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던 책 <What I Learned Losing a Million Dollars>(번역서: 로스(LOSS) - 투자에 실패하는 사람들의 심리) 를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투자를 처음 시작하던 시절에도 이 책은 제게 꽤나 훌륭한 지침서였습니다. "나는 이런 실수를 피해야지"라고 다짐하며 부지런히 밑줄을 그었더랬죠. 하지만 오클로(Oklo)에서의 실패를 안고 다시 펼친 책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질감으로 다가왔습니다. 5년 전에는 그저 통찰력 있는 문장이라며 밑줄을 긋고 넘어갔던 구절들이, 이번에는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페이지마다 제 지난 50일간의 오만과 실수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는 것 같아 책장을 넘기는 마음이 아릴 정도였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경험을 통과하지 않은 지식은 그저 얕은 정보일 뿐이며, 아픈 수업료를 치르고 나서야 비로소 가슴 절절히 이해되는 진실이 있다는 것을요.
비록 1억 원이라는 손실을 입었지만, 이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의 가치는 100억 원, 아니 그 이상일 것이라 확신하 그 배움을 기록합니다.
1. 비극의 시작: 인정 욕구가 투자와 만날 때
비극의 씨앗은 제가 오클로라는 종목을 지인들에게 공유하던 그 순간 뿌려졌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투자의 본질인 수익보다 더 달콤한 독배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바로 '인정 욕구'입니다. 2년 50배의 수익을 안겨준 카바나(CVNA) 때보다, 고작 2배 올랐던 오클로의 초반 상승기에 저는 더 들떠 있었습니다. 카바나는 철저히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이었지만, 오클로는 주변 지인들에게 "이거 무조건 간다"고 공언했던 종목이었기 때문입니다.
책에서는 이를 '예언자 동기'라고 부릅니다. 투자자는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움직여야 하는데, 저는 투자를 통해 칭찬을 받고 싶어 했습니다. 인정 욕구를 채우려고 했습니다.
제 정보를 듣고 수익을 낸 지인들이 기뻐하는 모습,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뿌듯함... 그 선의로 포장된 기쁨이 저를 취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투자는 더 이상 투자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저의 안목과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자아를 건 위태로운 '내기(Betting)'가 되어버렸습니다.
| 성공 사례: 카바나 (CVNA) | 실패 사례: 오클로 (Oklo) | |
|---|---|---|
| 기간 및 성과 | 2년 보유, 50배 수익 | 50일 보유, -1억 원 손실 |
| 투자 태도 | 철저히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 | 지인들에게 공언하고 추천함 |
| 핵심 동기 | 수익 (이익 추구) | 인정 욕구 (안목 증명) |
| 심리 상태 | 냉철한 분석 | 예언자 동기 |
2. 말의 감옥에 갇히다: 환상 모델과 내면화
어떤 행동과 말을 하고 난 후에는, 그 행동과 말이 나를 규정하고 만들어갑니다. 생각은 자유롭지만, 그것이 입 밖으로 나와 타인에게 전달되는 순간, 말은 나를 가두는 감옥이 됩니다.
책은 이 과정을 '환상 모델'로 설명하는데, 놀랍게도 저의 지난 50일은 정확히 이 비극의 궤적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 시작은 '확언(Affirmation)'이었습니다. 저는 단순히 "오클로가 좋아 보인다"는 의견을 내지 않았습니다. "AI 전력난은 필연적이고, 오클로는 무조건 간다"고 단정 지어 말했죠.
이 확언은 만나는 지인들에게 '반복(Repetition)'되었습니다. 열정적으로 지인들에게 말하는 동안, 역설적으로 가장 깊게 세뇌된 사람은 다름 아닌 저 자신이었습니다.
그리고 비극의 정점인 '위신(Prestige)' 단계에 도달했습니다.제 말을 믿은 지인들이 실제로 매수를 한 것입니다. 그 순간, 오클로는 단순한 주식 종목이 아니라 저의 안목과 신뢰를 증명해야 하는 '성전'이 되어버렸습니다. 계좌가 파랗게 될 때마다, 제 자존감도 함께 흔들렸습니다.
이때부터 저에게 객관성은 사라지고 '전염(Contagion)'만이 남았습니다. 주가가 하락하자 저는 시장의 신호를 읽는 대신 음모론을 만들어냈습니다. "이건 펀더멘털 문제가 아니야. 기관들이 물량을 뺏으려고 개미를 털어내는 거야."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이 곧 지인들에게 ‘무능력’을 자백하는 고통이 되었기에, 저는 불리한 뉴스는 '소음'이라 무시하고 제 논리를 뒷받침해 줄 유리한 뉴스만 찾아 헤매는 '확증 편향'의 동굴로 도망쳤습니다.
