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 One Fine Spring Day
2026. 4. 12
롯데콘서트홀 · Lotte Concert Hall, Seoul
Leica M10 Monochrom · Nokton 50mm f/1.5
2026. 4. 12
롯데콘서트홀 · Lotte Concert Hall, Seoul
Leica M10 Monochrom · Nokton 50mm f/1.5
2025년,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주식시장이었습니다. 저는 눈길도 주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크게 부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차피 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한국주식은 하지 않는다"는 저만의 원칙이 있었고, 저는 그 원칙을 묵묵히 지킨 거라고 여겼습니다.
2021년에 비슷한 광경을 본 적이 있습니다. 삼성전자, 현대차, 카카오. 온 세상이 주식 이야기를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가 고점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이야기가 어딜 가나 들려왔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겹쳐 보였습니다. 모두가 열광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는 것. 그래서 저는 이번에도 고점이겠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묻지 않은 게 있었습니다. 2021년과 2025년의 '상황'이 정말 같은 건지.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한국 주식시장을 다루는 Economist의 아티클을 읽었습니다. 기사는 한국주식의 강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과거의 결점이 갑자기 장점으로 변모했다."
이 한 문장에 멈췄습니다. 이전까지 약점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새로운 상황에서 강점이 됐다는 겁니다.
한국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달라진 건 아니었습니다. 역량은 전부터 있었습니다. 달라진 건 그 역량이 필요해진 상황이었습니다. 대상이 변한 게 아니라 상황이 변한 것.
그리고 그 변화를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미국 주식을 하면서 AI 산업을 꽤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AI 모델이 커질수록 더 많은 GPU가 필요하고, GPU에는 고성능 메모리가 필수라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HBM은 빼놓을 수 없다는 것.
HBM은 단순한 부품이 아니었습니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GPU가 나올 때마다 필요한 HBM의 양은 늘어나고, 그걸 양산할 수 있는 회사는 전세계에 셋뿐이었습니다. 일시적인 수혜가 아니라 구조적인 흐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인식이 투자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제 머릿속에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AI 인프라의 핵심 공급자"가 아니라 "한국주식"이었으니까요. "HBM에 투자한다"고 생각했으면 진지하게 검토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한국주식"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순간, 저의 원칙이 자동으로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한국 산업은 미래가 없다"는 이야기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특별히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한국 시장 전체가 검토 대상에서 빠져 있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미래 없다"는 서사를 받아들인 뒤 그 서사가 여전히 맞는지 한 번도 다시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상황이 바뀌고 있는데, 제 머릿속의 서사는 멈춰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분석을 못 한 게 아니었습니다. HBM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으니까요. 문제는 그 이전에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지 않기로 한 것은 분석할 수 없습니다.
원칙이라는 이름 아래, 저는 질문을 멈추고 있었습니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2023년, 카바나(CVNA)라는 회사에 투자했습니다. 미국의 온라인 중고차 플랫폼인데, 당시 시장의 평가는 파산으로 쏠려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반대편에 섰습니다. 결과적으로 50배의 수익을 거뒀습니다.
2023년 카바나와 2025년 한국 주식. 지금 돌아보면 비슷하게 보입니다. 모두 상황이 바뀌면서 가치도 바뀌었습니다.
공격적인 부채를 기반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중고차 산업을 재편하던 카바나는 2022년 시작된 유례없는 금리인상기를 맞아 파산 직전까지 갔습니다. 공격적인 전략이 저금리 시대에는 빛을 발했지만, 고금리 시대에는 빛이 바랜 것입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HBM 기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역량은 전부터 있었습니다. 달라진 건 AI CAPEX가 폭발하면서 그 역량이 절실해진 상황이었습니다.
카바나를 투자하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그 자체로 좋은 자산, 나쁜 자산은 없다는 것. 어떤 상황에 적합한 자산이 가치가 있을 뿐입니다. 투자의 본질은 미래의 상황을 예상하고, 그 상황에서 가치가 부각될 자산을 현재에 미리 선점하는 것입니다.
카바나 글에서 저는 이렇게 썼었습니다. "양질의 정보원에 꾸준히 귀를 기울이며, 그렇게 훔친 생각들을 나만의 논리로 만들고 기다렸기에 가능했습니다." 핵심은 '나만의 논리로 만들었다'는 부분입니다. 남의 말을 그대로 믿은 게 아니라, 서사를 의심하고 직접 검증했습니다. 한국 주식에서는 그 과정이 부재했습니다. '미래가 없다'는 서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뒤, 그것이 여전히 맞는지 검증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카바나에서 제가 했던 것을 복기하면 이런 과정이었습니다.
