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우리는 투자의 본질이 '기다림'에 있음을, 그리고 그 지루한 시간을 견뎌내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오늘은 그 기다림의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고, 또 무엇을 비워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 보려 합니다.

투자를 하다 보면 종종 기이한 최면에 걸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빨간색과 파란색 숫자가 쉴 새 없이 깜빡이는 호가창을 멍하니 응시하다 보면, 마치 그 숫자의 춤사위에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세상은 온통 그 숫자가 전부인 것 같고, 당장이라도 매수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나만 뒤처질 것 같은 조급함이 온몸을 휘감습니다.

소음은 그렇게 가장 화려하고 시끄러운 방식으로, '확신'이라는 가면을 쓰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오늘은 이 소란스러운 확신들 사이에서, 아주 작지만 단단한 '사려 깊은 속삭임'을 가려내는 안목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1. 시장이라는 연속극

우리는 정보 중독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습관처럼 뉴스를 켜면, 세상은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 호들갑을 떱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경제 회복이 V자가 될지 U자가 될지 전망하느라 분주하고, 월스트리트의 증권사들은 다음 분기 주당 순이익을 맞히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노마드에게 이 모든 풍경은 그저 '시장이라는 연속극(Soap Opera)'에 불과했습니다. 대중은 며칠이면 무의미해질 그 정보들에 끊임없이 반응합니다.

저에게도 그런 '가짜 자극'에 취해 비틀거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클로(Oklo)' 투자 실패가 정확히 그랬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저는 정보를 담아낼 '나만의 그릇(모델)'이 없었습니다. 단단한 해석의 틀이 부재한 상태에서 쏟아지는 뉴스와 시장의 환호성이라는 '피상적 정보' 그 자체에 즉각적으로 반응했습니다.

"부분적으로만 이해한 정보에 순간적으로 반응하면 많은 경우 재앙이 초래됩니다."

2. 정보보다 먼저 갖춰야 할 '그릇'

그렇다면 어떻게 이 강력한 최면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요? 책 <CIA 심리학>은 흥미로운 통찰을 제시합니다. 문제의 근본은 쏟아지는 정보(데이터)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정보를 해석하고 가공하는 '정보 처리 모델(Model)'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더 많은 증거(정보)를 수집하면 더 정확한 결론에 이를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이는 착각입니다. 우리의 결론은 '증거 자체'보다, 그 증거를 해석하는 방법을 결정하는 '나의 가정'에 의해 이미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존의 분석 모델이 잘못되어 있다면, 아무리 새로운 정보를 쏟아부어도 그 정보는 왜곡되거나 무시될 뿐입니다.

즉, 중요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정보에 관한 정보', 바로 내 머릿속의 틀을 점검하는 일입니다. 나만의 단단한 모델이 없다면, 우리는 시장의 분위기라는 거대한 모델에 휩쓸리게 됩니다. 반면 확고한 전제와 틀을 가지고 있다면, 쏟아지는 뉴스들을 주체적으로 평가하고 걸러낼 수 있습니다. (이 개념은 추후 별도의 글로 깊이 있게 다루겠습니다.)

3. 화려한 외침 뒤의 조용한 속삭임

단단한 그릇(모델)이 준비되었다면, 이제 그 안에 무엇을 담고 무엇을 덜어낼지 결정해야 합니다. 이를 위한 가장 지혜로운 태도는 '비아 네가티바(Via Negativa)'입니다.

"현명함의 비결은 무엇을 볼 것인가보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과감하게 덜어내야 합니다. 금세 상해버릴 단기 실적이나 거시경제 예측 같은 '유통기한 짧은 정보'를 걷어내고, 그 자리에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발효되는 '사려 깊은 속삭임(진실)'을 담아야 합니다.

최근 이코노미스트에서 읽은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에 대한 이야기는 이 지점을 명확히 짚어줍니다. 세상은 종종 '챗GPT'나 '위고비' 같은 화려한 히트 상품에 열광합니다. 그것은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시끄러운 확신이기에 매혹적입니다. 하지만 그 소란스러움 뒤편에는 다른 차원의 진실이 흐르고 있습니다.

히트 상품 하나가 반짝 떴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건, 그 성공을 지속가능한 구조로 만들고 있느냐입니다. 오픈AI가 천문학적 비용을 감당하며 질주할 때, 구글은 탄탄한 생태계 위에서 조용히 추격합니다. 노보노디스크가 공급난을 겪을 때, 일라이 릴리는 더 효율적인 유통망을 구축하며 시장을 잠식합니다.

