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랫동안 제 안의 결핍이 성장의 원동력이라 믿어왔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인정욕구는 끊임없이 저를 채찍질했고,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마음 줄 곳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만난 한 편의 글이 그 단단했던 믿음에 균열을 냈습니다.

그 글은 척박한 땅일지라도, 그곳에서 치열하게 뿌리내려 마침내 꽃을 피워냈다면 그 땅은 더 이상 버려진 황무지가 아니라 소중한 정원이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장소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보낸 충실한 시간이 그 장소를 의미 있는 곳으로 만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이야기 앞에서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내가 ‘결핍’이라 굳게 믿었던 것이, 정말 결핍이었을까.

'결핍'이라는 프레임의 함정

처음에는 제가 '결핍이라 여겼던 것'을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채우려 했습니다. 하지만 결핍에서 비롯된 과도한 기대는 어김없이 서운함으로 이어졌고, 관계는 위태로워졌습니다.

관계의 어려움에서 한 걸음 물러나 찾은 곳이 예술과 운동이었습니다. 사람이 아니니 더는 상처받지 않을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결핍을 채워야 한다’는 근본적인 동기가 바뀌지 않으니, 집착은 다시 반복되었습니다.

문제는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결핍’이라는 안경을 쓰고 보는 세상은, 사람이든 예술이든 그 무엇이든 온전한 모습 그대로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결핍에서 승화로

진정한 사랑은 ‘결핍을 메워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대상 그 자체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호기심’에서 시작할 때 가능했습니다. 결과물의 성패를 따지기보다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 속 미묘한 감각의 변화와 리듬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기대를 버리자 비로소 집착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제게는 대표적으로 운동이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몸을 키우고 싶다는, 우울감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목적이 앞섰습니다. 결과에 집착하니 목표 달성이 더딜 때면 자책이 뒤따랐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운동 그 자체가 주는 감각, 규칙적인 리듬이 주는 안정감,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지는 작은 성취감 자체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목표 달성이라는 결과에서 벗어나자, 운동은 비로소 제 삶의 온전한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결핍이 승화되는 과정은 때로 한 개인을 넘어 인류의 서사를 만들기도 합니다.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상처와 결핍을 인류의 미래라는 거대한 사명으로 승화시킨 일론 머스크처럼 말입니다.

마음 둘 곳 없던 그의 유년 시절을 생각하면, 화성을 향한 그의 열정은 어쩌면 새로운 고향을 찾으려는 간절한 꿈처럼 느껴집니다. 인간을 닮은 로봇을 만들려는 사명감 역시, 세상에 없던 친족을 빚어내려는 외로운 소년의 마음은 아니었을까요.

또한 놀이터에서 홀로 상처받았던 소년의 기억이, 트위터라는 이름의 거대한 온라인 놀이터를 직접 소유하고 그곳의 규칙을 새로 쓰려는 어른의 비전으로 이어진 것은 아닐지 생각해봅니다.

머스크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지만 결핍을 승화시킨 관점에서 보자면,
머스크의 사례는 과거의 상처를 애써 회피하지 않고 미래를 향한 동력으로 삼는
아름다운 형태의 승화로 다가옵니다.

나의 취향은 나의 눈물값

종종 누군가 저의 취향이 부럽다는 말을 건넬 때, 저는 속으로 ‘제 눈물값이에요’라고 되뇌곤 했습니다. 굳이 부러워할 것 없다는, 취향 필요 없으니 차라리 이 모든 아픔이 없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자조 섞인 항변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글을 쓰며 다시 생각합니다. 상처가 아물며 더 단단한 살이 돋아나듯, 한때 결핍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는 것을요. 결핍은 메워야 할 구덩이가 아니라 나만의 서사를 만들어갈 재료였습니다. 그 재료를 ‘결핍’이라는 이름표를 붙인 채로 바라볼 때는 고통이었지만, ‘나의 고유한 경험’이라는 새 이름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승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저의 모든 상처와 눈물은 이제 다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저만의 스타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당신의 가장 아팠던 기억은, 지금 당신의 삶에서 어떤 무늬를 그리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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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정말 결핍일까?

"제 취향은 제 눈물값이에요." 저를 끊임없이 채찍질했던 결핍과 상처가, 어떻게 다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한 스타일이 되어가는지에 대한 기록입니다. 당신의 가장 아팠던 기억은, 지금 어떤 무늬를 그리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