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경제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이에도, 전 세계 명품의 80%는 여전히 유럽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유럽이 파는 건 가방이나 구두가 아니라 '유럽식 삶의 방식에 대한 동경'입니다. 미국이 F-35를, 한국이 K-Pop을 수출할 때 유럽은 '품격'을 수출한다는 거죠. 명품 하우스들은 장인 부족을 내세워 희소성을 연출하지만, 실제 산업 규모는 2000년 이후 3배나 커져 연 3,580억 유로에 이릅니다. 기사는 이를 중세 교회의 면죄부에 빗대기도 해요 — 구매자가 '사회적 무명'에 머무는 시간을 줄여주는 장신구를 판다고요.
한편 가격 폭등으로 정작 유럽 중산층은 자국 명품을 사지 못하게 됐고, 샹젤리제에 늘어선 줄은 미국인, 중국인, 한국인이 채우고 있습니다. 부유층의 관심은 물건에서 경험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합니다.
담은순간들 생각
읽으면서 계속 찔렸어요. "사회적 무명의 상태에 머무는 시간을 줄여주기 위한 장신구", "수작업으로 공들인 사기" — 그동안 저의 소비/경험은 heritage와 양질의 것들을 경험하면서 안목을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런 표현들 앞에서 그 말들이 좀 궁색해지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저희 집 테이블 위에는 질샌더 구두가 놓여 있거든요. 산 지 2주쯤 됐는데 아직 한 번도 신지 않았습니다. 그냥 보고 있으면 좋아서요. 시선을 위한 거라면 당장 신고 나갔겠죠. 혼자서 테이블 위에 두고 보는 거니까, 이건 기사가 말하는 허영과는 다른 결의 기쁨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도 질문은 남아요. 패션에서 timeless니 heritage니 하는 말들이 어디서든 붙어 나오잖아요. 처음에는 브랜드마다 당연하다는 듯 붙이는 수식어가 남용처럼 느껴졌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비판적인 눈이 무뎌진 것 같기도 해요. 소비의 즐거움이 — 그게 나를 알아가는 기쁨이든, 새로움에서 오는 도파민이든 — 비판적인 시선을 조용히 눌러버린 건 아닌가 싶어서요.
생각거리
패션에서는 아직 브랜드라는 이름 없이 자신 있게 고르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클래식 음악에서는 비슷한 과정을 좀 더 앞서 겪었어요. 처음에는 거장의 공연은 숭배하듯이 들었습니다. 베를린 필이 연주하면 일단 나를 내려두고 듣게 되죠. 그러다 언젠가부터 듣고 나서 "이 악단이니까 좋은 거야"에서 멈추지 않고, 정말 좋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됐어요. 거기까지 오는 데 꽤 시간이 걸렸고, 용기도 필요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브랜드든 거장의 이름이든, 그건 수십 년간 실제로 쌓여온 시간과 신뢰의 결이기도 해요. 무시할 게 아니라 존중할 만한 거죠. 다만 그 이름에 이끌려 새로운 걸 만나는 것과, 그 이름 안에 머무르는 것은 꽤 다른 이야기인 것 같아요.
한때 궁극의 안목은 브랜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요. 돌이켜보면 "나는 브랜드 같은 거 필요 없어"라고 선언하는 것도 "나는 그 수준에 이른 사람이야"라는 또 다른 포지셔닝이더라고요. 어쩌면 목표는 브랜드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브랜드에서 멈추지 않는 것 — 신호로 읽되 거기서 끝내지 않는 것 — 이 아닐까 합니다.
“기다림을 장애물이 아닌, 가꾸어야 할 재료로 생각해보세요.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모든 것이 쓰게 변할 것입니다. 하지만 잘 다룬다면,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을 더 달콤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 <Monocle>
옷장을 열어봅니다. 한 철 유행에 휩쓸려 샀다가 몇 번 입지도 못하고 방치된 옷들과, 시간이 지날수록 손이 가고 내 몸에 맞게 익어가는 옷들이 공존합니다.
최근 제 마음을 사로잡은 옷이 하나 있습니다. 일본 브랜드 코모리(Comoli)의 '실크 넵(Silk Nep)' 팬츠입니다. 얼핏 보면 평범한 츄리닝 바지 같습니다. 표면에는 보풀(nep)이 거칠게 일어나 있어, 누군가는 "그 돈 주고 왜 그런 헌 옷을 사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옷의 진가는 입어본 사람만이 압니다. 피부에 닿는 실크 특유의 서늘하고도 부드러운 감촉, 그리고 입으면 입을수록 움직임에 맞춰 자연스럽게 흐르는 실루엣. 디자이너가 의도한 이 낡음은, 새것의 뻣뻣함이 줄 수 없는 깊은 편안함과 멋을 선사합니다. 남들의 시선보다 입는 사람의 감각에 집중한,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더해지는 옷입니다.