단계
질문
카바나 (작동)
한국 주식 (부재)
1. 의심
지금의 서사가 정말 맞는가?
"파산한다"를 의심 → 직접 검증
"미래 없다"를 무비판적 수용
2. 속성
이 자산의 본질은 뭔가?
BM 분석 → 속성 불변 확인
검토 자체를 안 함
3. 상황
지금과 미래의 상황은 어떤가?
공포가 과도하다고 판단
"원래 그런 시장"으로 전제
4. 시나리오
상황이 바뀌면?
비대칭 기댓값 발견
상상 자체를 안 함
카바나에서는 1단계가 작동했습니다. "정말 파산하나?" 하고 의심하는 것부터 시작했으니까요. 한국 주식에서는 1단계 자체가 없었습니다. '미래가 없다'는 서사를 의심하지 않았고, 의심하지 않았으니 검증도 없었고, 검증이 없으니 기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상황의 변곡점에서, 기존의 서사가 아직 변화하는 상황을 따라오지 못한 지점. 그곳에 기회가 있습니다. 아주 크나큰 기회가요. 카바나가 그랬고, 한국 주식이 그랬습니다. 한쪽에서는 그걸 봤고, 다른 쪽에서는 보지 못했습니다.
"한국주식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었을까요, 편향이었을까요.
투자를 하지 않는 영역이 저에게 여럿 있습니다. 게임주나 엔터주에는 투자하지 않습니다. 공부해도 모르겠거든요. 주술의 영역이라고나 할까요. 미술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술감상은 제 취미지만, 예술투자는 제 능력범위 밖입니다.
그런데 한국 반도체는요? AI를 공부하면서 HBM의 구조적 의미를 이미 이해하고 있었잖아요. 그건 능력범위 밖이 아니었습니다.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인데도 '한국 주식은 미래가 없다'는, 원칙으로 위장한 편향에 갇혀 있었습니다.
예전에 시중(時中)에 대해 쓴 적이 있습니다. 고정된 정답이 아닌, 상황과 맥락에 맞는 최적의 균형점을 찾는 단단한 유연함.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투자에서는 지키지 못한 셈입니다. 상황이 바뀌었는데 원칙은 안 바뀐 거니까요.
복기를 하며 한 가지 단서를 찾았습니다. "왜 그런가"를 물었을 때, 구체적인 이유가 나오면 그건 원칙일 수 있습니다. "원래 그래"가 나오면 편향을 의심해야 합니다. 게임주를 왜 안 하느냐고 물으면 "봐도 판단 근거를 만들 수 없어서"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한국주식을 왜 안 하느냐고 물었다면, "원래 안 해"라고 답했을 겁니다.
그렇게 10만원짜리 하이닉스를 떠나보냈습니다. 하지만 놓친 수익보다 더 소중한 것을 얻었습니다.
들여다보지 않기로 한 것은 분석할 수도 없다는 것. 상황이 바뀌었는데 서사가 따라오지 못한 지점에 기회가 있다는 것. 그리고 "원래 그래"가 나오는 순간, 그건 원칙이 아니라 편향일 수 있다는 것.
다음 기회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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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이 시간이 너에게 선물이 되게 하라 - <명상록>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거창한 다짐을 세우는 대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문장을 조용히 곁에 둡니다.
우리는 내일 어떤 파도가 밀려올지 알 수 없습니다. 투자도, 관계도, 때로는 내 마음조차 뜻대로 되지 않는 날들이 있겠지요. 하지만 그 파도를 맞이하는 저의 태도만큼은 온전히 제가 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되새깁니다.
상황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태도를 선택함으로써 내 삶의 주도권을 갖는 것. 2026년은 그 감각을 잃지 않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며 2025년 마지막 담은순간들을 기록합니다.
올해 저를 지탱해 준 것은 운동이었습니다. 2년 전 운동을 시작했을 때의 결심은 단순한 건강 관리 그 이상이었습니다.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왜소한 체격, 스스로 규정 지은 그 한계를 '초월'해보고 싶었습니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운동만큼은 달랐습니다. 땀 흘린 만큼 정직하게 돌아오는 피드백, 눈에 띄게 변하는 몸의 선, 동작 하나하나가 내 몸에 익어가는 숙련의 과정까지. 이 확실한 피드백과 무언가를 통제할 수 있다는 자유, 그리고 매순간 성장하고 있다는 기쁨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성취감이었습니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제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결과가 보장된 유일한 세계였습니다.
