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양이 질을 압도하는 시대, 인공지능(AI)이 생성하는 방대한 콘텐츠의 파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을 식별할 수 있을까요? AI는 대개 최고의 자료보다는 자주 논의되거나 쉽게 접근 가능한 정보를 우선시하며, 방대한 빅데이터를 학습시킨 대규모 언어 모델(LLM)은 그럴듯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다루지 못한 채 피상적인 답변을 내놓곤 합니다. 그 '그럴듯함'은 때로 더 큰 혼란을 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실은 피상적인 이해를 넘어,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안목'의 중요성을 깨닫게 합니다. 이런 안목은 단순히 많은 데이터를 접하는 것만으로는 길러지지 않습니다. 꾸준히 '양질의 것들'을 의식적으로 접하고, 깊이 있게 소화하는 과정을 통해 연마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정보 과잉의 시대에 어떻게 하면 이러한 '안목'을 기르고,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주체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그 여정을 탐색하고자 합니다.
AI와 빅데이터의 그럴듯함, 그 이면의 함정
인공지능은 기존의 널리 알려진 방대한 정보를 신속하게 처리하고 요약하는 데에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AI가 활용하는 정보의 '질'까지 무조건 신뢰하기는 어렵습니다. 양질의 자료보다는 온라인상에서 자주 논의되거나 쉽게 접근 가능한 자료를 우선적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정제되고 검증된 내용을 담고 있는 유료 구독이 필요하거나 특정 데이터베이스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고급 정보보다는, 대중적인 뉴스 기사나 블로그 게시물처럼 즉각적으로 확보 가능한 출처를 참고하는 것이죠. 이는 결과적으로 정보의 편향이나 피상적인 분석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진정한 통찰과는 거리가 먼 결론에 도달하게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빅데이터'에 대한 맹신 역시 경계해야 할 지점입니다. 단순히 데이터의 양이 많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질 높은 분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실제로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의미 있는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과정입니다. 언젠가 대규모 언어 모델(LLM)에 부동산 빅데이터를 투입하여 분석을 시도해본 경험이 있는데요, 결과물은 표면적으로는 매우 그럴듯해 보였지만, 현실의 복잡성과 미묘한 맥락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럴듯하게 포장된 내용이 더 큰 오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에 섬뜩함마저 들었습니다. 그럴듯함에 속지 않고 그 속에서 진주를 골라낼 수 있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입니다.
'진짜'를 알아보는 힘: 양질의 자극에 대한 의식적인 노출
그렇다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해야 그럴듯함에 현혹되지 않고 본질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을까요? 그 시작은 '다양한 양질의 자극에 대한 의식적인 노출(exposure)'에 있습니다. 단순히 정보를 많이 접하는 것을 넘어, 어떤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만나느냐가 우리의 감각과 지성을 단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감각이나 지성이 퇴화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양한 양질의 자극에 상시로 노출되어 있어야 합니다. 물론 혼자 책을 읽어도, 그 책의 내용이 어느 정도 자신에게 자극을 줍니다. 그러나 자극은 다양할수록 좋겠지요. 독서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전시, 답사, 강연에 참여하는 일, 그리고 좋은 자극을 줄 수 있는 사람과의 만남이 필요합니다. 퇴화하지 않기 위해서는 양질의 자극 속에 자신을 놓아두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안목은 일종의 근육과 같아서, 꾸준히 양질의 자극을 통해 단련하지 않으면 그 기능이 저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대신 적극적으로 양질의 경험을 찾아 나서고 다양한 자극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주체적인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알고리즘의 유혹: 보이지 않는 손에 흔들리는 선택
하지만 이렇게 의식적으로 다양한 양질의 자극에 자신을 노출하려는 노력은 오늘날 강력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리 일상을 깊숙이 파고든 알고리즘 때문입니다. SNS 피드, 쇼핑몰의 추천 상품,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알고리즘은 일상에서 끊임없이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편리함을 제공하는 동시에 알고리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생각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거나 제한함으로써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빼앗고, 결과적으로 취향의 단순화·몰개성화·획일화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뉴요커(The New Yorker)의 한 기사는 이러한 '알고리즘 불안(Algorithmic Anxiety)' 현상을 심층적으로 다룹니다.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스스로 충분히 생각하고 판단할 시간을 갖기 전에 원하는 것을 예측하고 추천합니다. 알고리즘의 추천에 끊임없이 노출되면서 우리가 선택한 것이 과연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알고리즘이 우리에게 원하도록 교묘하게 만드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디지털 홍수 속 나만의 안식처: 양질의 큐레이션과 종이 잡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알고리즘의 보이지 않는 손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양질의 정보를 선택하고, 소셜 미디어 피드 바깥에서 자신만의 취향을 탐구할 수 있을까요? 그 핵심은 '양질의 큐레이션'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데 있습니다.편집자의 깊이 있는 안목과 철학이 담긴 콘텐츠는 알고리즘이 제공하기 어려운 다채로운 자극과 깊이 있는 관점을 선사합니다. 이러한 양질의 큐레이션의 대표적인 예 중 하나가 바로 '잡지', 특히 '종이 잡지'입니다.