투자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때면 저는 종종 옷장을 떠올립니다. 투자의 세계 역시 옷장과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화려하지만 금세 질리는 패스트 패션 같은 주식이 있는가 하면, 투박해 보여도 시간이 지날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클래식 같은 기업이 있습니다.
그런 클래식을 찾아 헤매던 시절을 함께한 텍스트가 있습니다. 바로 닉 슬립과 콰이스 자카리아가 쓴 <노마드 투자자 서한>입니다. 지난 2년간 카바나(CVNA)에 투자하며 50배의 수익을 거두는 과정은, 얼핏 보기엔 화려한 숫자일지 몰라도 안에서는 의심과 공포와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이 서한들을 읽으며 중심을 다잡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이 글들을 읽어내려갑니다.
담은 순간들에서는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저의 투자 여정을 지탱해 주었던 <노마드 투자자 서한> 속 지혜들을 다시 정리해 보려 합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조급한 세상에서 가장 귀한 가치, '기다림'이라는 럭셔리입니다.
1. 시간이라는 해자 (The Moat of Time)
모노클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즉각적 만족(Instant Gratification)의 세대'입니다. 모든 것이 당장 해결되어야 하고, 보상은 즉시 주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런 조급함은 투자 시장에서 더욱 극단적으로 나타납니다.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시계열은 1년에서 분기로, 다시 하루하루로 짧아졌습니다. 모두가 지금 당장 움직이는 것을 쫓는 이 숨 가쁜 호흡 속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때를 기다리는 모습은 치열하게 일하지 않는 '게으름'이나 변화에 뒤처진 '무능'으로 오해받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저 시간 범위(time horizon)를 늘리는 것만으로도 다른 방법하에서는 불가능한 시도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만약 당신이 3년 안에 성과를 내야 한다면, 당신은 수많은 사람과 경쟁해야 합니다. 하지만 7년이라는 시간 범위를 가진다면, 경쟁자는 확연히 줄어듭니다. 그렇게 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단기적 시각 (Short-term)
장기적 시각 (Long-term)
시간 범위
1년 ~ 3년
7년 이상
경쟁 강도
매우 치열함 (Red Ocean)
거의 없음 (Blue Ocean)
투자 성격
성과 증명과 타이밍 싸움
본질적 가치 창출과 기다림
대다수의 투자자는 1년, 아니 다음 분기의 성과에 목숨을 겁니다. "올해 지수(Index)를 이겼는가?"라는 질문에 쫓기며, 당장 오를 것 같은 '핫한' 주식을 찾아 헤맵니다. 이는 매 시즌 바뀌는 유행을 쫓아 패스트 패션을 사 모으는 것과 같습니다. 잠깐의 만족은 있을지 몰라도, 결국 옷장에는 유행 지난 옷무덤만 남게 됩니다.
노마드는 우리에게 "단기적 시각을 가진 군중들보다 더 멀리, 길게 보는 것만이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건 '투자의 질(Quality)'이지 '수익의 타이밍'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씨앗을 심고 싹이 트기를 기다리듯 5년, 10년이라는 긴 호흡(Time Horizon)을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남들이 넘볼 수 없는 '시간의 해자' 안에 머물게 됩니다.
경쟁이 치열한 단거리 트랙에서 벗어나, 아무도 달리지 않는 장거리 트랙으로 들어서는 것. 이것이야말로 확실한 경쟁우위입니다.
2. 소음 속에서 고요를 입는 법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투자를 하면서 ‘시장 지수’를 신경 써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운 좋게도 지난 몇 년간 압도적인 수익을 거두고 있었기에, 지수는 제 경쟁자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를 무너뜨린 건 지수가 아니라 '비교'에서 오는 FOMO였습니다. 제 주식이 숨을 고르는 사이, 옆 동네의 AI와 원전 관련주들이 연일 폭죽을 터뜨리는 것을 보며 평정심을 잃었던 것입니다.
노마드는 말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투자자라도, 1년이나 2년 정도 시장보다(혹은 남들보다) 뒤처지는 시기는 '필연적'으로 찾아온다고요.