새벽 5시, 첫차를 타고 헬스장으로 향하는 그 시간. 2002년 월드컵의 뜨거운 함성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재활 루틴에만 집중했던 저의 우상 오승환 선수처럼, 저 역시 매일 같은 시간에 반복하는 행위 속에서 저만의 견고한 세계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비장한 각오로 이를 악물고 버티는 시간은 아닙니다. 영화 <패터슨>의 주인공이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버스를 운전하며 일상의 시(詩)를 써 내려가듯, 저 또한 묵묵한 반복을 통해 삶의 리듬과 생기를 되찾곤 합니다.
감정이 널뛸 때 몸을 움직이면 에너지가 정돈되고, 그 힘으로 다시 삶을 장악할 힘을 얻습니다. 그렇기에 새해에도 저는 이 '나만의 작은 세계'를 소중히 지키려 합니다. 세상은 결코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지만, 적어도 덤벨을 드는 그 순간만큼은 내 의지로 나를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을 느낍니다. 그 감각이 저의 일상을 이어나가게 하는 정직한 힘이 됩니다.
저는 호불호가 분명한 사람입니다. 좋아하는 일에는 무섭게 몰입하지만, 내키지 않는 일 앞에서는 에너지를 아끼곤 했습니다. 소위 '영혼 없이' 기계적으로 처리하고 넘기는 것, 그것이 효율이라 믿었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득, 그렇게 무표정하게 흘려보낸 시간들이 제 삶의 고유한 색채를 지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시간을 때우는 것. 그것만큼 스타일리시하지 않은 일이 있을까요.
스타일(Style)은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업무라도, 지루한 일상이라도 내 손을 거치면 결과물이 달라야 한다고 믿습니다. 남들은 "그 정도면 됐다"고 할 때 디테일 하나를 더 챙기는 집요함, 똑같은 보고서라도 문장의 결을 다듬는 정성. 그런 '남다름'이 모여 저라는 사람의 분위기를 만든다고 믿습니다.
모든 순간은 저를 만들어 나가는 재료입니다. 하기 싫다고 대충 흘려보낸 흐리멍덩한 시간들이 모여서 결코 스타일리시한 '나'를 만들 수는 없습니다. 하찮아 보이는 1분 1초가 켜켜이 쌓여 내 내공이 되고, 훗날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빛내줄 단단한 밑천이 됩니다.
그러니 2026년에는 무엇을 하든 '스타일리시하게' 해내려 합니다. 상황에 끌려가는 무채색의 태도가 아니라, 어떤 순간에도 내 고유의 인장을 찍어내는 주체적인 태도. 그렇게 모든 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온전히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낼 때, 비로소 제가 원하는 삶의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고민과 기록을 함께 해주신 구독자분들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결국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시간'과 '마음'인 것 같습니다. 제 이야기에 귀한 시간을 내어주시고, 마음을 포개어 주신 덕분에 저의 1년도 조금 더 풍성해질 수 있었습니다.
새로이 맞이할 2026년, 어떤 거창한 행운을 빌기보다는 소박하지만 단단한 기원을 보냅니다. 우리가 마주할 파도가 높든 낮든, 휩쓸리지 않고 유영할 수 있는 각자만의 '태도'를 잃지 않기를.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매 순간을 선물처럼 여기며, 무엇을 하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타일리시하게' 살아내는 한 해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한 해 동안 감사했습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새해에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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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투자자 서한 다시 읽기 ③
①편 「기다림이라는 럭셔리」에서는 투자의 본질이 '기다림'에 있다는 것과, 그 지루한 시간을 견뎌내는 태도에 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오늘은 그 기다림의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고, 또 무엇을 비워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 보려 합니다.
투자를 하다 보면 종종 기이한 최면에 걸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빨간색과 파란색 숫자가 쉴 새 없이 깜빡이는 호가창을 멍하니 응시하다 보면, 마치 그 숫자의 춤사위에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세상은 온통 그 숫자가 전부인 것 같고, 당장이라도 매수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나만 뒤처질 것 같은 조급함이 온몸을 휘감습니다.
소음은 그렇게 가장 화려하고 시끄러운 방식으로, '확신'이라는 가면을 쓰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오늘은 이 소란스러운 확신들 사이에서, 아주 작지만 단단한 '사려 깊은 속삭임'을 가려내는 안목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우리는 정보 중독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습관처럼 뉴스를 켜면, 세상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호들갑을 떱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경제 회복이 V자가 될지 U자가 될지 전망하느라 분주하고, 월스트리트의 증권사들은 다음 분기 주당 순이익을 맞히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노마드에게 이 모든 풍경은 그저 '시장이라는 연속극(Soap Opera)'에 불과했습니다. 대중은 며칠이면 무의미해질 그 정보들에 끊임없이 반응합니다.