종이 잡지가 지닌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다양한 콘텐츠와 우연히 마주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알고리즘에 기반한 온라인 환경에서는 자신의 관심사를 벗어나는 정보를 만나기 어렵지만, 종이 잡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주제나 이미지와 연이 닿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특히 지금은 검색어조차 떠올리기 어려운 머나먼 과거의 콘텐츠나 분위기를 접하는 데에는 종이 잡지만큼 좋은 매체도 드뭅니다. 저 역시 작업을 위한 레퍼런스를 찾을 때 종이 잡지를 많이 활용하곤 합니다. 특별한 목적 없이 죽 훑어보다가 아이디어나 작업의 방향과 연결될 만한 이미지를 발견하면 스크랩하여 아이디어 보드를 만들곤 했는데요, 이러한 과정 자체가 알고리즘의 추천과는 다른 즐거움과 자극을 주었습니다.
시대의 거울, 문화의 기록: 한 시대를 대표한 잡지의 힘
종이 잡지가 지닌 이러한 발견의 즐거움과 자극은, 잡지가 한 시대의 문화와 지성을 깊이 있게 담아낸 '양질의 큐레이션'의 정수일 때 더욱 커집니다. 저는 2년 전 주말마다 국립중앙도서관을 찾아 GQ 국내판을 정주행했는데요, '종이 잡지'를 주제로 다룬 잡지(어반라이크 34호)에서 여러 전문가들이 GQ 초기판에 보낸 뜨거운 찬사가 계기가 되었습니다.
“패션을 비롯, 문화 전반에 걸친 강렬한 콘텐츠로 대한민국 잡지 저널리즘의 잊혀지지 않는 순간들을 기록했다”
"GQ 초기 에디션, 창간호부터 2~3년 정도를 좋아한다. 당시 GQ가 쏟아냈던 콘텐츠는 그야말로 폭격이었다. 당시 에디터들(이충걸, 문일완, 송원석, 정석헌, 장우철)이 썼던 기사는 지금 봐도 훌륭하다. 도발적인 아젠다를 던지는 데 주저함이 없었고, 같은 사안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매체였다. 잡지가 뭘 해야 하는지, 잡지의 갈 길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줬다”
그 시절의 GQ를 읽으며 이 코멘트들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잡지가 시대를 대표하는 매체'였던 2000년대 초반, GQ는 주제 선정·필진의 역량· 섭외력 등 모든 면에서 그야말로 끝판왕이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잡지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아 그 시대적 소명은 다했을지언정, 그 정신성은 여전히 영원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양질의큐레이션이 담긴 종이 매체를 통해, 평소 제 관심 분야가 아니었거나 온라인이었다면 무심코 지나쳤을 법한 깊이 있는 콘텐츠들을 접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자극과 영감을 얻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추후 담은순간들에 과거 잡지에서 받은 영감도 다룰 예정입니다.)
오래된 미래: 낡은 잡지에서 발견하는 시간의 지혜
발행된 지 시간이 꽤 흐른 잡지에서는 현재의 일회성 리뷰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독특한 관점이 담겨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순히 최신 정보가 아니라는 이유로 멀리하기에는 그 안에 담긴 시대의 고민과 지혜,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발견의 즐거움이 너무나 큽니다.
10년도 더 된 '매거진 B' 에이솝 편(2013년 발행, 당시 브랜드명은 이솝이 아니라 '에이솝'이었습니다!)을 다시 펼쳐보며, 지금은 글로벌 브랜드가 된 이솝의 초기 철학과 당시의 시대상을 느끼며 남다른 감회에 젖기도 했습니다. 또 50년 가까이 된, 우리나라 모든 잡지의 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뿌리 깊은 나무'를 들춰보며 이 시대에 느끼기 힘든 정신성과 깊이에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오래된 잡지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잘 보존된 '타임캡슐'로서, 현재의 획일화된 시각에서 벗어나 세상을 보다 다채롭고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는 예상치 못한 창을 열어줍니다.