우리는 종종 당장의 등락률로 자신의 실력을 검증하려 듭니다. 하지만 노마드는 선을 긋습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건 '투자 의사결정의 질(Quality)'이지, '타이밍(Timing)'이 아닙니다."
단기적인 주가 흐름은 그저 '타이밍(운)'을 보여줄 뿐, 우리가 도착할 '최종 목적지(실력)'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주가가 오르지 않았다고 해서 내 투자 아이디어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남들의 주가가 오른다고 해서 그들이 영원히 옳은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스토아적인 초연함입니다. 이것은 맹목적인 인내가 아닙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질'에 집중했다면, 통제할 수 없는 '시기'는 기꺼이 시장에 맡기겠다"는, 본질을 꿰뚫어 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고요한 자신감입니다.
3. 지루함, 성장의 다른 이름
물론 기다림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투자는 은행 적금처럼 매일 꼬박꼬박 이자가 붙는 선형적(Linear)인 과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오랜 시간 아무런 변화가 없다가,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비선형적(Non-linear)인 곡선을 그립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건 바로 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 즉 밥을 지을 때 뜸을 들이는 것과 같은 인고의 시간입니다.
저에게도 뼈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제 주력 종목인 '카바나(CVNA)'가 올여름부터 가을까지 횡보하던 시기였습니다. 기업은 분명 좋아지고 있는데 주가는 몇 달째 박스권이었죠.
저는 그때 그것이 '뜸 들이는 시간'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밥을 지을 때 맹렬히 타오르던 불을 끄고 뚜껑을 덮어두는 시간. 겉보기엔 아무런 변화가 없고 열기도 식은 것 같지만, 솥 안에서는 수분이 쌀알 깊숙이 스며들며 진짜 밥맛이 완성되는 결정적인 순간 말입니다.
노마드는 말합니다.
"가치 창출은 천천히 느린 속도로 만들어졌을 때 더 오랫동안 지속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고요함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시장 저편에서 '오클로(OKLO)'를 비롯한 원전·AI 관련주들이 매일같이 폭등하며 파티를 벌이자, "남들은 다 돈을 버는데, 나만 지루한 주식을 들고 소외되었다"는 FOMO가 저를 덮쳤습니다. 뜸이 채 들지도 않았는데 솥뚜껑을 열어버린 것입니다.
저는 잘 지어지던 밥(카바나)을 팔아치우고, 화려해 보이는 파티장(오클로)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제가 뒤늦게 올라탄 오클로는 폭락하여 큰 손실을 안겨주었고, 제가 버리고 떠난 카바나는 그 직후 비선형적인 폭발을 시작하며 신고가를 경신했습니다.
투자자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실수는, 단지 지금 겉보기에 조용하다는 이유로 뜸이 들고 있는 솥을 제 발로 걷어차고 나가는 것입니다.
기다림, 삶을 달콤하게 만드는 재료
다시 코모리 팬츠를 입어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도 아직 이 옷의 진가를 100% 확신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한 계절도 보내지 못했거든요. 거울을 보며 "정말 이 낡아 보이는 옷이 시간이 지날수록 멋져질까?" 하고 반신반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바로 그 '의심과 기대 사이의 시간'을 즐겨보려 합니다. 지금 당장은 낯설고 확신이 없더라도, 디자이너의 철학과 좋은 소재의 힘을 믿고 내 몸에 길들여가는 과정을 겪어보려 합니다.
투자의 세계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옷에 디자이너의 철학과 좋은 소재가 깃들어 있듯, 기업에는 경영자의 비전과 탁월한 비즈니스 모델이 숨 쉬고 있습니다.
좋은 옷이 몸에 익을 시간이 필요하듯, 경영자의 비전과 비즈니스 모델이 가치를 만들어내는 데에도, 그리고 투자자가 그 가치를 온전히 알아보는 데에도 반드시 '뜸 들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가치는 오직 숙성의 시간을 통과해야만 완성됩니다.
투자의 시계열을 늘린다는 건, 단순히 주식을 오래 들고 있겠다는 다짐을 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입니다. 한 철 입고 버릴 옷이 아니라 평생을 함께할 클래식을 고르는 안목, 당장의 화려함보다는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본질을 믿고 기다리겠다는 선언입니다.
