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여움(Kawaii)과 수많은 생물을 분류하고 수집하는 오타쿠(Otaku) 문화를 절묘하게 결합하여 남녀노소 모두를 사로잡았습니다."
요약
포켓몬이 30주년을 맞았는데, 누적 매출 1,500억 달러로 스타워즈와 마블을 제치고 세계 최대 미디어 프랜차이즈가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도쿄에 문을 연 첫 상설 테마파크는 3개월치 티켓이 즉시 매진됐고, 희귀 피카츄 카드 한 장이 1,600만 달러에 낙찰되기도 했고요. 기사는 이 장수의 비결로 귀여움(kawaii)과 수집 욕구(otaku)를 결합한 설계, 100개 넘는 게임과 1,000편 이상의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세계관, 아이에게는 반려동물이고 어른에게는 향수가 되는 전 세대 호소력을 꼽습니다. 포켓몬을 서구에 일본 대중문화의 문을 열어준 '로제타 스톤'이라고까지 평가하고요.
담은순간들 생각
포켓몬 기사를 읽으면서 기사 내용보다 기사를 쓴 방식이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귀여움과 수집 욕구의 결합, 일본 대중문화의 로제타 스톤이라는 수식까지 붙여놨거든요. 깔끔하고 읽는 맛이 있어요. 그런데 솔직히 포켓몬은 그냥 귀엽고, 게임이 재밌고, 어릴 때 좋아했던 아이들이 어른이 돼서도 좋아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해요. 성공한 걸 가져다 놓고 사후적으로 프레임을 붙인 건 아닌지. "이래서 성공했다"고 쓰면 있어 보이긴 하는데, 반증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이코노미스트 기사가 원래 그런 면이 있지 않나 싶어요. 현상을 깔끔한 인과관계로 정리해서 읽는 맛을 주는데, 그게 실제로 그렇게 작동했는지는 별개잖아요.
그런데 사실 제가 이코노미스트를 꾸준히 읽는 이유가 바로 이런 면이기도 해요. 이코노미스트가 경제만 다루는 잡지는 아니거든요. 이번 포켓몬 기사처럼 문화와 심리를 엮어내기도 하고, 럭셔리 산업을 중세 면죄부에 빗대기도 합니다. 매주 경제, 정치, 문화, 기술을 넘나들면서 다양한 사고방식과 도구를 꺼내 적용하는 잡지라서, 개별 기사의 결론에 동의하느냐와는 별개로 다양한 생각의 도구를 하나씩 쌓아갈 수 있어요.
10년 넘게 이코노미스트를 읽어왔는데 돌이켜보면 개별 기사의 결론이 맞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요. 대신 남은 건 "이런 현상을 이런 시선으로도 볼 수 있구나"의 축적이었고, 그게 조금씩 쌓여 저만의 판단 체계를 만들어가고 있더라고요. 기사 하나하나를 진리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도구함에 연장을 하나씩 넣어두는 느낌이에요. 동의하지 않는 글에서도 쓸 만한 연장이 나온다면 그게 어쩌면 꾸준히 읽게 되는 이유이지 않을까 싶어요.
1993년 어도비가 PDF를 처음 내놓았을 때 가트너의 한 컨설턴트가 남긴 말입니다. 전화선 인터넷으로 메가바이트짜리 파일을 다운받아야 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어도비 이사회조차 프로젝트를 접고 싶어 했고요. 하지만 디지털 파일 공유가 일상이 되면서 PDF는 살아남았고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2조 5천억 개 이상의 PDF파일이 존재할 만큼 표준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제 AI가 PDF를 잘 읽지 못한다는 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다단 레이아웃을 엉뚱한 순서로 읽거나 머리말과 꼬리말을 혼동하면서, AI 환각 현상의 원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는 거죠. 팩티파이(Factify) 같은 스타트업은 AI에 맞는 새 형식으로 대체하겠다고 나섰고, 어도비와 구글은 PDF를 더 잘 읽게 만드는 쪽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담은순간들 생각
1993년의 가트너 컨설턴트는 당시 기준으로는 맞았습니다. 느리고 무겁고 불편했으니까요. 다만 보지 못한 게 있었어요. 태풍이 오고 있다는 것. 인터넷이 전화선에서 초고속으로 바뀌고 미국 국세청이 PDF를 공식 양식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결국 아무도 불편하다고 하지 않게 됐습니다.
