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저는 「10만원짜리 하이닉스를 놓치고 깨달은 것」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한국주식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사실은 편향이었을 수 있다는 고백이었는데요. AI와 HBM의 구조적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으면서도, 하이닉스를 'AI 인프라의 핵심 공급자'가 아니라 그저 '한국주식'이라는 이름표 안에 가두었고 그렇게 주도주를 놓친 이야기였습니다.
그 글에서 저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들여다보지 않기로 한 것은 분석할 수도 없다고.
상황이 바뀌었는데 서사가 따라오지 못한 지점에 기회가 있다고.
"원래 그래"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원칙으로 위장한 편향을 의심해야 한다고.
그 글을 쓴 뒤, 저는 한국시장을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장이 끝나면 AI를 활용해 자체개발한 스크리닝을 돌렸고, 어떤 섹터에서 좋은 돌파가 반복되는지, 상대강도(Relative Strength, RS)가 계속 상위권에 머무는 종목은 무엇인지 확인했습니다.
기판과 MLCC 관련 종목들이 꾸준히 스크리너에 잡혔습니다(삼성전기와 LG이노텍은 4월초 일찌감치 잡혔습니다) 하이닉스를 놓친 지난번과는 달리 시장이 보내는 신호를 일찌감치 포착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신호를 일찌감치 보고도 제대로 다루지 못했습니다.
삼성전기와 이노텍을 발굴해놓고도 너무 일찍 비중을 덜어버린 것입니다. 반면 시장의 주도섹터가 아닌 종목들은 20일선을 크게 이탈한 뒤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50일선까지 기다렸습니다.
강한 종목은 작은 흔들림에도 덜었습니다. 약한 종목은 큰 이탈에도 버텼습니다.
주도주는 20일선 위에서 덜고, 물린 종목은 50일선까지 기다렸습니다.
1. 하이닉스를 놓친 뒤에도, 나는 또 놓쳤다
하이닉스가 계속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아쉬운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입니다.
시장 한가운데에 있었고, 모두가 알고 있었으며, 지나고 보면 가장 쉬워 보이는 선택지였습니다. 더욱이 이번에는 이름조차 생소한 소형주가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계좌에 담을 수 있었던 국민주식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더 아쉬웠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왜 하이닉스를 못 샀을까?"는 그다지 좋은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주도주는 계속 나옵니다. 모든 주도주를 처음부터 끝까지 잡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번에는 그게 하이닉스였고, 마침 모두가 아는 국민주식이었을 뿐입니다.
놓친 종목을 바라보며 상상하는 수익은 얼마든지 커질 수 있습니다. 가장 낮은 가격에서 사서 가장 높은 가격까지 들고 갔다고 가정하면, 세상의 모든 종목이 아쉬워집니다. 하지만 그런 상상은 환상일 뿐입니다.
하이닉스는 제가 가지지 못한 종목입니다. 반면 삼성전기와 이노텍은 제가 직접 발굴했고, 일찌감치 보유한 종목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복기해야 할 질문은 따로 있었습니다.
왜 하이닉스를 못 샀을까가 아니라, 왜 내가 이미 포착한 주도주를 주도주답게 대하지 못했을까.
왜 삼성전기와 이노텍을 빨리 덜었을까. 왜 더 모으지 않았을까.
왜 강한 종목에는 조급했고, 약한 종목에는 관대했을까.
질문을 바꾸자 비로소 제 매매의 뒤틀린 구조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 주도주는 결과론이지만, 신호는 사전에 온다
그렇다고 삼성전기를 끝까지 들고 가지 못한 일을 무조건 잘못이라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는 차트에는 이미 일어난 일이 담겨 있습니다. 어디가 저점이었고, 어느 조정이 단순한 흔들림이었으며, 어떤 돌파가 진짜 상승의 시작이었는지 모두 보입니다. 지나고 보면 당연해 보이고 쉬워보이죠. 하지만 그 당시에는 아직 그 결과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주도주는 사는 순간부터 주도주인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시장이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처음 삼성전기를 매수했을 때, 저는 그 종목을 '확립된 주도주'가 아니라 '주도주 후보' 정도로 보았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장이 흔들릴 때 일부 비중을 줄인 선택 자체를 사후적으로 무조건 자책하는 것은 사후편향일 수 있습니다. 수익쿠션이 20일선까지 기다리면 거의 사라질 수 있었고, 삼성전기가 이렇게까지 갈 것이라는 컨빅션도 당시에는 부족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여기서 "그때는 알 수 없었다"고 말하며 면피하고 끝내서도 안 됩니다. 당시 제가 아무 정보도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매일 스크리닝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기판과 MLCC, 관련 소재·부품 종목들의 돌파가 반복해서 나왔습니다. 삼성전기의 상대강도는 지속해서 상위권을 유지했습니다. 시장이 흔들리는 날에도 잘 버텼고, 20일선 위에서 추세를 이어갔습니다.