기다림을 장애물이 아닌, 내 삶을 더 풍요롭게 가꾸어갈 재료로 받아들여 봅니다. 조급함이 틈탈 때마다, 낡을수록 멋스럽게 변할 코모리의 옷을 입으며 되뇌어 보려 합니다. 이 옷이 내 몸에 맞춰 익어가는 데 시간이 필요하듯, 진정한 가치는 숙성의 시간을 거쳐야 비로소 그 깊은 맛을 낸다는 것을요.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문득 ‘시간을 잘 보낸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삶의 많은 부분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달려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베블런의 저서 ‘유한계급론’을 읽다가 ‘과시적 여가’라는 개념이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온 적이 있습니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특정 가치를 위해 여가 시간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의미 없이 흘려보내던 제 시간들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책에서 말하는 사회적 맥락과는 결이 다르지만, 여가 시간을 어떤 가치를 담아 채워나가는지가 우리 삶의 질과 만족도, 나아가 내면의 성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의미 있는 채움'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눠보고 싶습니다.
자유 속에 찾아오는 혼란
더 많은 여가 시간이 주어질수록 더 큰 혼란을 느끼기도 합니다. 주말 혹은 긴 연휴를 앞두고 ‘잘 보내야 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오는 경험, 다들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특별한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지만 막상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시간을 흘려보내곤 합니다.
"퇴근하고 뭐 하세요?"라는 질문에 선뜻 답하기 어려울 때도 많습니다. 저의 경우 아침에는 부지런히 운동을 하지만, 막상 퇴근 후에는 딱히 정해진 활동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도 분명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능동적으로 선택한 시간이 아니라,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 속에서의 소극적인 시간이라면 한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더욱이 이런 시간이 한두 번 일시적인 것을 넘어 습관처럼 굳어져 퇴근 후 의미 없이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일상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어쩌면 새로운 나를 만나고 삶의 또 다른 즐거움을 발견할 소중한 기회를 스스로에게서 빼앗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저 흘려보내는 시간 속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성장의 씨앗들이 얼마나 많을지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가에도 때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여가에도 때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유한계급론’에서 언급된 유한계급 신사들은 자신의 “한가한 삶을 고되게 갈고닦음으로써” 과시적 여가에 어울리게 생활하는 법을 익혔다고 합니다. 그들의 주된 목적이 여가를 통한 사회적 과시에 있었다면, 제가 여가를 통해 추구하는 바는 삶의 의미를 찾고 내면을 채워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공통점은, 어떤 목적이든 가치 있는 여가를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결국 여가 시간을 어떻게 조각해 나가는가는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향유하며 삶을 주체적으로 가꾸어가는 능동적인 시간 활용의 문제입니다. 적극적으로 나만의 시간을 ‘조각’하려는 의지와 실천은 여가를 넘어, 우리가 삶을 얼마나 주체적으로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분명한 지표입니다.
시간으로 숙성되는 진정한 럭셔리
의식적인 노력을 들여 가꾼 여가 시간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우리 안에 깊이와 넓이를 더하는 소중한 자양분이 됩니다. 그렇게 한 켜 한 켜 쌓인 시간과 경험이야말로 돈으로 살 수 없는 럭셔리 – 넓고 깊은 안목 – 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럭셔리는 값비싼 물건이나 화려한 경험 너머, 오랜 시간 세심한 시선으로 순간을 포착하고 새김으로써 깊어지는 안목일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내면의 자산들은 결코 단기간에 얻어지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연마하고 가꾸는 과정 속에서 생겨납니다.
결국 여가 시간을 잘 보낸다는 것은 진정으로 ‘마음 줄 곳’을 찾고, 그 시간을 통해 스스로를 더욱 풍요롭게 가꾸어가는 창조적인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잘 보낸 여가는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을 발하며 우리 삶을 단단하게 지탱하는 럭셔리가 되어줄 것입니다.
'담은 순간들'에서는 제가 마음을 준,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울림을 주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번 글은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았거나 절판되어 쉽게 만나보기 어려운 양질의 책들을 읽고 그 안의 지혜를 탐색하는 두 번째 시리즈입니다.
이번 시리즈에서 다룰 책 <The Luxury Strategy>는 럭셔리를 단순한 상품이 아닌, 고유한 철학과 전략을 가진 하나의 세계로 바라보게 해주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럭셔리라는 개념을 통해 제 삶의 가치관과 태도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럭셔리가 삶의 태도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담은 순간들'에 담아보려 합니다.
