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든지 정확한 때, 정확한 방식으로 한다면 모든 것이 바르게 정돈될 것입니다." <선심초심>
불안한 마음에 우리는 방향을 살피기보다 그저 열심히 사는 것에만 집중하곤 합니다.하지만 삶의 결정적인 순간은 노력의 강도보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시기'와 '맥락(Context)'을 얼마나 정확히 읽어내느냐에 달려 있을 때가 많습니다.
억지로 힘을 주어 애쓰지 않아도, 때를 알고 행하면 자연스레 제자리를 찾아가기 마련입니다. 오늘은 그 흐름 속에서 균형을 잡는 지혜, 동양 철학에서 '시중(時中)'이라 부르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 시중(時中): 중심이 있어야 흐른다
'시중'(時中)은 문자 그대로 '때에 맞게 처신한다'는 뜻입니다. 고정된 정답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가장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내는 태도지요.
변화에 맞춘다는 것을 자칫 줏대 없는 태도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시중은 시기를 따르고 변화에 적응하되, 자신의 단단한 중심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중심이 없는 유연함은 표류일 뿐이지만, 중심이 있는 유연함은 항해가 됩니다.
아마존의 창립자 제프 베조스가 남긴 "비전에 대해서는 완고하되,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유연하라"는 말이나, 찰리 멍거가 벤저민 그레이엄의 원칙(중심)은 지키되 시대에 뒤떨어진 전술(세부 사항)은 과감히 버리라고 했던 조언도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지켜야 할 것과 바꿔야 할 것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 그것이 시중의 핵심입니다.
이 단단한 유연함은 2천 년 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도 맞닿아 있습니다.
"특정한 소재를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사정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높은 목표를 추구하되, 자신에 맞서는 것을 자신을 위한 대상으로 만들어라." <명상록>
내가 원하는 조건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앞에 놓인 상황이 설령 나에게 맞서는 것일지라도 유연하게 받아들여 나를 위한 재료로 삼는 태도.
이는 마치 파도 위에서 서핑을 하는 것과 닮았습니다. 거친 파도 위에서 서핑을 하려면 몸을 꼿꼿이 세우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파도의 결에 맞춰 유연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하지만 그 유연한 몸짓을 지탱하는 건, 보드 위에서 중심을 잃지 않는 단단한 코어 근육입니다.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나만의 단단한 원칙(중심)이 있어야,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의 파도 위에서도 휩쓸리지 않고 유연하게 춤출 수 있는 법이니까요.
2. 균형의 미학: 최저 수준과 뉴트럴(Neutral)
'시중(時中)'을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구체적 전략은 무엇일까요? 저는 '친절함의 리더십'에 관한 칼럼에서 그 중요한 힌트를 발견했습니다.
"친절함은 불변의 교리(Doctrine)가 아닙니다. 그러나 친절함의 부재는 경영의 실패입니다." (The Economist)
첫째는 '최저 수준 지키기의 원칙'입니다. 이코노미스트는 그 어떤 경우에도 불친절함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말합니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와 품격은 상황이 힘들다고 해서 타협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변화무쌍한 삶의 파도 속에서도 지켜야 할 최저 수준만큼은 단단한 상수로 고정해 두어야 합니다.
둘째는 '뉴트럴(Neutral)'의 태도입니다. 기본적인 친절함은 필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모든 상황을 해결하는 유일한 정답(Doctrine)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냉혹한 결단이 필요한 구조조정의 시기에, 마냥 사람 좋은 리더는 오히려 독이 된다"고 꼬집습니다.
아무리 좋은 가치라도 한쪽으로 과잉되면 독이 됩니다. 맹목적인 친절은 우유부단함이 되고, 맥락 없는 솔직함은 무례가 되듯 말이죠. '뉴트럴'이란 이처럼 특정한 가치에 나를 가두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상태여야, 냉철함이 필요할 땐 냉철하게, 온기가 필요할 땐 따뜻하게 상황에 맞는 최적의 태도를 취할 수 있습니다.
결국 시중의 지혜란, 품격이라는 최저 수준은 지키되 어떠한 가치도 맹신하지 않는 '균형의 감각'을 유지하는 일입니다.