시장은 미래를 확정적으로 알려주지 않습니다. 다만 같은 방향의 증거를 반복해서 보여줍니다.
상대강도가 계속 상위권에 있다는 것은 단순히 그 종목의 차트 모양이 예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시장 참여자들이 매일 수많은 선택지 중 그 종목을 반복해서 선택하고 있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같은 섹터에서 좋은 돌파가 계속 나온다는 것 역시 일회적인 테마가 아니라, 돈의 흐름이 섹터 단위로 형성되고 있다는 흔적일 수 있습니다.
한 번의 강한 상승은 우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섹터의 돌파와 지속되는 상대강도는 우연이라고만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정확한 반성은 이런 것일 겁니다.
결과를 몰랐던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제가 가진 도구와 루틴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신호를 충분히 신뢰하지 못한 것. 주도주는 결과론이지만, 주도주로 확립되는 과정에는 분명한 흔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흔적을 보면서도 삼성전기를 주도주로 재분류하지 못했습니다.
관심종목에서 강한 종목으로, 강한 종목에서 주도주 후보로, 다시 주도주 후보에서 확립된 주도주로. 종목의 지위는 바뀌고 있었는데, 제 판단은 처음의 상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비중을 던 것만이 실수는 아니었습니다. 종목이 계속 강함을 증명했는데도, 제 판단을 함께 업데이트하지 못한 것이 더 큰 실수였습니다.
3. 편향의 함정에 또다시 빠지다 - 대형주에 대한 편향
지난 하이닉스 글에서 저는 '이름에 갇히다'라는 네이밍으로 제 편향을 복기했습니다.
하이닉스를 AI 인프라의 핵심 공급자로 보지 않고, 그저 '한국주식'이라는 이름표 안에 넣어두었습니다. 이름표가 붙는 순간 질문은 멈췄습니다.
그런데 한국주식이라는 이름표를 떼어낸 뒤에도, 제 안에는 또 다른 이름표가 남아 있었습니다. '대형주'라는 이름표였습니다.
저는 3월부터 기판 섹터를 좋게 봤습니다. 그래서 심텍, 코리아써키트, 대덕전자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꾸렸습니다. 섹터 판단 자체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그 안에서 어떤 종목을 가장 신뢰했느냐였습니다. 삼성전기는 너무 큰 종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이렇게 큰 회사가 얼마나 더 가겠어. 대형주는 움직임이 무겁지 않을까. 같은 섹터라면 중소형주에서 더 큰 수익률이 나오지 않을까. 제 시선은 자연스럽게 심텍과 코리아써키트, 대덕전자로 향했습니다. 제가 기대하는 수익률에 더 잘 맞는 크기의 시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장은 제가 선호하는 시총대의 종목을 그대로 선호할 의무가 없습니다. 섹터를 맞게 봤다면, 그다음에는 그 안에서 시장이 실제로 선택한 리더가 누구인지 더 냉정하게 보았어야 했습니다. 내가 선호하는 종목이 아니라, 돈의 흐름이 지속적으로 향하는 종목을 보았어야 했습니다.
삼성전기는 대형주라서 약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대형주임에도 상대강도가 계속 상위권이었습니다. 제가 약점이라고 생각한 크기가, 큰 자금이 지속해서 들어올 수 있는 장점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중소형주가 더 크게 갈 수 있다는 생각은 맞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대형 주도주를 과소평가할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섹터를 맞혔는데 정작 그 섹터의 리더를 덜 믿었다면, 그것은 종목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편향의 문제입니다.
하이닉스를 놓친 원인도 여기와 맞닿아 있습니다.
너무 크니까.
이미 많이 올랐으니까.
여기서 얼마나 더 가겠어.