제가 럭셔리에 마음을 주게 된 계기부터 말씀드릴까 합니다. 저는 헤리티지(heritage), 그러니까 시공간을 초월하여 전해 내려오는 유산에 깊은 애정을 느껴왔습니다. 오래된 것들에 깃든 시간의 흔적과 이야기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과 영감을 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헤리티지에 특히나 애정과 열정을 갖고 해석하고 활용하는 존재가 '럭셔리 브랜드'였습니다.
저는 단순히 값비싼 물건을 소유하는 것을 넘어 삶의 가치와 태도로서의 '럭셔리'를 지향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장 노엘 캐퍼러와 뱅상 바스티앙이 쓴 <The Luxury Strategy>를 만났습니다. 책에서 다루는 럭셔리의 다양한 속성들 – 고유한 정체성, 시간과 여유의 가치, 기능을 넘어선 꿈과 감성,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 전통과 동시대성의 조화, 구별 짓기, 희소성 등 – 은 앞으로 '담은 순간들'을 통해 하나씩 풀어내고 싶은 소중한 화두가 되었습니다. 고민하며 숙성시킨 생각들을 앞으로 꾸준히 글로 발행해 나갈 예정입니다.
그중에서도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문장, 이 책의 핵심적인 메시지 중 하나가 오늘 나눌 이야기입니다.
"럭셔리는 비교급이 아니라 최상급이다.” (Luxury is superlative, not comparative)
오늘은 이 문장을 실마리 삼아, 럭셔리가 왜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걷는지 그 이유를 '정체성', '기준', 그리고 '전통·유산·역사에 대한 존중'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풀어보고자 합니다.
1. 럭셔리의 정체성: 비교를 거부하는 고유함
럭셔리 브랜드는 자신을 다른 브랜드와 비교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브랜드들이 타 브랜드와의 경쟁 속에서 자신의 우위를 찾고 차별점을 부각하려 애쓰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럭셔리는 오직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에만 집중할 뿐, 경쟁자를 의식하거나 비교 우위를 점하려 애쓰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고유한 정체성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저는 '꿈'과 '단단한 중심'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떠올렸습니다.
럭셔리는 프리미엄이 아니다: 품질 너머 '꿈'을 담다
먼저 책에서는 '럭셔리는 프리미엄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성능, 품질 등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가치를 통해 '더 나은' 제품임을 증명하려 한다면 럭셔리는 그 너머의 가치, '꿈'을 추구합니다. 기능적 완벽함보다는 브랜드 고유의 비전과 철학, 그리고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감성적 울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책에서는 '능가하는 것과 정체성을 소유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outclassing a model is one thing, but possessing an identity is another)'라고 지적하며, 아무리 기술적으로 뛰어난 제품이라도 브랜드만의 '꿈'을 담아내지 못한다면 진정한 럭셔리가 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럭셔리는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 때도 있습니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이상과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생긴 '결함'은 때로는 럭셔리만의 독특한 매력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단단한 중심: 흔들리지 않는 브랜드의 축
'단단한 중심'이라는 제 오랜 화두도 떠올랐습니다. 럭셔리 브랜드가 외부의 시선이나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비교를 거부하며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근원은, 바로 이 '단단한 중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단한 중심은 브랜드가 오랜 시간 지켜온 철학이자 비전이며, 모든 활동의 기준점이 됩니다. 결함을 매력으로 승화시키는 것도 이 단단한 중심의 힘이죠.
유행이나 시장의 요구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힘도 바로 이 단단한 중심에서 나옵니다. 럭셔리는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동시대와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전통에만 집착하면 시대에 뒤처져 고리타분해지기 쉽고, 반대로 동시대의 유행만을 좇다 보면 브랜드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단단한 중심'의 역할이 중요해집니다.
브랜드는 단단한 중심을 축으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변화시킬지 판단합니다. 책에서는 브랜드 정체성의 '중심적인(central)' 측면과 '주변적인(peripheral)' 측면을 식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변치 않아야 할 핵심(중심적인 측면)을 굳건히 지키면서, 시대의 흐름에 맞춰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는 부분(주변적인 측면)을 조화롭게 관리하는 것. 비단 럭셔리 브랜드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중요한 인사이트입니다.