"단 하나의 히트 상품은 대중의 주목을 끌 수는 있지만, 장기적인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진정한 성공은 타인이 쉽게 복제할 수 없는 독보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고,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끊임없이 진화하는 데서 옵니다." - <The Economist>

화려한 히트 상품은 소음처럼 크게 들리지만, 복제 불가능한 해자는 속삭임처럼 작게 들립니다. 우리는 그 작고 깊은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4. 헤드라인에는 없는 진실

나만의 해석 모델(그릇)과 사려 깊은 속삭임(내용물)이 만날 때, 우리는 비로소 소음 너머의 신호를 포착할 수 있습니다. 노마드는 이를 '목적지 분석(Destination Analysis)'이라 부릅니다.

지금 당장의 파도가 얼마나 높은지가 아니라, "이 기업이 10년, 20년 뒤 도달할 목적지는 어디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복잡해 보이던 소음들이 사라지고 단순한 진실이 드러납니다.

노마드는 월마트(Walmart)의 사례를 들려줍니다. 월마트가 40년 동안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일들이 기적처럼 다 잘 풀렸어야 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언뜻 타당해 보입니다. 그 거대한 제국을 유지하려면 수만 가지 톱니바퀴가 완벽하게 맞물려야 할 것 같으니까요.

하지만 노마드가 보기에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본질적으로 중요한 건 '단순한 사실 몇 가지'뿐이었습니다. '규모의 경제를 공유해 성장을 촉진하는 절약 지향성'과 '이를 지탱하는 강력한 기업 문화'.

당시 투자자들은 당장의 이익률 추이나 밸류에이션 같은 복잡한 지표에 매몰되어 이 진실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긴 안목을 가진 투자자는 알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성공하기 위해 모든 것이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근본'이 단단히 서 있다면, 나머지 수만 가지 지엽적인 문제들은 저절로 해결되거나 흐름에 맞춰지기 마련입니다.

제가 '카바나(CVNA)'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당시 헤드라인은 온통 '파산'이라는 단어로 도배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목적지 분석을 통해 "망하지만 않으면 중고차 시장의 구조를 바꿀 기업"이라는 신호에 더 큰 가중치를 두었습니다.

근본적 리스크는 헤드라인에 나오는 것들이 아닙니다. 진정한 리스크는 금리나 전쟁 같은 외부 변수가 아니라, 기업이 자신의 목적지(잠재력)에 도달하는 것을 방해하는 내부의 실패입니다.

5. 오래되어도 낡지 않는 것을 곁에 두는 태도

"최신 뉴스 흐름에 연연하지 않으며 가장 중요한 정보를 인식하고 올바른 가중치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원칙의 문제입니다. 바로 이 원칙이 나중에 가서 엄청난 보상을 받게 되는 것이죠." - <노마드 투자자 서한>

저에게 있어 투자의 실력이란, 뉴스를 얼마나 빨리 접하느냐가 아니라 뉴스를 보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은 상태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관심이 아닙니다. 매일 쏟아지는 뉴스와는 상관없을 만큼, 이미 기업에 대한 깊은 기반을 단단히 다져두었기에 가능한 평온함입니다.

기업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면 매일의 주가 등락이라는 잡음에 과잉 반응할 필요가 없습니다. 최선의 해법은 작은 변화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말고 큰 변화만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투자뿐 아니라, 우리 삶을 관통하는 중요한 태도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식재료를 꼼꼼히 고르듯, 정신의 섭식과 영양에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옷을 고르거나 물건을 곁에 둘 때 유독 '헤리티지(Heritage)'와 '타임리스(Timeless)'에 마음이 가는 이유도 이와 닿아 있습니다.

"대상이 무엇이든지 간에, 수명이 짧은 것은 제쳐두고 장기간의 지속가능성이 있는 것에 집중하는 일."

유행을 따라 한 철 입고 버려지는 옷보다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더해지는 옷에 마음이 갑니다. 금세 휘발되는 자극적인 가십보다는,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남은 고전과 지혜에 더 깊은 울림을 느낍니다.

시끄러운 확신들이 난무하는 세상입니다. 누군가는 오늘의 승자가 누구인지 소리 높여 외치지만, 진실은 종종 "아마도", "그럴 수도 있지만"과 같은 사려 깊은 속삭임 속에 숨어 있습니다.

소음에 정신이 팔린 사람은 결코 음악을 들을 수 없습니다. 지금 당신의 귀에는 무엇이 들리나요? 시끄러운 확신인가요, 아니면 조용한 진실의 속삭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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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 깊은 속삭임에 귀 기울이기

투자와 삶은 닮아 있습니다. 유행 타는 옷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더해지는 '타임리스(Timeless)'한 것에 마음이 가듯, 매일 변하는 뉴스보다 변하지 않는 본질에 집중해야 합니다. 화려한 확신들 사이에서 작지만 단단한 '진실의 속삭임'을 가려내는 안목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