그러나 진짜 주도주는 크기 때문에 못 가는 것이 아니라, 크기에도 불구하고 계속 갑니다. 때로는 크기 때문에 더 오래 갑니다.
지난번에는 '한국주식'이라는 이름표가 하이닉스를 가렸습니다. 이번에는 '대형주'라는 이름표가 삼성전기를 가렸습니다.
이름표는 바뀌었지만, 제가 저지른 실수의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시장이 보여주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제 머릿속에 이미 존재하던 분류를 먼저 보았습니다. 투명한 영혼으로 시장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말이죠.
4. 매도는 끝이 아니다
저는 주도섹터의 주도주라면 단순히 과열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덜지 않는 편입니다.
강한 종목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하게 갈 수 있고, 이격이 벌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줄였다가는 정작 가장 큰 상승을 놓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삼성전기와 이노텍을 던 시기는 과열이 극에 달하고 모두가 환호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강하던 종목이 시장 전체의 흔들림에 함께 밀릴 때였습니다. 수익쿠션이 줄어드는 불안을 견디지 못해 덜었죠.
수익이 날 때는 계좌 안에 작은 완충지대가 생깁니다. 종목이 하루 이틀 흔들리더라도 아직 이익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여유를 줍니다. 하지만 그 쿠션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시선이 바뀝니다.
처음에는 시장과 섹터, 종목의 성격을 보다가 어느 순간부터 제 평단만 보게 됩니다.
여기서 더 빠지면 수익이 얼마 남지 않는데.
20일선까지 기다리면 수익이 전부 사라질 텐데.
아무것도 못 벌고 끝나는 건 아닐까.
이때부터 종목의 추세보다 제 손익이 의사결정의 중심에 놓입니다. 주도주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대신, 지금까지 번 돈을 얼마나 지킬 수 있는지를 계산하게 됩니다.
수익이 0으로 돌아가는 것은 분명 아픕니다. 더욱이 당시 그 종목을 확립된 주도주라고 확신하지 못했다면, 그 수익을 전부 반납하면서까지 20일선을 기다리는 선택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일부 비중을 줄였다는 사실만으로 당시의 저를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현실적인 대안은 일부 수익을 확보한 뒤, 코어 물량을 남기는 방식이었을 수 있습니다.
수익이 사라지는 불안은 줄이되, 종목이 계속 강함을 증명할 가능성과의 연결은 끊지 않는 것. 전량 보유와 전량 매도 사이에 중간 지대를 만드는 것입니다.
문제는 일부를 덜었다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강한 종목과의 연결을 너무 쉽게 끊고, 판 이후에도 계속 추적하며 판단을 업데이트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내가 팔았다는 사실과 그 종목이 계속 강하다는 사실은 아무런 모순 없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시장이 제 판단 이후에도 새로운 증거를 보여준다면, 다시 사거나 비중을 늘릴 수 있어야 합니다.
5. 수익쿠션이 주는 편안함은 준비에서 온다
"확립된 주도섹터의 주도주라면 20일선까지는 기다렸어야 하지 않을까."
복기하면서 이런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하지만 이 문장만 원칙으로 남기면 또 다른 실수를 만들 수 있습니다. 20일선까지 기다리는 일은 단순히 의지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20일선까지 기다릴 수 있으려면, 애초에 20일선까지 기다릴 수 있는 가격과 비중으로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매수가가 20일선과 가까운 상태에서 충분한 수익쿠션을 확보했다면, 정상적인 조정이 와도 추세를 바라볼 여유가 생깁니다. 반대로 20일선 이격이 크게 벌어진 자리에서 비중을 크게 채웠다면, 종목이 아무리 훌륭해도 20일선까지의 정상적인 조정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좋은 주식을 오래 들고 가는 힘은 의지에서만 나오는 게 아닙니다. 좋은 셋업을 미리 발견하는 성실함과 좋은 자리에서 비중을 실을 수 있는 실행력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일찍 들어가야 합니다. 여기서 '일찍'은 아직 아무런 증거도 없을 때 막연한 기대만으로 선취매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좋은 셋업과 돌파를 보여줄 때, 반복되는 섹터의 강도와 지속되는 상대강도를 알아차리고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성실해야 합니다. 매일 시장이 끝난 뒤 스크리닝을 돌리고, 어떤 섹터에서 좋은 돌파가 나왔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한 번 잡힌 종목을 흘려보내지 않고, 며칠 뒤에도 상대강도가 유지되는지 계속 봐야 합니다. 같은 섹터에서 또 다른 종목들이 따라오는지, 조정장에서 누가 버티는지 기록해야 합니다.