2. 럭셔리의 기준: 시간 속에서 숙성된 가치
럭셔리가 비교급이 아닌 최상급인 두 번째 이유는 "스스로 설정한 아주 높은 수준의 기준"을 따른다는 점입니다. 럭셔리의 기준에는 '축적되고 계승되어 온 가치와 정신’이라는 요소가 중요하게 포함됩니다. 럭셔리 제품 하나하나에는 브랜드가 오랜 시간 쌓아온 역사와 고유한 문화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오래되었다는 의미를 넘어, 시간을 견디며 연마되고 숙성된 원칙이 그 기준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럭셔리 브랜드가 오랜 시간 쌓아온 시간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은 제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외부의 평가나 단기적인 유행에 휩쓸리기보다, 스스로 고민하며 충분히 숙성시킨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따라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저만의 '최상급' 기준을 만들어가는, 때로는 흔들리고 고민하며 그 기준을 숙성시켜 나가는 과정을 '담은 순간들'에 꾸준히 기록하고 나누고자 합니다.
3. 전통·유산·역사에 대한 존중: 시간 속에서 길어 올린 깊이
럭셔리가 비교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마지막 이유는 "전통·유산·역사에 대한 깊은 존중"에 기반하기 때문입니다. 책은 럭셔리 브랜드에 있어 역사와 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러 차례 강조합니다.
헤리티지와의 소통: 과거와 현재를 잇는 서사 만들기
역사가 짧거나 없는 신생 브랜드는 어떻게 역사를 만들어갈까요? 책에서는 이들이 종종 역사적 서사를 '발명'하거나 '차용'하여 브랜드의 깊이를 더한다고 설명합니다. 저는 여기서 '차용'의 방식에 특히 주목했습니다. 저는 ‘헤리티지와 소통하는 삶’을 모토로 삼고 있는데요, 책을 읽으며 신생 브랜드가 역사를 차용해서 브랜드의 깊이를 더해가듯 저 역시 헤리티지와 소통하며 저만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의 유산을 저의 맥락 속으로 가져와 새롭게 해석하고, '헤리티지의 맥락에 나를 위치시키는' 과정을 통해 저만의 고유한 서사를 만들어갑니다. (신경미 작가가 본인의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을 보편적인 역사와 문화라는 더 넓은 시공간 속에 위치시키며 아픈 기억과의 화해를 시도하는 작업 방식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밑줄 클릭하시면 링크로 이어집니다.) 저 역시 때때로 찾아오는 깊은 외로움을, 유구한 헤리티지 속에 홀로 존재했던 수많은 섬세한 영혼들을 떠올리며 그 보편적인 맥락 속에 배치함으로써 위안을 얻곤 합니다.
아카이브의 힘: 브랜드의 정수를 담다
헤리티지를 존중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는 헤리티지를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이는 아카이브의 중요성으로 이어집니다. 책에는 칼 라거펠트가 샤넬의 디렉터를 맡았을 때 샤넬 하우스의 아카이브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샤넬만의 언어를 깊이 연구했다는 사례가 나옵니다. 아무리 뛰어난 디자이너라도 브랜드의 뿌리가 되는 역사와 정신을 존중하고 계승해야 진정한 창조가 가능합니다. 역사는 브랜드의 뿌리이며, 아카이브는 그 뿌리로부터 자양분을 길어 올려 현재를 풍요롭게 하고 미래를 여는 통로입니다.
이는 저로 하여금 저만의 아카이브를 구축해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습니다. 제가 경험하고 사유하며 마음을 주었던 순간들을 이 공간 '담은 순간들'에 차곡차곡 기록하고 모으는 것이 그 시작입니다. 책, 음악, 미술, 영화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발견들까지, 제 마음을 움직였던 것들을 담아두려 합니다. 이렇게 쌓인 기록들이 훗날 저만의 소중한 헤리티지가 되어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든든한 뿌리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맺음말
결국 "럭셔리는 최상급이지 비교급이 아니다"라는 말은, 럭셔리가 외부와의 비교·경쟁보다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고유한 정체성, 스스로 세우고 숙성시킨 높은 기준,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전통과의 연결을 통해 자신만의 독보적인 가치를 만들어간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는 비단 브랜드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삶 또한 남들과 비교하며 조급해하기보다 자신만의 색깔과 기준으로 채워나가며 고유한 이야기를 써 내려갈 때 더욱 풍요롭고 단단해지지 않을까요? 외부의 기준이 아닌 내 안의 '최상급'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럭셔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럭셔리한' 삶의 태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담은 순간들'에서는 앞으로도 럭셔리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우리 삶의 가치를 더해줄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꾸준히 담아갈 예정입니다. 당신이 추구하는 '최상급'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것도 언제나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