저에게도 그런 '가짜 자극'에 취해 비틀거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클로(Oklo)' 투자 실패가 정확히 그랬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저는 정보를 담아낼 '나만의 그릇(모델)'이 없었습니다. 단단한 해석의 틀이 부재한 상태에서 쏟아지는 뉴스와 시장의 환호성이라는 '피상적 정보' 그 자체에 즉각적으로 반응했습니다.
"부분적으로만 이해한 정보에 순간적으로 반응하면 많은 경우 재앙이 초래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강력한 최면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요? 책 <CIA 심리학>은 흥미로운 통찰을 제시합니다. 문제의 근본은 쏟아지는 정보(데이터)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정보를 해석하고 가공하는 '정보 처리 모델(Model)'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더 많은 증거(정보)를 수집하면 더 정확한 결론에 이를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이는 착각입니다. 우리의 결론은 '증거 자체'보다, 그 증거를 해석하는 방법을 결정하는 '나의 가정'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존의 분석 모델이 잘못되어 있다면, 아무리 새로운 정보를 쏟아부어도 그 정보는 왜곡되거나 무시될 뿐입니다.
즉, 중요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정보에 관한 정보', 바로 내 머릿속의 틀을 점검하는 일입니다. 나만의 단단한 모델이 없다면, 우리는 시장의 분위기라는 거대한 모델에 휩쓸리게 됩니다. 반면 확고한 전제와 틀을 가지고 있다면, 쏟아지는 뉴스들을 주체적으로 평가하고 걸러낼 수 있습니다. (이 개념은 추후 별도의 글로 깊이 있게 다루겠습니다.)
단단한 그릇(모델)이 준비되었다면, 이제 그 안에 무엇을 담고 무엇을 덜어낼지 결정해야 합니다. 이를 위한 가장 지혜로운 태도는 '비아 네가티바(Via Negativa)'입니다.
"현명함의 비결은 무엇을 볼 것인가보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과감하게 덜어내야 합니다. 금세 상해버릴 단기 실적이나 거시경제 예측 같은 '유통기한 짧은 정보'를 걷어내고, 그 자리에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발효되는 '사려 깊은 속삭임(진실)'을 담아야 합니다.
최근 이코노미스트에서 읽은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에 대한 이야기는 이 지점을 명확히 짚어줍니다. 세상은 종종 '챗GPT'나 '위고비' 같은 화려한 히트 상품에 열광합니다. 그것은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시끄러운 확신이기에 매혹적입니다. 하지만 그 소란스러움 뒤편에는 다른 차원의 진실이 흐르고 있습니다.
히트 상품 하나가 반짝 떴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건, 그 성공을 지속가능한 구조로 만들고 있느냐입니다. 오픈AI가 천문학적 비용을 감당하며 질주할 때, 구글은 탄탄한 생태계 위에서 조용히 추격합니다. 노보노디스크가 공급난을 겪을 때, 일라이 릴리는 더 효율적인 유통망을 구축하며 시장을 잠식합니다.
"단 하나의 히트 상품은 대중의 주목을 끌 수는 있지만, 장기적인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진정한 성공은 타인이 쉽게 복제할 수 없는 독보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고,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하는 데서 옵니다." - <The Economist>
화려한 히트 상품은 소음처럼 크게 들리지만, 복제 불가능한 해자는 속삭임처럼 작게 들립니다. 우리는 그 작고 깊은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나만의 해석 모델(그릇)과 사려 깊은 속삭임(내용물)이 만날 때, 우리는 비로소 소음 너머의 신호를 포착할 수 있습니다. 노마드는 이를 '목적지 분석(Destination Analysis)'이라 부릅니다.
지금 당장의 파도가 얼마나 높은지가 아니라, "이 기업이 10년, 20년 뒤 도달할 목적지는 어디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복잡해 보이던 소음들이 사라지고 단순한 진실이 드러납니다.
노마드는 월마트(Walmart)의 사례를 들려줍니다. 월마트가 40년 동안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일들이 기적처럼 다 잘 풀렸어야 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언뜻 타당해 보입니다. 그 거대한 제국을 유지하려면 수만 가지 톱니바퀴가 완벽하게 맞물려야 할 것 같으니까요.
하지만 노마드가 보기에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본질적으로 중요한 건 '단순한 사실 몇 가지'뿐이었습니다. '규모의 경제를 공유해 성장을 촉진하는 절약 지향성'과 '이를 지탱하는 강력한 기업 문화'.
당시 투자자들은 당장의 이익률 추이나 밸류에이션 같은 복잡한 지표에 매몰되어 이 진실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긴 안목을 가진 투자자는 알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성공하기 위해 모든 것이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근본'이 단단히 서 있다면, 나머지 수만 가지 지엽적인 문제들은 저절로 해결되거나 흐름에 맞춰지기 마련입니다.