동시대를 보는 눈: 동시대 잡지의 역할과 가치
과거의 잡지들이 시간의 깊이를 통해 빛나는 통찰을 제공한다면, 동시대와 발맞추며 현재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 곁의 양질의 잡지들에도 꾸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과거의 지혜와 동시대의 흐름이 균형 있게 만날 때 비로소 세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깊이 있는 시각과 신뢰할 만한 정보를 꾸준히 제공하는 동시대의 잡지를 주체적으로 선택하여 꾸준히 보아야 합니다. (저는 정밀한 팩트에 기반하여 특유의 사고방식으로 국제 정세를 짚는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비즈니스·문화·디자인에 대한 독창적인 시선을 제시하는 '모노클(Monocle)'을 꾸준히 구독하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며 안목 있는 편집자의 철학이 담긴 양질의 큐레이션을 꾸준히 접하는 습관은, 단편적인 정보의 파편을 넘어 세상을 읽는 자신만의 프레임을 구축하고 깊이 있는 안목을 기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나만의 리듬 찾기: 디지털을 넘어 '아날로그적 알고리즘'으로
의식적으로 양질의 잡지를 찾아 읽는 행위는 단순히 정보를 얻는 것을 넘어, 디지털 시대의 정보 소비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우리를 자연스럽게 '아날로그적 경험'의 가치로 이끌기도 합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잔카를로 발레(Giancarlo Valle)는 프로젝트에서 실제가 축소된 모형을 중요하게 활용하는데요, '모노클(Monocle)'과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접근이 "인터넷 알고리즘에 대한 우리 스튜디오의 해독제"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었고 모두가 같은 것을 봅니다. 자신만의 아날로그적 알고리즘(analogue algorithm)을 만들지 않는 한 그 순환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습니다."
그의 지적처럼, 디지털 콘텐츠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만의 아날로그적 알고리즘은 의도적으로 다른 리듬과 질감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되어줍니다. 목적 없이 산책하며 마음 가는 대로 향하기, 목적 없이 서점을 거닐며 우연히 발견한 책을 들춰보는 것, 하루 중 특정 시간만이라도 의도적으로 디지털 기기를 멀리하고 주변을 관찰하거나 사색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제니퍼 이건(Jennifer Egan) 역시 한 인터뷰에서 이러한 아날로그적 접근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이나 옥스포드 영어 사전 같은 전통적인 레퍼런스를 여전히 활용하는데요, 물리적인 실체가 있는 자료가 주는 힘을 신뢰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모든 정보에 즉시 접근할 수 있는 디지털 방식으로는 따라올 수 없는 깊이가 있다는 것이죠. 이러한 생각은 새롭게 알게 된 단어를 컴퓨터 파일이 아닌 손으로 직접 노트에 정리하는 그녀의 오랜 습관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이처럼 그녀에게 물리적 실체가 있는 책과 손으로 기록하는 행위는, 디지털의 무한한 접근성만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생산성과 사유의 깊이를 가져다주며,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정보를 체화하는 '아날로그적 알고리즘'의 좋은 예입니다.
우연한 발견과 '공예적 즐거움'
제니퍼 이건이 언급한 물리적 매체와의 깊이 있는 상호작용은, 종이 매체가 선사하는 또 다른 중요한 가치, '예상치 못한 발견의 즐거움'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과거의 신문이나 잡지에는 편집자의 고뇌와 안목이 담긴 야심 찬 기획이나 실력 있는 필자의 깊이 있는 칼럼이 지면을 채웠습니다. 독자들은 설령 그 기사를 읽으려고 산 것이 아닐지라도, 이왕 샀으니 아까워서라도 한번은 읽게 되고, 예상외로 새로운 영감을 얻어 또 다른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이러한 '예상 밖의 콘텐츠 소비'는 종종 효율성과 '가성비'라는 잣대에 밀려 무용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우연한 만남과 어떻게 보면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과정 속에 창의성과 다채로운 사유가 싹트는 토양이 마련됩니다.
종이 매체를 한 장 한 장 넘기고, 마음에 드는 문장에 밑줄을 긋고, 여백에 짧은 생각을 메모하는 그 모든 아날로그적 행위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것을 넘어, 자신만의 의미를 능동적으로 구성해 나가는 과정이며, 여기에는 디지털이 제공하기 어려운 '공예적 즐거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스스로 정보를 탐색하고, 선택하고, 관계 맺는 주체적인 과정에서 오는 만족감.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스포티파이와 같은 플랫폼이 아무리 정교한 알고리즘으로 개인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한다 해도, 때로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이 있음에도 공허하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러한 '공예적 즐거움'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자신만의 손길과 노력을 거쳐 의미를 쌓아 올리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발견과 연결되는 기쁨이야말로 알고리즘의 효율성을 넘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깊이 있는 경험이 아닐까요.
정보의 파도 속, 나를 지키는 주체적인 삶
우리는 정보의 양이 그 어느 때보다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알고리즘이 보이지 않는 손처럼 우리의 일상과 생각에 깊숙이 관여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관점을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세상을 명료하게 바라보며 자신만의 생각과 취향을 가꾸어 나가는 여정은 우리 자신의 주체적인 선택과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알고리즘의 추천에 수동적으로 따르기보다 때로는 불편함과 비효율을 감수하더라도 스스로 찾아 나서고, 예상치 못한 만남을 즐기며, 자신만의 속도로 정보를 음미하고 내면화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능동적인 자세야말로 알고리즘과 AI가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 자신을 지키고, 진정으로 충만한 생활을 누리는 길일 것입니다.