그 반복 속에서 감각이 만들어집니다. 어떤 상승이 하루짜리 소음인지, 어떤 강함이 축적되고 있는 신호인지 구분하는 감각. 주도주 후보가 확립된 주도주로 승격되는 과정을 알아보는 감각.
수익쿠션은 단순히 운 좋게 낮은 가격에 샀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시장을 살피며 좋은 자리와 좋은 시기를 준비한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성실함은 종목을 많이 찾기 위한 노동만이 아닙니다. 좋은 종목을 오래 들고 갈 수 있도록 만드는 심리적 구조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좋은 자리에서 일찍 들어가면 수익쿠션이 생깁니다.
수익쿠션이 생기면 작은 흔들림을 견딜 수 있습니다.
흔들림을 견딜 수 있어야, 내 평단이 아니라 종목의 성격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야 주도주를 주도주답게 다룰 수 있습니다.
기다림은 의지력이 아니었습니다. 매일의 스크리닝과 관찰, 기록과 실행 속에서 미리 만들어지는 것이었습니다.
6. 주도주는 20일선 위에서 덜고, 비주도주는 50일선까지 기다렸다
더 뼈아픈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삼성전기처럼 상대강도가 강하고, 섹터의 흐름이 반복해서 확인되던 종목은 작은 흔들림에도 덜었습니다. 반면 주도섹터가 아니었던 종목들은 20일선을 크게 이탈한 뒤에도 쉽게 놓지 못했습니다.
한선엔지니어링, 두산퓨얼셀, 에스비비테크를 비롯해 손실로 남은 종목들을 돌아보면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대부분 시장의 확립된 주도섹터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돌파가 섹터 단위로 반복되지 않았습니다. 20일선 이탈 이후에도 50일선까지 기다려야 할 명확한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거래량이 적은 하락이니까 괜찮다", "아직 50일선이 남아 있다", "한 번쯤 반등이 나오지 않을까" 같은 이유를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거래량이 적은 하락'이라는 표현에 너무 관대했습니다. 거래량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하락이 건강한 조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평소 거래량이 적은 종목이라면, 며칠간의 일시적인 거래량 폭증이 오히려 비교 기준을 왜곡할 수 있습니다. 거래량이 적은 완만한 조정과 거래량이 적은 장대음봉 역시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장대음봉이 나오고 20일선을 크게 이탈했다면, 그때는 거래량의 많고 적음만 볼 것이 아니라 시장의 판단이 달라진 것은 아닌지 물었어야 합니다.
이 종목은 50일선까지 기다릴 자격이 있는가.
이건 주도주인가 아니면 단지 내가 물린 종목인가.
기다리는 이유는 근거인가 미련인가.
지금 시장에는 더 좋은 대안이 없는가.
확립된 주도섹터의 주도주가 20일선을 이탈한 것과, 애초에 주도섹터가 아니었던 종목이 20일선을 이탈한 것은 전혀 다른 사건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둘을 섬세하게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주도주에는 20일선도 기다리지 못하면서, 물린 비주도주에는 50일선까지 시간을 주었습니다. 좋은 종목에는 시간을 주지 못했고, 애매한 종목에는 미련을 주었습니다.
돌아보면 매매와 투자의 경계도 뒤섞여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짧은 매매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주가가 내려가면 어느새 "조금 더 길게 보면 괜찮지 않을까" 하며 투자로 바꾸었습니다. 반대로 시장의 돈이 지속해서 들어오던 주도주는 투자처럼 길게 보지 못하고, 짧은 매매처럼 수익을 확보했습니다. 매매로 들어갔다가 물리면 투자자가 되었고, 투자할 만한 주도주를 들고 있을 때는 트레이더가 되었습니다.
이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원칙을 세웠습니다.
확립된 주도주에는 관대하되, 주도주 판정에는 엄격하기.
며칠 강하게 올랐다고 주도주가 아닙니다. 대형주라는 이유로도, 뉴스가 붙었다는 이유로도 주도주가 되지 않습니다. 같은 섹터에서 좋은 돌파가 반복되고, 상대강도가 지속되며, 조정장에서도 버티는 시간이 쌓여야 합니다.