이것이 시장에서의 손실(객관적 사건)이 나의 실패(주관적 상처)로 변질되는 '내면화'의 늪입니다. 내면화가 무서운 이유는 투자의 목적을 바꿔버리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 되기에, 필연적으로 '수익은 짧게, 손실은 길게' 가져가는 최악의 패턴을 반복하게 됩니다. 수익이 날 때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빨리 팔아버리고, 손실이 날 때는 내 판단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희망 회로를 돌리며 끝까지 버팁니다.
3. 시작부터 잘못된 단추: 망상 모델
이성을 마비시킨 것은 비단 말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포지션에 진입하는 그 순간부터, 저는 이미 '망상 모델' 위에 서 있었습니다. 책은 포지션도 없는 상태에서 이성을 잃고 매수 버튼을 누르게 되는 과정을 망상 모델을 통해 설명하는데, 저의 지난 9월이 정확히 그러했습니다.
핵심은 '기대감에 들뜬 마음'(Expectant Attention)이 객관적인 판단을 그르치게 한다는 것입니다. 저에게 이 마음을 심어준 불씨는 '상대적 박탈감'이었습니다. 지난 6월부터 약 3개월간, 제 주력 종목인 카바나는 지루한 횡보를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시장의 다른 한편에서는 원자력과 AI 관련주들이 연일 폭죽을 터뜨리며 난리가 났었죠. "남들은 파티를 즐기는데 나만 소외되었다"는 조급함, 그리고 "카바나로 2년 걸려 번 돈을 이번에는 단기간에 벌어보고 싶다"는 오만함. 이 감정들이 '천천히 부자 되기'라는 원칙을 잊게 만들었습니다. 욕망이 이성을 앞서자 제 뇌는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었고, 이미 무언가에 홀릴 준비를 완벽히 마친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던 찰나, <이코노미스트>의 기사('Why nuclear is now a booming industry')는 단순한 정보를 넘어 마른 장작에 던져진 '성냥불'이 되었습니다. 평소라면 냉철하게 분석했을 기사 내용이, 박탈감에 젖은 제게는 '구원'처럼 보였습니다. 젠슨황 전기에 나오는 "마지막 남은 숙제, 전력"이라는 내용이 오버랩되면서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적인 신호로 둔갑했습니다.
"지금 사지 않으면 나만 벼락거지가 된다"는 불안감이 온몸으로 번지자, 이성적인 판단은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오직 '지금 당장 올라타야 한다'는 강박만이 제 머릿속을 지배했습니다. 결국 저는 기업 가치에 대한 냉철한 분석도, 리스크 검증도 없이 이 거대한 서사를 맹목적으로 수용하고 매수 버튼을 눌렀습니다.
4. 맹신이 가린 두 가지 논리적 결함
망상 모델에 빠져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이 투자는, 필연적으로 두 가지 치명적인 논리적 오류를 동반했습니다. 이성적인 상태였다면 보였을 결함들이, 맹신에 눈이 멀자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첫째, '반증 불가능한 아이디어'에 매몰되었습니다.
"AI 시대에 전력 병목은 필연적이다."
이 거창한 담론은 그럴듯하지만, 투자 아이디어로서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틀렸음을 증명하기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점입니다. 주가가 반토막이 나도 "아직 AI 전력난 시대가 오지 않았을 뿐, 내 가설은 틀리지 않았어"라고 합리화하며 버텼습니다. 구체적인 이정표 없이 막연한 미래만 바라본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둘째, '확률'과 '기댓값'을 혼동했습니다.
"상방이 열려 있다(Reward)"는 사실을 "성공할 확률(Probability)"이 높다는 것과 혼동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이를 알기에 '잃어도 되는 금액'으로 비중을 제한했습니다. 하지만 초반의 상승과 주변의 환호는 저를 영웅으로 만들었고, 도파민에 취해 원칙을 깨고 비중을 늘리는 우를 범했습니다.
확률을 모르는 영역에서 상방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큰돈을 거는 건 투자가 아닌 도박입니다. "확률은 낮지만 보상은 크다"는 베팅이 도박이 되지 않으려면 단 하나의 전제가 필요합니다. 바로 "틀렸을 때 내가 잃을 것은 딱 이만큼뿐이다"라는 비중 제한입니다.
5.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
이제 저는 1억 원의 수업료를 치르고 얻은 귀한 교훈을 가슴에 새기며, 제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서 새로운 원칙을 세웁니다.
첫째, 침묵(Silence)을 택하려 합니다. 이제부터 저의 투자는 고요할 것입니다. 지인들에게 종목을 공유하고, "이건 된다"며 단정 짓는 행위를 멈추겠습니다. "내 생각엔 좋아 보인다"는 조심스러운 견해조차 지양하려 합니다. 제 포지션이 타인의 시선과 섞이는 순간, 대상을 바라보는 객관적인 눈은 멀어지고 오직 지키고 싶은 '자아'만 남게 됨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안목을 확인받고 싶은 욕구,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선의. 그 모든 '인정 욕구'는 운동이나 글쓰기 같은 제 안의 고요한 성취를 통해 채우려 합니다.