인공지능(AI)이 우리 일상 깊숙이 스며들고 있는 요즘, 그 눈부신 발전에 감탄하면서도 문득 질문하게 됩니다. 'AI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시대에, 과연 우리 인간에게 고유하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생성형 AI가 처음 나왔을 때부터 이 물음은 저의 화두였는데요, <담은순간들>에 그 질문에 대한 고민의 과정을 담고자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생각하는 힘'에 주목하여, 삶의 '근본적인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사유, '글쓰기 과정' 속에서 생각을 벼리고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의 중요성을 살펴볼 것입니다. 단순한 지식의 나열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시계공'으로서의 인간의 창조적 역할에 대해서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편리함의 유혹 앞에서: AI 시대, 놓치지 말아야 할 본질적 질문들
AI는 우리 시대 가장 혁신적인 기술 중 하나로 여겨지며, 많은 이들이 그 가능성에 열광합니다. 때로는 "AI만 도입하면 골치 아픈 문제도 단번에 해결될 거야!" 와 같은 성급한 환상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 만능주의적 시각은 AI의 편리함에 기대어 정작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본질적인 질문들을 간과하게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AI가 추천하는 알고리즘이나 자동 생성된 콘텐츠에만 의존하게 된다면, 삶의 소중한 경험을 스스로 포착하고 그 의미를 곱씹으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서사와 가치관을 쌓아가는 경험,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근본적인 사유의 과정을 소홀히 할 위험이 있습니다. '내 삶에서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은 AI의 편리함이 대신 던져줄 수도 답해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AI가 가져다주는 효율성과 편리함이 인간 고유의 '고민하는 힘'을 약화시키거나, 그러한 고민의 시간을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AI가 발전할수록 더욱 의식적으로 사색의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때로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산책을 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떠오르는 단상들을 꾸준히 메모하며, 생각을 다듬어 글로 표현하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고 창의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AI 시대에 이러한 근본적인 고민을 위한 시간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야 합니다.
2. 종이 위의 사유
쓰면서 깊어지고
앞서 AI 시대에 '근본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는데요, 이러한 사유를 더욱 깊고 명확하게 발전시키는 핵심적인 과정 중 하나가 글쓰기입니다. 흔히 글쓰기를 생각을 정리해서 내놓는 결과물 정도로 여기기 쉽지만, 어쩌면 글쓰기의 진짜 가치는 완성된 텍스트 너머, 쓰는 과정 속에서 치열하게 전개되는 '사고의 확장과 심화'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실리콘밸리의 투자자 폴 그레이엄(Paul Graham)은 “글쓰기는 사고다(Writing is thinking)”라며, 글쓰기를 통해서만 할 수 있는 종류의 사고가 있다고 말합니다. AI가 글쓰기를 대신해 주면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게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죠. 이코노미스트는 이 지적을 연구로 넓힙니다. 많은 직업에서 연구는 통념의 모순과 빈틈을 찾아내는 사고인데, 연구를 모두 AI 조교에게 맡기는 '지적인 지름길'을 택하면 최고의 아이디어를 얻을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우려는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의 사례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회사 GitClear의 보고서에 따르면, 프로그래머들이 AI를 사용해 코드 초안을 작성했을 때, 결과적으로는 버그를 수정하고 코드를 검토 및 편집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경우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는 AI가 생산량 자체는 늘릴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의 깊은 이해와 섬세한 판단이 생략될 경우 결과물의 질은 오히려 저하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AI가 순식간에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낼 수는 있겠지만, 그 안에 담겨야 할 필자 고유의 고민과 논리 그리고 창의적인 발상은 결코 AI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오롯이 쓰는 과정에서의 '생각하는 힘'을 통해서만 길러지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나를 만나다
글쓰기는 단순히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때로는 자기 자신을 가장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정직하게 써내려간 글 속에는 스스로도 미처 알지 못했던 내면의 모습, 가치관, 심지어 무의식적인 패턴까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쓴 글이 AI의 코멘트를 통해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해석되는 경험은 놀랍습니다. 한번은 스스로 꽤 만족했던 글에 대해 지인이 GPT 프로 모델을 통해 얻은 피드백을 전해주었는데, 단순한 글의 평가를 넘어 '저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스스로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근본적인 통찰이 담겨 있어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AI의 이러한 분석 능력은 분명 강력한 도구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지점은 명확합니다. 바로 그 모든 분석과 성찰의 출발점이 되는 '글'은 반드시 우리 자신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AI가 아무리 뛰어난 분석을 제공한다 한들, 그 분석의 대상이 되는 진솔한 자기 기록, 즉 '나의 이야기'를 AI가 대신 써줄 수는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삶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고민하며 글로 풀어내는 과정이 선행되어야만 비로소 AI를 통한 깊이 있는 자기 이해의 가능성도 열리는 것입니다. 자신만의 생각과 경험을 담아 글을 쓰는 행위야말로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창조이자 자기 발견의 첫걸음입니다.