제가 '카바나(CVNA)'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당시 헤드라인은 온통 '파산'이라는 단어로 도배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목적지 분석을 통해 "망하지만 않으면 중고차 시장의 구조를 바꿀 기업"이라는 신호에 더 큰 가중치를 두었습니다.
노마드가 주목한 장기적 리스크는 오늘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기업이 자신의 목적지(잠재력)에 도달하는 것을 방해하는 사건들이었습니다.
"최신 뉴스 흐름에 연연하지 않으며 가장 중요한 정보를 인식하고 올바른 가중치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원칙의 문제입니다. 바로 이 원칙이 나중에 가서 엄청난 보상을 받게 되는 것이죠." - <노마드 투자자 서한>
저에게 있어 투자의 실력이란, 뉴스를 얼마나 빨리 접하느냐가 아니라 뉴스를 보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은 상태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관심이 아닙니다. 매일 쏟아지는 뉴스와는 상관없을 만큼, 이미 기업에 대한 깊은 기반을 단단히 다져두었기에 가능한 평온함입니다.
기업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면 매일의 주가 등락이라는 잡음에 과잉 반응할 필요가 없습니다. 최선의 해법은 작은 변화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말고 큰 변화만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투자뿐 아니라, 우리 삶을 관통하는 중요한 태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식재료를 꼼꼼히 고르듯, 정신의 섭식과 영양에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옷을 고르거나 물건을 곁에 둘 때 유독 '헤리티지(Heritage)'와 '타임리스(Timeless)'에 마음이 가는 이유도 이와 닿아 있습니다.
"대상이 무엇이든지 간에, 수명이 짧은 것은 제쳐두고 장기간의 지속가능성이 있는 것에 집중하는 일."
유행을 따라 한 철 입고 버려지는 옷보다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더해지는 옷에 마음이 갑니다. 금세 휘발되는 자극적인 가십보다는,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남은 고전과 지혜에 더 깊은 울림을 느낍니다.
시끄러운 확신들이 난무하는 세상입니다. 누군가는 오늘의 승자가 누구인지 소리 높여 외치지만, 진실은 종종 "아마도", "그럴 수도 있지만"과 같은 사려 깊은 속삭임 속에 숨어 있습니다.
소음에 정신이 팔린 사람은 결코 음악을 들을 수 없습니다. 지금 당신의 귀에는 무엇이 들리나요? 시끄러운 확신인가요, 아니면 조용한 진실의 속삭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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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투자자 서한 다시 읽기 ②
“사회적 증거가 선망, 질투, 그리고 금전적 인센티브와 결합하면 상당한 실수를 초래하는 지름길이 됩니다.” - <노마드 투자자 서한>
우리는 종종 '나만의 독립적인 판단'으로 투자를 결정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봅니다. 그 판단은 정말 내 안에서 치열하게 벼려낸 것일까요, 아니면 타인의 속도를 나의 방향으로 착각한 것일까요?
<노마드 투자자 서한>을 다시 읽어내려가다, 제 지난 실패의 원형을 정확히 꿰뚫는 문장을 만났습니다. 그 문장은 '사회적 증거'와 '질투', 그리고 '돈'이라는 욕망이 뒤엉켰을 때 얼마나 파괴적인 폭발력을 갖는지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타인의 속도에 휩쓸려 내 호흡을 잃어버리는 순간,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를 가두는 '비교'라는 감옥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지난 글에서 고백했던 '오클로(Oklo)' 투자 실패는 정확히 이 문장의 경고가 현실이 된 뼈아픈 사례였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시 제 이성을 마비시켰던 건, 세 가지 재료가 정교하게 배합된 독이 든 칵테일이었습니다.
첫 번째 재료는 '사회적 증거'와 '질투'였습니다. 제 주력 종목인 카바나는 지루한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시장 저편에서는 "너도나도 돈을 벌고 있다"는 환호성이 들려왔습니다. 그 들뜬 소음은 곧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박탈감과 질투로 변질되었습니다.
여기에 두 번째 재료인 '금전적 인센티브'가 더해졌습니다. "나도 빨리 벌고 싶다."는 조급함이 판단력을 흐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재료는 '인정 욕구'였습니다. 단순히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을 넘어, 지인들에게 좋은 정보를 공유해 도움이 되고 싶다는 '선의'가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말을 믿고 매수한 지인들의 기대를 마주하는 순간,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투자는 더 이상 자산을 불리는 이성적 행위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저의 안목을 증명해야만 하는, 자아를 건 위태로운 내기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조급함에 눈이 멀면, 우리는 '분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행동에 대한 '허가증'을 찾아 헤매게 됩니다. 당시 저에게 결정적인 트리거가 되었던 <이코노미스트>의 기사가 그랬습니다.