둘째, 달력이 아닌 '투자 아이디어'를 보겠습니다. 제가 투자하는 대상들은 매일 꾸준히 오르는 선형적인 자산이 아닙니다. 긴 침묵과 급격한 변동을 거쳐 비선형적으로 폭발하는 자산들입니다. 이런 투자를 하며 늘 '달력'을 보는 것은 필패의 지름길입니다. 우리는 종종 아무런 악재가 없는데도 단지 '시간이 흘렀는데 주가가 오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불안을 느낍니다. 지루함을 곧 '손실'로 착각하는 것이죠.
이제 저는 달력이 아니라, '투자 아이디어의 실현 과정'을 응시하겠습니다. "주가는 멈춰있더라도, 기업의 본질적 가치는 내가 예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무심히 흐르는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무르익어가는 밀도 있는 시간을 견디겠습니다. 이것이 막연한 버티기가 아닌 '근거 있는 기다림'입니다.
물론, 이 기다림이 가능하려면 하나의 전제 조건이 필요합니다. '마음 편한 금액'이어야 합니다. 삶의 리듬을 깨트릴 만큼 큰돈이 들어가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기업의 가치보다 등락하는 가격표에 압도당합니다. 밤에 편안히 잠들 수 있고, 낮에는 내 일상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금액. "이 돈이 전부 사라져도 내 삶과 멘탈, 그리고 다음 베팅에 전혀 지장이 없는가?"라는 질문에 큰 고민 없이 대답할 수 있는 금액. 그 선을 지킬 때 비로소 투자는 도박이 아닌 삶의 일부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천천히 부자 되기'의 미덕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 빨리 부자가 되려는 조급함이 틈입하는 순간, 우리의 눈은 멀고 '망상 모델'이 작동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느리지만 단단하게, 요란하지 않지만 정확하게 나아가겠습니다.
마치며: 실수의 순현재가치(NPV)를 양의 값으로
제가 많이 아끼는 텍스트, <노마드 투자 서한>에는 우리의 상식을 뒤집는 문장이 나옵니다.
"삶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똑같은 실수를 더 빨리 저지르겠어요.”
투자에서 실수는 피할 수 없는 필연이며, 어쩌면 바람직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만약 제가 이번에 1억 원을 잃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운 좋게 이번 파도를 넘겼다 한들, 제 안의 '망상 모델'과 '인정 욕구'는 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시한폭탄처럼 숨죽이고 있다가, 제 자산이 더 커졌을 때, 더 돌이킬 수 없는 규모로 터져버렸을 겁니다. 그러니 지금의 이 손실은, 미래의 파멸적인 결과를 막아낸 가장 저렴한 수업료일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실수의 순현재가치(NPV, Net Present Value)'를 양의 값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실수는 우리가 그것을 '실수'라고 부르며 주저앉아 있을 때만 비용이 됩니다. 하지만 그 경험을 처절하게 복기하고 뼈에 새겨 '원칙'으로 승화시킨다면, 그것은 미래의 무한한 기회비용을 막아주는 거대한 '자산'이 됩니다.
무엇보다 저는 이번 실수를 자산으로 만들기 위해 '말의 무게'를 뼈저리게 되새깁니다. 행동과 말을 하고 난 후에는 그 행동과 말이 나를 만들어 간다는 것을 몸소 경험했습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뱉은 섣부른 확신은 일을 그르치는 족쇄가 되었습니다.그래서 저는 이제 '생각에서 멈추고 말까지는 나아가지 않는' 침묵을 택하려 합니다.
투자는 결국 고독한 작업입니다. 요란한 과시나 타인의 인정이 아닌, 고요한 침묵 속에서 스스로 세운 원칙을 지켜나가는 일입니다.
우리가 진짜 교훈을 얻었다면, 그 덕분에 얻는 이익은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평생에 걸쳐 반복될 투자의 여정에서, 이 교훈은 매 순간 저를 지켜줄 것이며, 그 가치는 시간과 함께 복리로 불어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실수의 복리 효과'입니다.
저는 1억 원을 잃었지만, 감히 확신합니다. 이 경험을 통해 얻은 '침묵'의 가치, '노출 관리'의 지혜, 그리고 무르익기를 차분히 바라는 '기다림'의 미덕은 훗날 저에게 100억 원, 아니 그 이상의 가치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오늘의 기록은 실수의 현재가치를 양의 값으로, 그것도 아주 거대한 플러스로 돌려놓겠다는 선언이자, 다가올 미래에 대한 자신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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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일 동안 1억을 잃고 비로소 알게 된 것들
"경험을 통과하지 않은 지식은 그저 얕은 정보일 뿐이다." 1억 원의 수업료를 치르고서야 비로소 이해된 진실들. 인정 욕구가 어떻게 투자자를 눈멀게 하는지, 그리고 이 실수를 어떻게 승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