3. 인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시계공
AI는 기존에 존재하는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지식을 요약하고 설명하는 작업에 있어서는 이미 놀라운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기존 이론에 대해서는 교과서에 들어가도 손색없을 만한 정확한 설명을 제공하며 우리를 감탄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물이 겉으로는 매우 그럴듯해 보일지라도, 때로는 전체적인 맥락이나 핵심적인 인과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결여된 채 피상적인 정보의 나열에 그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마치 정교한 시계의 각 부품을 상세히 열거할 수는 있지만, 정작 그 시계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없거나 이미 존재하는 설계도를 단순히 모방하여 전달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AI가 때때로 보여주는 '그럴듯함의 함정'이죠.
단순히 많은 정보를 알고 나열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고 독창적인 체계를 구축하는 ‘시계공(Clockmaker)’의 역할은 여전히 인간의 고유한 영역으로 남아있습니다. 진정한 창조와 발전은 단순히 정보의 양이 많다고 해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흩어진 지식들을 명확한 기준으로 분류하고 연결하여 잘 짜인 ‘디렉토리 구조’로 체계화했을 때 비로소 새로운 통찰로 뻗어나가며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됩니다. 이렇게 구조화된 이해를 바탕으로 본질을 꿰뚫고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며 이전에는 없던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 ‘시계공’이 하는 일입니다.
AI라는 양날의 검
AI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기존의 방대한 지식을 이해하며, 일상의 많은 부분을 자동화하는 데 훌륭한 조력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AI 시대에도 인간 고유의 영역이 존재합니다. 피상적인 정보의 습득을 넘어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깊이 있는 사유, 기존의 것을 단순히 모방하거나 설명하는 것을 넘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개념과 체계를 창조해내는 '시계공'과 같은 창조적 지성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입니다.
AI의 편리함에만 전적으로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 AI가 명확한 강점을 보이는 영역을 정확히 인지하고, 그 부분에서 AI를 지혜로운 도구로 활용해야 합니다. 그렇게 확보된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는 오롯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근본적인 사유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일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글쓰기를 통해 생각을 벼리며 자신만의 관점을 세우고, 세상에 없던 가치를 설계하고 만들어내는 일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문득 ‘시간을 잘 보낸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삶의 많은 부분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달려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베블런의 저서 ‘유한계급론’을 읽다가 ‘과시적 여가’라는 개념이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온 적이 있습니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특정 가치를 위해 여가 시간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의미 없이 흘려보내던 제 시간들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책에서 말하는 사회적 맥락과는 결이 다르지만, 여가 시간을 어떤 가치를 담아 채워나가는지가 우리 삶의 질과 만족도, 나아가 내면의 성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의미 있는 채움'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눠보고 싶습니다.
자유 속에 찾아오는 혼란
더 많은 여가 시간이 주어질수록 더 큰 혼란을 느끼기도 합니다. 주말 혹은 긴 연휴를 앞두고 ‘잘 보내야 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오는 경험, 다들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특별한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지만 막상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시간을 흘려보내곤 합니다.
"퇴근하고 뭐 하세요?"라는 질문에 선뜻 답하기 어려울 때도 많습니다. 저의 경우 아침에는 부지런히 운동을 하지만, 막상 퇴근 후에는 딱히 정해진 활동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도 분명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능동적으로 선택한 시간이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 속에서의 소극적인 시간이라면 한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더욱이 이런 시간이 한두 번 일시적인 것을 넘어 습관처럼 굳어져 퇴근 후 의미 없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일상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어쩌면 새로운 나를 만나고 삶의 또 다른 즐거움을 발견할 소중한 기회를 스스로에게서 빼앗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저 흘려보내는 시간 속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성장의 씨앗들이 얼마나 많을지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가에도 때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여가에도 때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유한계급론’에서 언급된 유한계급 신사들은 자신의 “한가한 삶을 고되게 갈고닦음으로써” 과시적 여가에 어울리게 생활하는 법을 익혔다고 합니다. 그들의 주된 목적이 여가를 통한 사회적 과시에 있었다면, 제가 여가를 통해 추구하는 바는 삶의 의미를 찾고 내면을 채워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공통점은, 어떤 목적이든 가치 있는 여가를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결국 여가 시간을 어떻게 조각해 나가는가는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향유하며 삶을 주체적으로 가꾸어가는 능동적인 시간 활용의 문제입니다. 적극적으로 나만의 시간을 ‘조각’하려는 의지와 실천은 여가를 넘어, 우리가 삶을 얼마나 주체적으로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분명한 지표입니다.