3. 무미(無味): 쏠림 없는 안목
"취향이 강해서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저만의 색깔이 뚜렷하다는 칭찬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색이 스며들 틈이 없다는 것 같아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고민 끝에 닿은 것이 동양 미학에 나오는 ‘무미(無味)'입니다. '무미'는 말 그대로 '맛이 없다'는 뜻이지만, 이는 아무런 맛도 없는 건조한 상태가 아닙니다. 특정한 맛에 얽매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세상의 모든 맛을 담아낼 수 있는 잠재성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무미'의 태도는 곧 세상을 보는 '안목'으로 이어집니다. '회사후소(繪事後素)', 즉 그림을 그리기 전에 흰 바탕이 먼저 있듯, 나의 색깔을 가지되 언제든 다른 색과 조화롭게 섞일 수 있는 '흰 바탕'을 마련해 두는 것. 진정한 안목은 취향을 넘어섭니다. 특정한 취향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개성을 담아낼 수 있는 '넓고 깊은 안목'이야말로 가장 큰 그릇일 것입니다.
'무미'는 투자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시장이 상승하여 환희에 차 있을 때나 폭락하여 공포에 질려 있을 때, 투자자가 해야 할 일은 그 감정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쏠림의 반대편도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모두가 환호할 때 차분히 리스크를 보고, 모두가 공포에 질려 던질 때 기회를 보는 뉴트럴한 마음. 극단적인 낙관이나 비관 어느 한쪽의 맛에 취하지 않고 그 중심을 잡을 때, 비로소 시장의 본질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4. 영역의 분별: 내가 서 있는 무대를 아는 지혜
이 모든 균형을 잡기 위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내가 지금 서 있는 영역이 어디인가'를 분별하는 일입니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그의 저서 <자아연출의 사회학>에서 우리의 삶을 무대 위에서의 공연에 비유합니다. 우리는 상황과 상대에 따라 각기 다른 자아를 연출하며 살아간다는 것이죠.
누군가는 이를 '가식'이나 '위선'이라 비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시중의 관점에서 보면, 상황에 맞게 나의 태도를 조율하는 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그 무대와 관객에 대한 깊은 '예의'이자 '존중'입니다.
저는 이를 '옷장(Wardrobe)'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상황과 장소(TPO)에 따라 각기 다른 옷을 꺼내 입습니다. 해변에서 턱시도를 입거나 장례식장에서 하와이안 셔츠를 입지 않지요.
어린 시절, 시끌벅적한 술자리 뒤풀이에서 뜬금없이 진지한 예술론을 꺼냈던 기억이 납니다. 들뜬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줄도 모르고 혼자 심각했었지요. 당연히 아무도 공감해주지 않았고, 저는 그 무심함에 홀로 상처받기도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멋쩍은 일입니다. 그건 그들이 야박해서가 아니라, 제가 '맥락'이라는 드레스 코드를 맞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파자마 파티에 혼자 정장을 입고 가서 "왜 아무도 내 옷의 기품을 몰라주지?"라고 불평했던 셈이니까요.
결국 지혜로운 삶이란, 내면의 옷장에 다양한 자아의 옷을 갖춰두고,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유연하게 골라 입는 능력에 있습니다. 맹목적으로 하나의 스타일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라는 맥락 안에서 가장 적절한 나를 조각해 나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시중'의 태도일 것입니다.
마치며: 인생의 계절을 누리는 일
'시중'(時中)의 삶이란, 매순간순간의 계절을 온전히 누리는 일과 닮아 있습니다. 봄에는 벚꽃을 보며 계절 풍경을 즐기고, 가을에는 고소한 전어를 찾으며 제철 음식을 즐깁니다. 자연이 때에 맞춰 옷을 갈아입듯, 우리도 마주한 상황에 가장 어울리는 태도를 취할 때 삶은 자연스럽고 풍요로워집니다.
언제나 "지금은 어떤 시기인가?", "내가 서 있는 곳은 어디인가?" , “무슨 일을 해야 할 시기인가?”를 먼저 묻습니다.
그렇게 때를 알고, 중심을 지키며, 흐름을 타는 삶.
그 유연한 단단함으로 모든 계절이 아름답게 정돈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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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세상에서 중심을 잡는 법: 시중(時中)의 미학
삶의 결정적인 순간은 노력의 강도가 아닌, 시기와 맥락을 읽어내는 눈에 달려 있습니다. 변화하는 파도 위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유연하게 흐르는 동양의 지혜, '시중(時中)'의 미학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