저도 비슷한 문제를 겪어봤습니다. PDF를 AI로 읽으려고 이것저것 시도해봤는데, 텍스트 추출이 깨지고 표가 뭉개지고 다단 레이아웃이 엉키더라고요. 한글 파일(hwpx)은 말할 것도 없고요. 한동안은 해결책을 찾아 이 도구 저 도구 옮겨 다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냥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 개발자가 비슷한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저는 그걸'2개월짜리 문제'라고 부릅니다. 지금 안 풀리는 기술적 문제가 있어도 억지로 풀지 말고, 2개월만 기다리면 모델이 업데이트되면서 해결된다는 거예요. PDF에서도 어도비와 구글이 이미 움직이고 있고요. hwpx 파일은 제미나이를 기점으로 클로드도 이제는 잘 읽죠. 방향이 보이고 남들도 달려드는 문제라면, 굳이 직접 해결하려 애쓰기보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지 않을까 합니다.
생각거리
PDF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요. 최근 'SaaSpocalypse'라는 말이 돌고 있는데, AI가 기존 소프트웨어의 기능을 직접 해내기 시작하면서 구독형 소프트웨어(SaaS) 산업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거예요. 그동안 당연했던 것들이 '종말'이라는 선언 앞에 놓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AI로 만들 수 있다는 것과, 오랜 시간의 검증을 거친 것들이 실제로 교체되는 건 꽤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2조 5천억 개의 PDF, 그 위에 수십 년째 얹혀 있는 기업 시스템이 그렇게 쉽게 걷어지진 않을 테니까요.
유럽 경제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이에도, 전 세계 명품의 80%는 여전히 유럽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유럽이 파는 건 가방이나 구두가 아니라 '유럽식 삶의 방식에 대한 동경'입니다. 미국이 F-35를, 한국이 K-Pop을 수출할 때 유럽은 '품격'을 수출한다는 거죠. 명품 하우스들은 장인 부족을 내세워 희소성을 연출하지만, 실제 산업 규모는 2000년 이후 3배나 커져 연 3,580억 유로에 이릅니다. 기사는 이를 중세 교회의 면죄부에 빗대기도 해요 — 구매자가 '사회적 무명'에 머무는 시간을 줄여주는 장신구를 판다고요.
한편 가격 폭등으로 정작 유럽 중산층은 자국 명품을 사지 못하게 됐고, 샹젤리제에 늘어선 줄은 미국인, 중국인, 한국인이 채우고 있습니다. 부유층의 관심은 물건에서 경험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합니다.
담은순간들 생각
읽으면서 계속 찔렸어요. "사회적 무명의 상태에 머무는 시간을 줄여주기 위한 장신구", "수작업으로 공들인 사기" — 그동안 저의 소비/경험은 heritage와 양질의 것들을 경험하면서 안목을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런 표현들 앞에서 그 말들이 좀 궁색해지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저희 집 테이블 위에는 질샌더 구두가 놓여 있거든요. 산 지 2주쯤 됐는데 아직 한 번도 신지 않았습니다. 그냥 보고 있으면 좋아서요. 시선을 위한 거라면 당장 신고 나갔겠죠. 혼자서 테이블 위에 두고 보는 거니까, 이건 기사가 말하는 허영과는 다른 결의 기쁨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도 질문은 남아요. 패션에서 timeless니 heritage니 하는 말들이 어디서든 붙어 나오잖아요. 처음에는 브랜드마다 당연하다는 듯 붙이는 수식어가 남용처럼 느껴졌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비판적인 눈이 무뎌진 것 같기도 해요. 소비의 즐거움이 — 그게 나를 알아가는 기쁨이든, 새로움에서 오는 도파민이든 — 비판적인 시선을 조용히 눌러버린 건 아닌가 싶어서요.