시간으로 숙성되는 진정한 럭셔리
의식적인 노력을 들여 가꾼 여가 시간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우리 안에 깊이와 넓이를 더하는 소중한 자양분이 됩니다. 그렇게 한 켜 한 켜 쌓인 시간과 경험이야말로 돈으로 살 수 없는 럭셔리 – 넓고 깊은 안목 – 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럭셔리는 값비싼 물건이나 화려한 경험 너머, 오랜 시간 세심한 시선으로 순간을 포착하고 새김으로써 깊어지는 안목일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내면의 자산들은 결코 단기간에 얻어지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연마하고 가꾸는 과정 속에서 생겨납니다.
결국 여가 시간을 잘 보낸다는 것은 진정으로 ‘마음 줄 곳’을 찾고, 그 시간을 통해 스스로를 더욱 풍요롭게 가꾸어가는 창조적인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잘 보낸 여가는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을 발하며 우리 삶을 단단하게 지탱하는 럭셔리가 되어줄 것입니다.
'담은 순간들'에서는 제가 마음을 준,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울림을 주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번 글은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았거나 절판되어 쉽게 만나보기 어려운 양질의 책들을 읽고 그 안의 지혜를 탐색하는 두 번째 시리즈입니다.
이번 시리즈에서 다룰 책 <The Luxury Strategy>는 럭셔리를 단순한 상품이 아닌, 고유한 철학과 전략을 가진 하나의 세계로 바라보게 해주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럭셔리라는 개념을 통해 제 삶의 가치관과 태도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럭셔리가 삶의 태도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담은 순간들'에 담아보려 합니다.
제가 럭셔리에 마음을 주게 된 계기부터 말씀드릴까 합니다. 저는 헤리티지(heritage), 그러니까 시공간을 초월하여 전해 내려오는 유산에 깊은 애정을 느껴왔습니다. 오래된 것들에 깃든 시간의 흔적과 이야기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과 영감을 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헤리티지에 특히나 애정과 열정을 갖고 해석하고 활용하는 존재가 '럭셔리 브랜드'였습니다.
저는 단순히 값비싼 물건을 소유하는 것을 넘어 삶의 가치와 태도로서의 '럭셔리'를 지향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장 노엘 캐퍼러와 뱅상 바스티앙이 쓴 <The Luxury Strategy>를 만났습니다. 책에서 다루는 럭셔리의 다양한 속성들 – 고유한 정체성, 시간과 여유의 가치, 기능을 넘어선 꿈과 감성,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 전통과 동시대성의 조화, 구별 짓기, 희소성 등 – 은 앞으로 '담은 순간들'을 통해 하나씩 풀어내고 싶은 소중한 화두가 되었습니다. 고민하며 숙성시킨 생각들을 앞으로 꾸준히 글로 발행해 나갈 예정입니다.
그중에서도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문장, 이 책의 핵심적인 메시지 중 하나가 오늘 나눌 이야기입니다.
"럭셔리는 비교급이 아니라 최상급이다.” (Luxury is superlative, not comparative)
오늘은 이 문장을 실마리 삼아, 럭셔리가 왜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걷는지 그 이유를 '정체성', '기준', 그리고 '전통·유산·역사에 대한 존중'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풀어보고자 합니다.
1. 럭셔리의 정체성: 비교를 거부하는 고유함
럭셔리 브랜드는 자신을 다른 브랜드와 비교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브랜드들이 타 브랜드와의 경쟁 속에서 자신의 우위를 찾고 차별점을 부각하려 애쓰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럭셔리는 오직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에만 집중할 뿐, 경쟁자를 의식하거나 비교 우위를 점하려 애쓰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고유한 정체성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저는 '꿈'과 '단단한 중심'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떠올렸습니다.
럭셔리는 프리미엄이 아니다: 품질 너머 '꿈'을 담다
먼저 책에서는 '럭셔리는 프리미엄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성능, 품질 등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가치를 통해 '더 나은' 제품임을 증명하려 한다면 럭셔리는 그 너머의 가치, '꿈'을 추구합니다. 기능적 완벽함보다는 브랜드 고유의 비전과 철학, 그리고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감성적 울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책에서는 '능가하는 것과 정체성을 소유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outclassing a model is one thing, but possessing an identity is another)'라고 지적하며, 아무리 기술적으로 뛰어난 제품이라도 브랜드만의 '꿈'을 담아내지 못한다면 진정한 럭셔리가 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럭셔리는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 때도 있습니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이상과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생긴 '결함'은 때로는 럭셔리만의 독특한 매력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단단한 중심: 흔들리지 않는 브랜드의 축
'단단한 중심'이라는 제 오랜 화두도 떠올랐습니다. 럭셔리 브랜드가 외부의 시선이나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비교를 거부하며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근원은, 바로 이 '단단한 중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단한 중심은 브랜드가 오랜 시간 지켜온 철학이자 비전이며, 모든 활동의 기준점이 됩니다. 결함을 매력으로 승화시키는 것도 이 단단한 중심의 힘이죠.