그렇게 엄격한 과정을 통과해 주도주로 확인된 종목에는 작은 흔들림을 견딜 여유를 주어야 합니다. 반대로 주도주 판정을 통과하지 못한 종목에는 미련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7. 종목의 모양보다 먼저 봐야 할 것
차트를 오래 보다 보면 개별종목 하나하나의 모양에 빠져들기 쉽습니다.
20일선 위에 있는지, 거래량이 줄었는지, 손절선을 살짝 흔들고 올라오는 셰이크아웃인지. 이런 디테일이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종목의 모양만 보면 하수입니다. 항상 시장 → 섹터 → 종목의 순서로 봐야 합니다.
지금 시장은 강세장인가 손익비가 좋은가.
확립된 주도 섹터가 있는가.
그 섹터 안에서 누가 가장 강한가.
제가 매일 보고받는 브리핑 자료에 좋은 돌파 종목이 거의 없다면, 그것 자체가 시장이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그럴 때 해야 할 일은 종목을 더 열심히 뒤져 억지로 매매거리를 찾아내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냥 매매하지 않는 것이 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매매할 종목이 보이지 않을 때 "그렇다면 밑에서 미리 모아볼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손실이 시작되었습니다.
좋은 돌파를 사는 매매를 하다가 갑자기 밑에서 모으는 투자로 전략을 바꾸면, 진입의 이유와 손절의 기준이 모두 흐려집니다. 처음에는 짧게 보았던 종목을 물린 뒤 장기 투자로 바꾸는 일이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매매가 되지 않을 때는 쉬어야 합니다.
뭐라도 해보려 하지 않아야 합니다.
좋은 돌파가 없으면 매매하지 않아야 합니다.
밑에서 모으겠다는 말로 매매 욕구를 투자처럼 포장해서는 안 됩니다.
최근 제가 한국시장을 보며 세운 가설이 있었습니다.
하이닉스가 부진해도 다른 섹터가 올라올 수 있을까.
하이닉스가 쉬는 동안 자금이 다른 섹터로 확산된다면, 한국시장 안에서도 계속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주 제가 본 흐름에서는 그 가설이 기각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이닉스가 오를 때는 하이닉스 중심으로 돈이 몰렸습니다. 그런데 하이닉스가 쉬자 다른 섹터가 치고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시장 전체의 체력이 함께 약해지는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비하이닉스 종목들은 오히려 더 빠졌습니다. 오를 때는 덜 오르고 빠질 때는 더 빠지는 형국입니다.
제가 한국시장보다 미국시장을 더 편하게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릅니다.
미국은 시장이 크고, 하나의 주도산업 안에서도 선택지가 많습니다. 대형주가 강하더라도 그 주변으로 수급이 확산될 여지가 있습니다. 반면 제가 체감한 한국시장은 특정 대형주에 돈이 집중될 때 다른 종목의 기회가 급격히 줄어들곤 했습니다.
하이닉스가 오르면 하이닉스만 오르고, 하이닉스가 떨어지면 다른 주식은 더 떨어지는 딜레마.
이런 환경에서 새로운 주도섹터가 보이지 않는다면, 억지로 다음 섹터를 예측할 필요는 없습니다.
포지션을 줄이고, 매매를 멈추고, 다음 주도섹터가 확립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적극적인 판단입니다.
8. FOMO가 좁힌 질문
하이닉스를 보며 느꼈던 감정의 이름은 분명 FOMO였습니다.
하지만 FOMO의 진짜 문제는 단순히 마음이 불편해진다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FOMO는 질문의 차원을 좁힙니다.
"왜 나는 저걸 못 샀지?"
"저걸 샀으면 얼마나 벌었을까?"
"왜 남들은 저렇게 쉬운 종목으로 돈을 버는데 나는 못 벌었을까?"
이 질문들은 후회만 키울 뿐, 더 나은 의사결정을 만들어주지는 못합니다. 놓친 종목을 바라보게 만들 뿐, 내가 실제로 가진 기회를 어떻게 다뤘는지는 보지 못하게 합니다.
이전 글에서 투자는 수익률 게임이 아니라고 썼습니다.
개인 투자자에게는 모든 구간에서 시장을 이기고, 모든 주도주를 보유해야 할 의무가 없습니다. 하이닉스를 놓쳤다고 해서 제 투자가 실패한 것도 아니고, 하이닉스를 보유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판단이 옳았던 것도 아닙니다.