평소라면 비판적으로 행간을 살폈을 그 기사가, 당시 제게는 '거부할 수 없는 신호'처럼 보였습니다. 냉정히 말해, 그때 저는 투자를 검토하고 있었던 게 아닙니다. 이미 마음속으로 매수를 결정해 놓고, "내 욕망을 합리화해 줄 권위 있는 증거"를 절실히 찾고 있었을 뿐입니다.
제가 그 기사에서 얻은 것은 '냉철한 인사이트'가 아니라, 이 위험한 도박을 해도 좋다는 '안도감'이었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정보만을 취사선택하여 내 욕망을 정당화하는 것. 투자자를 파멸로 이끄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타인의 수익에 예민할까요? 왜 끊임없이 곁눈질하며 괴로워할까요? 우리가 무의식중에 '수익률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관 투자자들은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분기마다 벤치마크(시장 지수)와 성과를 비교해 증명해야만 생존할 수 있습니다. 100미터 달리기처럼 촌각을 다투는 레이스입니다. 하지만 개인 투자자인 우리에게는 그럴 의무가 없습니다. 내 자금의 만기는 내가 정합니다. 이것이 바로 개인 투자자가 기관을 이길 수 있는 강력한 무기, '시간의 차익거래(Time Arbitrage)'입니다.
그런데 타인의 수익률을 부러워하고 지수와 나를 비교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이 강력한 무기를 걷어차고 기관 투자자의 링 위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꼴이 됩니다. 불리한 룰 안에서 쫓기듯 매매하다 결국 넘어집니다. 이는 개인 투자자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권인 '지수(Benchmark)를 무시할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하고, 스스로를 비교의 감옥에 가두는 것과 같습니다.
| 기관 투자자 | 개인 투자자 | |
|---|---|---|
| 목표 | 벤치마크(지수) 대비 초과 성과 증명 | 자산의 절대적 증식과 마음의 평화 |
| 제약 | 분기별 실적 압박 | 만기가 없음 (무기한 보유 가능) |
| 핵심 무기 | 정보력, 자금력 | 시간의 차익거래 (Time Arbitrage) |
| 패착 요인 | 단기 성과 부진 시 자금 유출 | 타인과의 비교, 조급함 |
"자신을 타인과, 지수와 비교하지 마라. 그저 좋은 자산을 사고 보유하는 데 집중하라."
이 말은 단순한 도덕적 조언이 아닙니다. 시장 지수를 무시할 수 있는 특권, 그 압도적인 시간의 우위를 포기하지 말라는 생존의 전략입니다. 투자는 수익률 게임이 아닙니다.
또한, 타인의 높은 수익률이 부러울 때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결과를 모른 채로 투자가 시작된 그 당시로 돌아간다면, 나는 그 하이 리스크를 짊어질 수 있는가?"
수익률이라는 '결과' 이면에 감춰진 '리스크'를 직시해봅시다. 그 불안과 공포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그들이 얻은 수익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리스크를 감당할 생각 없이 달콤한 결과만을 탐하는 것은 욕심일 뿐이니까요.
오클로의 실패를 통해 저는 비로소 깨닫습니다. 화려해 보이는 타인의 파티장을 기웃거리며 수익을 극대화하려 애쓰기보다, 조금 더딜지라도 내 마음이 편안한 지속가능한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의 수익과 인정에 매여 있으면, 투자도 그쪽으로 끌려갑니다. 오늘 얼마나 벌었는지에 앞서, 제 마음과 원칙이 좀 더 단단해졌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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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투자자 서한 다시 읽기 ①
“기다림을 장애물이 아닌, 가꾸어야 할 재료로 생각해보세요.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모든 것이 쓰게 변할 것입니다. 하지만 잘 다룬다면,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을 더 달콤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 <Monocle>
옷장을 열어봅니다. 한 철 유행에 휩쓸려 샀다가 몇 번 입지도 못하고 방치된 옷들과, 시간이 지날수록 손이 가고 내 몸에 맞게 익어가는 옷들이 공존합니다.