유행이나 시장의 요구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힘도 바로 이 단단한 중심에서 나옵니다. 럭셔리는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동시대와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전통에만 집착하면 시대에 뒤처져 고리타분해지기 쉽고, 반대로 동시대의 유행만을 좇다 보면 브랜드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단단한 중심'의 역할이 중요해집니다.
브랜드는 단단한 중심을 축으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변화시킬지 판단합니다. 책에서는 브랜드 정체성의 '중심적인(central)' 측면과 '주변적인(peripheral)' 측면을 식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변치 않아야 할 핵심(중심적인 측면)을 굳건히 지키면서, 시대의 흐름에 맞춰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는 부분(주변적인 측면)을 조화롭게 관리하는 것. 비단 럭셔리 브랜드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중요한 인사이트입니다.
2. 럭셔리의 기준: 시간 속에서 숙성된 가치
럭셔리가 비교급이 아닌 최상급인 두 번째 이유는 "스스로 설정한 아주 높은 수준의 기준"을 따른다는 점입니다. 럭셔리의 기준에는 '축적되고 계승되어 온 가치와 정신’이라는 요소가 중요하게 포함됩니다. 럭셔리 제품 하나하나에는 브랜드가 오랜 시간 쌓아온 역사와 고유한 문화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오래되었다는 의미를 넘어, 시간을 견디며 연마되고 숙성된 원칙이 그 기준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럭셔리 브랜드가 오랜 시간 쌓아온 시간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은 제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외부의 평가나 단기적인 유행에 휩쓸리기보다, 스스로 고민하며 충분히 숙성시킨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따라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저만의 '최상급' 기준을 만들어가는, 때로는 흔들리고 고민하며 그 기준을 숙성시켜 나가는 과정을 '담은 순간들'에 꾸준히 기록하고 나누고자 합니다.
3. 전통·유산·역사에 대한 존중: 시간 속에서 길어 올린 깊이
럭셔리가 비교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마지막 이유는 "전통·유산·역사에 대한 깊은 존중"에 기반하기 때문입니다. 책은 럭셔리 브랜드에 있어 역사와 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러 차례 강조합니다.
헤리티지와의 소통: 과거와 현재를 잇는 서사 만들기
역사가 짧거나 없는 신생 브랜드는 어떻게 역사를 만들어갈까요? 책에서는 이들이 종종 역사적 서사를 '발명'하거나 '차용'하여 브랜드의 깊이를 더한다고 설명합니다. 저는 여기서 '차용'의 방식에 특히 주목했습니다. 저는 ‘헤리티지와 소통하는 삶’을 모토로 삼고 있는데요, 책을 읽으며 신생 브랜드가 역사를 차용해서 브랜드의 깊이를 더해가듯 저 역시 헤리티지와 소통하며 저만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의 유산을 저의 맥락 속으로 가져와 새롭게 해석하고, '헤리티지의 맥락에 나를 위치시키는' 과정을 통해 저만의 고유한 서사를 만들어갑니다. (신경미 작가가 본인의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을 보편적인 역사와 문화라는 더 넓은 시공간 속에 위치시키며 아픈 기억과의 화해를 시도하는 작업 방식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밑줄 클릭하시면 링크로 이어집니다.) 저 역시 때때로 찾아오는 깊은 외로움을, 유구한 헤리티지 속에 홀로 존재했던 수많은 섬세한 영혼들을 떠올리며 그 보편적인 맥락 속에 배치함으로써 위안을 얻곤 합니다.
아카이브의 힘: 브랜드의 정수를 담다
헤리티지를 존중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는 헤리티지를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이는 아카이브의 중요성으로 이어집니다. 책에는 칼 라거펠트가 샤넬의 디렉터를 맡았을 때 샤넬 하우스의 아카이브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샤넬만의 언어를 깊이 연구했다는 사례가 나옵니다. 아무리 뛰어난 디자이너라도 브랜드의 뿌리가 되는 역사와 정신을 존중하고 계승해야 진정한 창조가 가능합니다. 역사는 브랜드의 뿌리이며, 아카이브는 그 뿌리로부터 자양분을 길어 올려 현재를 풍요롭게 하고 미래를 여는 통로입니다.
이는 저로 하여금 저만의 아카이브를 구축해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습니다. 제가 경험하고 사유하며 마음을 주었던 순간들을 이 공간 '담은 순간들'에 차곡차곡 기록하고 모으는 것이 그 시작입니다. 책, 음악, 미술, 영화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발견들까지, 제 마음을 움직였던 것들을 담아두려 합니다. 이렇게 쌓인 기록들이 훗날 저만의 소중한 헤리티지가 되어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든든한 뿌리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맺음말
결국 "럭셔리는 최상급이지 비교급이 아니다"라는 말은, 럭셔리가 외부와의 비교·경쟁보다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고유한 정체성, 스스로 세우고 숙성시킨 높은 기준,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전통과의 연결을 통해 자신만의 독보적인 가치를 만들어간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는 비단 브랜드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삶 또한 남들과 비교하며 조급해하기보다 자신만의 색깔과 기준으로 채워나가며 고유한 이야기를 써 내려갈 때 더욱 풍요롭고 단단해지지 않을까요? 외부의 기준이 아닌 내 안의 '최상급'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럭셔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럭셔리한' 삶의 태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담은 순간들'에서는 앞으로도 럭셔리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우리 삶의 가치를 더해줄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꾸준히 담아갈 예정입니다. 당신이 추구하는 '최상급'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것도 언제나 환영합니다.