생각거리
패션에서는 아직 브랜드라는 이름 없이 자신 있게 고르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클래식 음악에서는 비슷한 과정을 좀 더 앞서 겪었어요. 처음에는 거장의 공연은 숭배하듯이 들었습니다. 베를린 필이 연주하면 일단 나를 내려두고 듣게 되죠. 그러다 언젠가부터 듣고 나서 "이 악단이니까 좋은 거야"에서 멈추지 않고, 정말 좋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됐어요. 거기까지 오는 데 꽤 시간이 걸렸고, 용기도 필요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브랜드든 거장의 이름이든, 그건 수십 년간 실제로 쌓여온 시간과 신뢰의 결이기도 해요. 무시할 게 아니라 존중할 만한 거죠. 다만 그 이름에 이끌려 새로운 걸 만나는 것과, 그 이름 안에 머무르는 것은 꽤 다른 이야기인 것 같아요.
한때 궁극의 안목은 브랜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요. 돌이켜보면 "나는 브랜드 같은 거 필요 없어"라고 선언하는 것도 "나는 그 수준에 이른 사람이야"라는 또 다른 포지셔닝이더라고요. 어쩌면 목표는 브랜드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브랜드에서 멈추지 않는 것 — 신호로 읽되 거기서 끝내지 않는 것 — 이 아닐까 합니다.
"약 3억 5,000만 명의 소비자에게 쉽게 제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약속은 혁신을 이끄는 강력한 유인책이다."
요약
미국의 각 주가 유럽식 규제와 복지를 하나둘 따라가고 있는데, 그러다 보면 가장 큰 강점 — 3억 5천만 명이 하나의 시장이라는 것 — 을 스스로 갉아먹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연방 의회가 AI 법안 하나 통과시키지 못하는 사이에 5개 주가 제각각 법안을 만들었고, 자율주행차는 노스다코타에서는 달릴 수 있지만 사우스다코타에서는 안 됩니다. 물론 전부 나쁜 건 아니에요. 캘리포니아는 출산 휴가를 일찍 도입하고도 AI 혁명의 본거지가 됐고, 잘못된 정책은 사람들이 떠나면서 자연스럽게 걸러지기도 하니까요. 다만 규제의 파편화는 한번 생기면 되돌리기 어렵고, 단일 시장이라는 힘을 약하게 만든다는 게 기사의 핵심 경고입니다.
담은순간들 생각
3억 5천만 명에게 쉽게 팔 수 있다는 약속이 혁신을 이끄는 유인이 된다 — 이 문장에서 좀 웅장해졌어요. 혁신의 동력이 천재의 머리가 아니라 시장의 크기에서 나온다는 것.
24년 10월 이코노미스트가 미국의 힘을 특집으로 다뤘을 때도 핵심은 이거였습니다. 방대한 에너지 자원, 거대한 단일시장, 유연한 규제와 위기 시 신속한 정부 개입 — 이것들이 합쳐져 역동적인 민간 부문이 인재와 아이디어와 투자를 끌어들이고, 그 역동성이 다시 더 큰 역동성을 낳는 선순환을 만들어냈다는 분석. 미국 테크 7개 기업 시가총액이 영국·캐나다·독일·일본 주식시장을 합친 것보다 크다는 숫자에서 그 무게가 실감됐고요. 그런데 이번 기사는 바로 그 힘의 원천을 미국이 스스로 갉아먹고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한편, 한국에 대입하면 씁쓸해지기도 합니다. 5천만 시장에 한국어라는 언어 장벽. 스케일의 유인이 태생적으로 약한 나라에서 "처음부터 글로벌을 봐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결국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생각거리
파편화가 혁신을 막는다면 중국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성(省)마다 경쟁하는 구조인데도 혁신이 나오잖아요.
찾아보니 결이 달랐습니다. 중국은 선전 경제특구나 상하이 자유무역구처럼 중앙정부가 특정 지역에 규제 예외를 전략적으로 부여하고 거기서 검증된 걸 전국으로 확산시킵니다. 일종의 통제된 실험이죠.
반면 기사가 우려하는 미국의 파편화는 연방이 움직이지 않으니까 각 주가 제각각 입법하는 것입니다. 표준을 찾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서로 다른 규칙이 고착화되는 것. 파편화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수렴할 메커니즘이 있느냐가 진짜 문제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