최근 제 마음을 사로잡은 옷이 하나 있습니다. 일본 브랜드 코모리(Comoli)의 '실크 넵(Silk Nep)' 팬츠입니다. 얼핏 보면 평범한 츄리닝 바지 같습니다. 표면에는 보풀(nep)이 거칠게 일어나 있어, 누군가는 "그 돈 주고 왜 그런 헌 옷을 사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옷의 진가는 입어본 사람만이 압니다. 피부에 닿는 실크 특유의 서늘하고도 부드러운 감촉, 그리고 입으면 입을수록 움직임에 맞춰 자연스럽게 흐르는 실루엣. 디자이너가 의도한 이 낡음은, 새것의 뻣뻣함이 줄 수 없는 깊은 편안함과 멋을 선사합니다. 남들의 시선보다 입는 사람의 감각에 집중한,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더해지는 옷입니다.
투자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때면 저는 종종 옷장을 떠올립니다. 투자의 세계 역시 옷장과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화려하지만 금세 질리는 패스트 패션 같은 주식이 있는가 하면, 투박해 보여도 시간이 지날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클래식 같은 기업이 있습니다.
그런 클래식을 찾아 헤매던 시절을 함께한 텍스트가 있습니다. 바로 닉 슬립과 콰이스 자카리아가 쓴 <노마드 투자자 서한>입니다. 지난 2년간 카바나(CVNA)에 투자하며 50배의 수익을 거두는 과정은, 얼핏 보기엔 화려한 숫자일지 몰라도 안에서는 의심과 공포와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이 서한들을 읽으며 중심을 다잡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이 글들을 읽어내려갑니다.
담은 순간들에서는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저의 투자 여정을 지탱해 주었던 <노마드 투자자 서한> 속 지혜들을 다시 정리해 보려 합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조급한 세상에서 가장 귀한 가치, '기다림'이라는 럭셔리입니다.
모노클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즉각적 만족(Instant Gratification)의 세대'입니다. 모든 것이 당장 해결되어야 하고, 보상은 즉시 주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런 조급함은 투자 시장에서 더욱 극단적으로 나타납니다.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시계열은 1년에서 분기로, 다시 하루하루로 짧아졌습니다. 모두가 지금 당장 움직이는 것을 쫓는 이 숨 가쁜 호흡 속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때를 기다리는 모습은 치열하게 일하지 않는 '게으름'이나 변화에 뒤처진 '무능'으로 오해받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저 시간 범위(time horizon)를 늘리는 것만으로도 다른 방법하에서는 불가능한 시도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만약 당신이 3년 안에 성과를 내야 한다면, 당신은 수많은 사람과 경쟁해야 합니다. 하지만 7년이라는 시간 범위를 가진다면, 경쟁자는 확연히 줄어듭니다. 그렇게 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 단기적 시각 (Short-term) | 장기적 시각 (Long-term) | |
|---|---|---|
| 시간 범위 | 1년 ~ 3년 | 7년 이상 |
| 경쟁 강도 | 매우 치열함 (Red Ocean) | 거의 없음 (Blue Ocean) |
| 투자 성격 | 성과 증명과 타이밍 싸움 | 본질적 가치 창출과 기다림 |
대다수의 투자자는 1년, 아니 다음 분기의 성과에 목숨을 겁니다. "올해 지수(Index)를 이겼는가?"라는 질문에 쫓기며, 당장 오를 것 같은 '핫한' 주식을 찾아 헤맵니다. 이는 매 시즌 바뀌는 유행을 쫓아 패스트 패션을 사 모으는 것과 같습니다. 잠깐의 만족은 있을지 몰라도, 결국 옷장에는 유행 지난 옷무덤만 남게 됩니다.
노마드는 우리에게 "단기적 시각을 가진 군중들보다 더 멀리, 길게 보는 것만이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건 '투자의 질(Quality)'이지 '수익의 타이밍'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씨앗을 심고 싹이 트기를 기다리듯 5년, 10년이라는 긴 호흡(Time Horizon)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남들이 넘볼 수 없는 '시간의 해자' 안에 머물게 됩니다.
경쟁이 치열한 단거리 트랙에서 벗어나, 아무도 달리지 않는 장거리 트랙으로 들어서는 것. 이것이야말로 확실한 경쟁우위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투자를 하면서 ‘시장 지수’를 신경 써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운 좋게도 지난 몇 년간 압도적인 수익을 거두고 있었기에, 지수는 제 경쟁자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를 무너뜨린 건 지수가 아니라 '비교'에서 오는 FOMO였습니다. 제 주식이 숨을 고르는 사이, 옆 동네의 AI와 원전 관련주들이 연일 폭죽을 터뜨리는 것을 보며 평정심을 잃었던 것입니다.
노마드는 말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투자자라도, 1년이나 2년 정도 시장보다(혹은 남들보다) 뒤처지는 시기는 '필연적'으로 찾아온다고요.
