘리오의 감정을 더 넓은 세상과 연결하는 또 다른 차원의 환대를 보여줍니다. 엘리오의 감정이 결코 혼자만의 별난 것이 아님을 시공간을 초월한 보편적 맥락을 통해 따뜻하게 보여줍니다.
영화가 올리버의 육체를 계속해서 고대 그리스 조각상과 겹쳐 보여주는 것이 한 예입니다. 이는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느끼는 육체적 끌림이 부끄럽거나 비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탐미의 대상이었던 보편적 아름다움의 연장선에 있음을 암시하며 엘리오의 욕망에 보편적 맥락을 부여합니다.
보편적인 맥락을 부여하는 환대는 어머니에게서 더욱 섬세한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아들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눈치챈 그녀는 "너 왜 그러니?"라고 직접 묻는 대신, 소설 <헵타메론>을 소리 내어 읽어줍니다.
"말을 하는 것이 나을까요, 아니면 죽는 것이 나을까요?"
수백 년 전 한 기사의 애타는 질문이 시공간을 건너와, 20세기 소년의 혼란스러운 마음에 가만히 내려앉습니다. 그 순간 엘리오의 사랑은 더 이상 혼자만의 비밀스러운 고뇌가 아닙니다. 그것은 위대한 이야기가 될 자격이 있는 유구한 인간 감정의 일부가 됩니다. 엘리오의 감정이 머물 수 있는 보편적인 맥락을 문학을 통해 제공하는, 더없이 사려 깊은 환대입니다.
때로는, 가장 깊은 환대가 그저 아름다운 무대를 마련해주고 조용히 뒤로 물러나는 것일 때도 있습니다. 아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온전히 작별할 수 있도록 이별 여행을 계획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끝까지 존중하고 그 이야기가 아름답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해주는 깊은 존중의 표현입니다.
3. 애도: 감정을 내 안에 새기기
이런 환대 속에서 엘리오는 상실을 마주할 힘을 얻습니다. 이제 그는 스쳐 가는 순간을 평생의 기억으로 만드는 마지막 문, '애도'의 시간으로 들어섭니다.
우리는 격렬한 감정을 겪고 나면 마음이 닳아 없어질까 두려워지곤 합니다. 한정원 작가가 "몸의 관절이 오래 쓰여 닳듯, 마음도 닳는다"며, "그것들이 서둘러 쓰일까 봐 혹은 슬픔에 다 쓰일까 봐 두려워, 인색하게 굴 때도 있다"고 고백했던 것처럼요. 어쩌면 우리 역시 다시는 그만큼의 마음을 내어줄 수 없을까 봐, 다음 사랑을 위해 마음을 아끼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힐지 모릅니다.
이 보편적인 두려움에 영화 속 아버지는 답합니다.
"우리는 상처를 너무 서둘러 치유하려다, 자기 자신의 너무 많은 것을 도려내고 말지. 그래서 서른 즈음엔 마음이 파산해 버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내어줄 감정이 점점 줄어들게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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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음과 몸은 오직 한 번만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그리고 네가 알아채기도 전에 네 마음은 닳아 해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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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네 안에는 슬픔이, 고통이 있겠지. 그 감정을 죽이지 마라. 네가 느꼈던 그 기쁨까지도 함께."
아버지는 마음이 닳는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한하기에 더 소중하다고 말합니다. 마음이 닳아 해어질까 두려워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삶이야말로, 회복할 수 없는 마음의 파산이며 끔찍한 낭비라고요. 아버지는 우리에게 선택을 제안합니다. 닳아 없어질 것을 알면서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아파할 것인가, 아니면 마음을 아끼려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공허해질 것인가.
영화가 말하는 건강한 애도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고통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느끼는 것. 상실의 고통은 그만큼의 기쁨이 존재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에, 그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 하는 것은 소중했던 기쁨의 가치까지 부정하는 행위가 되고 맙니다. 슬픔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온전히 겪어낼 때 비로소 상실은 단순한 사라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기쁨의 순간과 슬픔의 순간이 모두 합쳐져 평생을 지탱할 '아름다운 기억'으로 완성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 모든 과정을 보여줍니다. 올리버의 결혼 소식을 듣고 엘리오는 벽난로 앞에 주저앉습니다. 카메라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엘리오의 얼굴에 머뭅니다. 엘리오의 얼굴 위로 그해 여름의 모든 풍경이 스쳐 지나갑니다. 설렘, 기쁨, 환희, 그리고 지금의 이 아픔까지. 어떤 감정도 피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상실에 아파하고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경험을 자신의 내면에 아로새기며 아름다운 기억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스쳐 지나간 수많은 여름이 있습니다. 그 기억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나요. 혹시 너무 서둘러 잊으려 하지는 않았나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우리에게 말을 건넵니다. 당신의 모든 감정은, 기쁨도 슬픔도, 당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소중한 것이라고. 그렇게 온전히 끌어안은 감정이야말로 평생을 지탱할 우리만의 '마음 줄 곳'이 되어줄 것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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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모든 감정에게 집을 지어주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통해, 스쳐 가는 여름의 순간을 평생을 지탱할 기억으로 만드는 법을 탐구합니다. 감정을 대하는 태도, 따뜻한 환대, 그리고 온전한 애도의 과정을 통해 '마음 줄 곳'을 찾아가는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