카바나에 투자했을 때, 저는 남들이 돈을 벌지 못하던 시기에 큰 수익을 얻었습니다. 어떤 구간에서는 엔비디아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언제나 엔비디아보다 좋은 종목을 고를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때는 제 강점과 외부 상황이 맞아떨어졌습니다. 제가 이해할 수 있는 기업이 극단적인 공포 속에 있었고, 충분히 일찍 좋은 가격에 들어가 두터운 수익쿠션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저의 능력만으로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라, 능력과 상황이 드물게 정렬된 결과였습니다.
성공이란 그런 것 아닐까 합니다.
중요한 것은 매번 모든 기회를 잡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강점과 상황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을 알아보고 그 기회를 제대로 다루는 것입니다.
FOMO가 위험한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을 흐린다는 데 있습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게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기회, 내가 준비된 자리보다 남이 벌고 있는 수익률에 먼저 반응하게 만듭니다.
그 과정에서 돈보다 먼저 소모되는 것은 Attention입니다.
몇 백만 원을 더 벌기 위해 하루 종일 시세를 확인하고, 작은 등락에 마음을 빼앗기고, 다른 일에 쓸 판단력까지 소모한다면 그 거래의 실제 비용은 생각보다 큽니다.
너무 자주 보면 작은 흔들림이 큰 신호처럼 보입니다. 화면을 오래 응시할수록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압박도 커집니다. 반대로 미국 주식은 한국 주식처럼 수시로 들여다보지 않았고, 그래서 오히려 더 큰 흐름을 믿고 오래 가져갈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좋은 종목을 오래 들고 가려면 더 많이 보는 것만이 답은 아닙니다.
시장 종료 후에는 성실하게 스크리닝하되, 장중의 모든 움직임에 반응하지 않는 거리감도 필요합니다. 신호를 포착하기 위한 Attention과 소음에 빼앗기는 Attention을 구분해야 합니다.
큰 기회가 왔을 때 사용할 집중력을, 수많은 애매한 종목과 작은 등락에 모두 소진해서는 안 됩니다.
9. 마치며 - 다시 질문을 바로잡기
제 복기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올바른 질문은 "왜 하이닉스를 못 샀나"가 아니었습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었습니다.
왜 시장이 계속 보여준 신호를 충분히 신뢰하지 못했는가.
왜 대형주라는 이름표로 섹터 내 리더를 과소평가했는가.
왜 종목의 지위가 바뀌는데도 제 판단을 함께 업데이트하지 못했는가.
그리고 반대편에서는 또 다른 질문이 있습니다.
왜 시장이 더 이상 증거를 주지 않는데도 기다렸는가.
왜 주도섹터가 아닌 종목에 미련을 주었는가.
왜 매매로 시작한 포지션을 물린 뒤 투자로 바꾸었는가.
앞으로도 주도주를 일찍 파는 일은 생길 것입니다. 모든 종목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가져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다시는 주도주를 일찍 팔지 않겠다"는 거창한 다짐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대신 강한 종목을 일부 덜어내더라도 계속 추적하겠습니다. 시장이 새로운 증거를 보여준다면 제 판단도 다시 고치겠습니다. 제가 선호하는 종목이 아니라 시장이 선택한 종목을 보겠습니다.
20일선까지 기다리고 싶다면, 기다릴 수 있는 가격과 비중으로 일찍 들어가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매일 스크리닝하고, 반복해서 나오는 섹터와 상대강도가 지속되는 종목을 성실하게 추적하겠습니다.
주도주에는 관대하되, 주도주 판정에는 엄격하겠습니다.
좋은 돌파가 보이지 않을 때는 억지로 밑에서 모으지 않겠습니다. 시장과 섹터가 보여줄 때까지 쉬겠습니다.
투자는 모든 주도주를 맞히는 게임이 아닙니다.
내게 온 기회를 제대로 다루는 게임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놓친 종목을 아쉬워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못 던진 질문을 바로잡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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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하이닉스를 놓친 게 문제가 아니야
올해 한국 시장에서 하이닉스를 놓친 사람, 저만은 아닐 겁니다. 그런데 복기해보니 하이닉스를 놓친 건 진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정작 아팠던 건 이미 손에 쥐고 있던 종목이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