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 <나의 감상에는 '나'가 있나요? ①>이 '빌려온 시선'을 극복하기 위한 제 개인의 방법론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에는 그 고민의 역사적 뿌리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작품 앞에서 정답을 찾아 헤맬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던 압박감과 위축감. 이 불편하고도 익숙한 감정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그 기원을 찾던 여정에서 로셸 거스타인(Rochelle Gurstein)의 책 ‘Written in Water’는 소중한 실마리를 던져주었습니다. 저는 책장을 넘기며 제 고민이 개인적인 동시에, 실은 수백 년에 걸친 거대한 역사적 유산이라는, 놀랍도록 익숙한 풍경과 마주했습니다.
‘정답’의 시대와 ‘취미’라는 의무
18세기 런던, 조슈아 레이놀즈가 주도하던 미술계는 감상에 있어 절대적인 ‘정답’이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예술의 목표는 자연의 불완전함을 걸러낸 ‘이상적 미’를 구현하는 것이었고, 예술가는 고대 조각이나 라파엘로 같은 위대한 전범을 끊임없이 모방하고 학습해야 했습니다. 감상자에게 ‘취미(taste)’란 개인의 기호가 아니라, 이 정답을 알아볼 수 있도록 연마해야 하는 사회적 의무였습니다. 모두가 극찬하는 작품 앞에서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교양의 부족을 드러내는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위축감, 전문가의 해석에 기대려는 마음의 뿌리에는 이처럼 ‘정답이 있던 시대’의 풍경이 겹쳐 있습니다.
직관의 반란, ‘나’의 목소리를 찾아서
이 견고한 정답의 세계에 균열을 낸 것은 예술가들이 전범을 모방하는 대신, 자신이 직접 목격한 세계의 생생한 인상과 내면의 감정을 신뢰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이 바로 풍경화가 터너와 그의 옹호자 존 러스킨의 등장이었습니다. 러스킨은 터너의 거친 붓질이 기존의 ‘이상적 미’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숭고한 ‘진실’을 담고 있다는 새로운 미학적 논리를 제시하며 동시대인들을 설득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감상의 기준을 외부의 '정답'에서 예술가 고유의 '진실'과 그것을 알아보는 감상자의 ‘안목’으로 옮겨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상의 무게 중심이 '예술가의 진실'에 있었던 이 흐름은, 월터 페이터에 이르러 온전히 '감상자의 느낌'으로 옮겨오게 됩니다. 그는 질문을 바꾸었습니다. “이 작품은 아름다운가?”가 아니라, “이 작품이 ‘나에게’ 어떤 특별한 느낌을 주는가?”라고 말입니다. 감상의 주도권이 외부의 권위에서 개인의 내면으로 넘어오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눈부신 해방은 ‘자기 탐닉’이라는 새로운 불안을 낳았습니다. 외부의 족쇄에서 벗어나 되찾은 '나의 목소리'가, 결국 나만의 세계에 갇힌 '고독한 독백'으로 귀결된다면 그것 역시 또 다른 굴레일지도 모릅니다.
흔들리는 아카이브, 영원한 정답은 없다
그렇다면 나만의 세계에 갇히는 것을 너머 감상의 보편성을 확보할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지난 글에서 그 방법의 하나로 ‘문화적 아카이브’와의 대화를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이 해법은 또 다른 질문과 마주합니다. 우리가 대화해야 할 그 아카이브 자체가 절대적인 진리를 담은 불변의 경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역사는 바로 그 아카이브가 끊임없이 흔들리고 다시 쓰여왔음을 보여줍니다. 수 세기 동안 ‘이상적 미’의 화신으로 군림했던 메디치 비너스는 19세기에 이르러 생명력 없는 조각상으로 추락했습니다. 반면 수백 년간 잊혔던 보티첼리는 후대의 눈에 의해 재발견되었습니다. 어제의 정답이 오늘의 오류가 되고 과거의 오답 노트에서 새로운 정답이 발견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준 자체가 영원하지 않다는 역사적 사실은, 우리가 왜 정답을 암기하는 ‘학습’이 아닌, 나의 직관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질문하는 ‘대화’의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강력한 근거를 제시합니다.
대화의 실천가, 로저 프라이
20세기 초의 비평가 로저 프라이는 이 ‘대화’를 온몸으로 실천한 인물입니다. 화가로서 재현 전통의 한계에 절망하던 그는 폴 세잔의 그림 앞에서 자신의 오랜 예술적 고민에 대한 '직관적 해답'을 찾았습니다. 그는 이 개인적인 충격을 실마리 삼아 과거의 아카이브와 치열하게 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라파엘로 이전, 미숙하다고 여겨졌던 조토 같은 화가들의 작품에서 재현의 강박을 벗어난 순수한 형태의 힘을 재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세잔의 혁신이 갑작스러운 단절이 아니라 잊혔던 위대한 전통의 부활일 수 있다는 새로운 역사적 맥락을 부여했습니다.
이런 치열한 대화를 거쳐, 로저 프라이는 세잔·고흐·고갱을 ‘후기인상주의’라는 이름으로 호명하며 미술사의 지도를 새로 그렸습니다. 기존의 맥락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직관과 역사와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생산해낸 것입니다. 물론 그가 제시한 ‘형식’이라는 기준 역시 또 다른 시대에는 넘어야 할 벽이 되었습니다. 이는 진정한 대화란 완결된 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영원한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결론: 역사 속에서 나의 좌표 찾기
전시장에서 정답을 찾아 헤매던 한 개인의 압박감은, 이처럼 수백 년에 걸친 '감상'의 역사라는 거대한 투쟁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레이놀즈가 세운 ‘보편적 정답’의 권위 앞에서 위축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페이터가 열어젖힌 ‘개인의 느낌’이라는 세계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왔습니다.
하지만 이 글의 여정은 우리에게 제3의 길을 보여줍니다. 바로 로저 프라이가 보여준 ‘대화’라는 태도입니다. 안목이란 내 안에서 떠오른 '직관적 해답'을 최종 목적지로 삼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안목은 나의 내밀한 깨달음을 실마리 삼아, 흔들리는 아카이브라는 거대한 바다로 기꺼이 뛰어드는 용기입니다. 나의 목소리로 역사에 질문을 던지고, 역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나의 감상을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이 역동적인 과정 속에, 외부의 정답을 맹신하는 ‘빌려온 시선’과 나만의 세계에 갇히는 ‘고독한 독백’의 굴레를 모두 벗어날 실마리가 담겨 있습니다. 정답이 사라진 시대, 영원한 기준이 없는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변의 최종 목적지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끊임없이 확인하며, 지도 위에 ‘나의 좌표’를 스스로 새겨나가는 여정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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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감상에는 ‘나’가 있나요? ② - 빌려온 시선의 역사
작품 앞에서 정답을 찾아 헤맬 때마다 찾아오는 압박감과 위축감. 이 불편하고도 익숙한 감정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정답’이 존재했던 18세기의 미술계부터 개인의 ‘느낌’이 중요해진 시대까지, 수백 년에 걸친 감상의 역사를 통해 ‘빌려온 시선’의 뿌리를 파헤치고 나만의 좌표를 찾는 여정을 탐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