어떤 영화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마음을 깊숙이 파고듭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룸 넥스트 도어'가 저에게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존엄한 죽음이라는 다소 무겁고 심오한 주제를 다룰 것이라 생각했는데, 영화는 예상과는 다른 결의 감동과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영화 전체를 감싸는 독보적인 미감에 마음이 사로잡혔습니다.
눈부신 미장센, 감각의 향연
도입부의 음악부터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영화 내내 섬세하면서도 때로는 강렬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은 인물들의 감정선과 영화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조율하며 관객을 몰입시킵니다. 여기에 더하여 비비드하면서도 세련된 색감은 존엄한 죽음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었습니다. 화면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섬세하게 배치된 듯한 미장센은 그 자체로 영감을 주었습니다. 색감만으로도 이렇게 황홀할 수 있다니요. 탁월한 미감은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 영화의 메시지를 더욱 섬세하고 아름답게 전했습니다.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까지 더해져, 영화라는 매체를 향유할 수 있음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존엄한 죽음, 새로운 서사를 쓰다
영화는 우리에게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합니다. 암 투병 과정에서 흔히 그려지는 고통스러운 항암치료와 투병이라는 기존의 익숙한 서사 대신, 주인공은 ‘나만의 서사'를 써 내려가기로 결연히 마음먹습니다. 그녀는 다가올 쇠락의 과정을 피하고, 자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존엄을 지키려 합니다. 그 주체적인 선택이 너무나 멋지게 다가왔습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2024년 3월 타계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네만이 떠올랐습니다. 비교적 건강했지만 스스로 조력사를 선택하며 삶의 마지막을 맞이했던. 이는 삶의 마지막 몇 년간 겪게 될지도 모를 고통과 존엄성 상실을 불필요하다고 여겼던 그의 오랜 신념에 따른 결정이었습니다. 죽기 전 파리에서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낸 후 삶을 마무리했다는 그의 이야기가 영화 속 주인공의 여정과 겹쳐 보였습니다.
삶의 정점과 끝: 피크-엔드 룰 (Peak-End Rule)
카네만의 마지막 선택은 그가 주창한 이론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그가 제시한 '피크-엔드 룰(Peak-End Rule)'은 우리가 어떤 경험을 기억하고 판단할 때, 경험의 총 시간이나 평균적인 좋고 나쁨보다는 감정이 가장 고조되었던 순간(Peak)과 맨 마지막 순간(End)의 경험에 의해 전체 경험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론입니다. 즉 아무리 길고 즐거운 여행이었더라도 마지막 날 불쾌한 경험을 했다면 그 여행은 나쁜 기억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고, 반대로 힘든 경험이었더라도 절정의 순간과 마지막 순간이 긍정적이었다면 전체를 좋게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죠.
카네만은 파리에서 가족들과 마법 같은 마지막 날들을 보내며 신중하게 세운 계획을 따랐습니다. 피크-엔드 룰로 보면, 그는 90년 인생의 행복한 결말을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저는 그가 선택한 '좋은 마지막(Good End)'에서 자신의 이론과 삶을 일치시킨 학자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가장 나다운 순간에 찍는 마침표
가장 좋은 순간에 마무리 짓는 것은 너무 빨리 그만두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마치 전성기 때 은퇴를 한 야구선수처럼요. 하지만 영화 속 주인공은 그러한 통념이나 아쉬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삶의 마지막 장을 스스로 결정하며 아름답게 써내려갑니다. 이 용기 있는 선택, 스스로 써 내려간 ‘나만의 서사’가 어딘가 낯설면서도 묘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영화는 이 철학적인 질문과 선택을 너무나 예술적으로 훌륭하게 뒷받침합니다. 삶의 빛나는 순간들을 담아내는 비비드한 색감,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정교한 구도, 마지막 순간의 아름다움을 함께하는 음악까지. 영화의 미장센은 단순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 피크-엔드 룰을 영화적인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젊은 나에게는 아직 써야 할 마음이 남아있다
"나란 사람은 거의 남지 않았어"라는 주인공의 대사도 마음에 깊이 남습니다. 유한성을 직시하게 하는 강렬한 순간이었어요. 언젠가 저에게도 이런 날이 오겠지요. 언제까지 지금처럼 뜨겁게 무언가에 마음을 줄 수 있을까요. 써야 할 마음이 남아있을 때,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더 많이 경험하고 더 깊이 느끼며 순간들을 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