우리는 종종 당장의 등락률로 자신의 실력을 검증하려 듭니다. 하지만 노마드는 선을 긋습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건 '투자 의사결정의 질(Quality)'이지, '타이밍(Timing)'이 아닙니다."
단기적인 주가 흐름은 그저 '타이밍(운)'을 보여줄 뿐, 우리가 도착할 '최종 목적지(실력)'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주가가 오르지 않았다고 해서 내 투자 아이디어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남들의 주가가 오른다고 해서 그들이 영원히 옳은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스토아적인 초연함입니다. 이것은 맹목적인 인내가 아닙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질'에 집중했다면, 통제할 수 없는 '시기'는 기꺼이 시장에 맡기겠다"는, 본질을 꿰뚫어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고요한 자신감입니다.
물론 기다림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투자는 은행 적금처럼 매일 꼬박꼬박 이자가 붙는 선형적(Linear)인 과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오랜 시간 아무런 변화가 없다가,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비선형적(Non-linear)인 곡선을 그립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건 바로 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 즉 밥을 지을 때 뜸을 들이는 것과 같은 인고의 시간입니다.
저에게도 뼈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제 주력 종목인 '카바나(CVNA)'가 올여름부터 가을까지 횡보하던 시기였습니다. 기업은 분명 좋아지고 있는데 주가는 몇 달째 박스권이었죠.
저는 그때 그것이 '뜸 들이는 시간'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밥을 지을 때 맹렬히 타오르던 불을 끄고 뚜껑을 덮어두는 시간. 겉보기엔 아무런 변화가 없고 열기도 식은 것 같지만, 솥 안에서는 수분이 쌀알 깊숙이 스며들며 진짜 밥맛이 완성되는 결정적인 순간 말입니다.
노마드는 말합니다.
"가치 창출은 천천히 느린 속도로 만들어졌을 때 더 오랫동안 지속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고요함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시장 저편에서 '오클로(OKLO)'를 비롯한 원전·AI 관련주들이 매일같이 폭등하며 파티를 벌이자, "남들은 다 돈을 버는데, 나만 지루한 주식을 들고 소외되었다"는 FOMO가 저를 덮쳤습니다. 뜸이 채 들지도 않았는데 솥뚜껑을 열어버린 것입니다.
저는 잘 지어지던 밥(카바나)을 팔아치우고, 화려해 보이는 파티장(오클로)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제가 뒤늦게 올라탄 오클로는 폭락하여 큰 손실을 안겨주었고, 제가 버리고 떠난 카바나는 그 직후 비선형적인 폭발을 시작하며 신고가를 경신했습니다.
투자자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실수는, 단지 지금 겉보기에 조용하다는 이유로 뜸이 들고 있는 솥을 제 발로 걷어차고 나가는 것입니다.
다시 코모리 팬츠를 입어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도 아직 이 옷의 진가를 100% 확신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한 계절도 보내지 못했거든요. 거울을 보며 "정말 이 낡아 보이는 옷이 시간이 지날수록 멋져질까?" 하고 반신반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바로 그 '의심과 기대 사이의 시간'을 즐겨보려 합니다. 지금 당장은 낯설고 확신이 없더라도, 디자이너의 철학과 좋은 소재의 힘을 믿고 내 몸에 길들여가는 과정을 겪어보려 합니다.
투자의 세계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옷에 디자이너의 철학과 좋은 소재가 깃들어 있듯, 기업에는 경영자의 비전과 탁월한 비즈니스 모델이 숨 쉬고 있습니다.
좋은 옷이 몸에 익을 시간이 필요하듯, 경영자의 비전과 비즈니스 모델이 가치를 만들어내는 데에도, 그리고 투자자가 그 가치를 온전히 알아보는 데에도 반드시 '뜸 들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가치는 오직 숙성의 시간을 통과해야만 완성됩니다.
투자의 시계열을 늘린다는 건, 단순히 주식을 오래 들고 있겠다는 다짐을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입니다. 한 철 입고 버릴 옷이 아니라 평생을 함께할 클래식을 고르는 안목, 당장의 화려함보다는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본질을 믿고 기다리겠다는 선언입니다.
기다림을 장애물이 아닌, 내 삶을 더 풍요롭게 가꾸어갈 재료로 받아들여 봅니다. 조급함이 틈탈 때마다, 낡을수록 멋스럽게 변할 코모리의 옷을 입으며 되뇌어 보려 합니다. 이 옷이 내 몸에 맞춰 익어가는 데 시간이 필요하듯, 진정한 가치는 숙성의 시간을 거쳐야 비로소 그 깊은 맛을 낸다는 것을요.
당신의 옷장에는, 그리고 당신의 계좌에는 어떤 시간의 결이 쌓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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