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남는 날들

장이 끝나면 저는 그날 돌파한 종목들을 훑습니다. 마감 후에 자체 스크리닝을 돌려서 돌파 종목과 상대강도가 높은 종목, 그리고 어느 섹터가 강한지를 살피는 것이 지난봄부터 들인 습관입니다.

그런데 요즘 같은 장에서는 아무리 훑어도 걸려 나오는 게 많지 않습니다. 많이 잡아야 다섯 개입니다. 시간이 남습니다. 처음에는 그 남는 시간이 불편했습니다. 내가 덜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조금만 더 파고들면 놓친 셋업이 어딘가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저는 열정이 많은 사람입니다. 무언가를 손에서 놓고 있으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래서 더 오래 차트를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애써 찾으려고 할수록 제 기준이 낮아졌습니다. 처음에는 눈에 차지 않던 차트도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더 보면 볼수록 더 관대해졌습니다. 저는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열심히 기준을 허무는 중이었습니다.

지난 글에서 저는 "매매가 되지 않을 때는 쉬어야 한다"고 썼습니다. 그런데 그 문장은 결론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왜 쉬어야 하는지, 쉬는 동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손 놓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까지는 쓰지 못했습니다. 이번 글은 그 빈자리에서 시작합니다.

현명한 게으름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한 지인과 시장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요즘 장이 끝나고 돌파 종목을 체크해도 다섯 개 남짓이라 시간이 남는데, 이럴 때 더 파고들어야 할지 그냥 쉬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그분이 의외의 말을 했습니다.

의욕이 떨어질 때는 같이 쉬어주는 게 낫다고, 시장이 매매하기 좋아지면 없던 의욕도 생기니 그럴 땐 슬슬 게으름을 피워도 좋다고요.

이 대화를 곱씹다가 저는 한 가지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의욕이 떨어지는 것 자체가 시장의 신호일 수 있다는 것. 지인의 그 말을 저는 '현명한 게으름'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의욕이 떨어질 때, 그것도 신호일 수 있다

좋은 장에서는 몸이 먼저 반응합니다. 돌파가 여기저기서 터지고 같은 섹터에서 돌파가 반복해서 튀어나오면 저는 보기 싫어도 보고 싶어집니다. 억지로 의욕을 짜낼 필요가 없습니다. 기회가 많으면 의욕은 저절로 따라옵니다.

반대로 아무리 들여다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건 제가 게을러진 탓이 아닐 수 있습니다. 기회의 밀도가 낮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몸이 시장의 온도를 먼저 느끼고 있는 셈입니다.

다만 의욕이 없다는 것이 언제나 쉬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진짜로 기회가 없어서 의욕이 안 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내가 지쳐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것인지를 구분해야 합니다. 이 둘을 혼동하면 "시장 탓"이라는 편한 핑계로 게으름을 정당화하게 됩니다.

게으름인가, 신호인가

그래서 저는 기분에 기대지 않고 지표로 확인합니다. 브리핑에 돌파가 거의 없습니다. 섹터 단위의 확산이 없습니다. 시초의 강세가 종가까지 이어지지 않습니다. 좋아 보이는 종목도 손익비가 애매합니다. 이런 것들이 겹쳐서 나타나면 그것은 제 컨디션 문제가 아닙니다. 시장의 문제입니다. 시장 때문에 안 되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지쳐 있는 것인가. 이 질문에 지표로 답할 수 있어야 쉬는 일이 회피에서 판단으로 바뀝니다.

버핏 -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자본배분

최근 버핏의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쥐고 있는 현금이 약 4,000억 달러에 이른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현금이 이렇게 많이 쌓여 있으면 보통은 투자할 곳을 못 찾아 돈을 놀리고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런데 버핏은 다르게 봅니다. 현금은 기준에 맞는 기회가 드물어서 자연스럽게 쌓인 결과입니다. 좋은 기회가 있었다면 이미 썼을 텐데 없으니까 쌓인 겁니다. 기회가 없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버크셔식 자본배분입니다.

버핏은 자신의 60년 투자 인생을 돌아보며, 기회가 정말 많았던 해는 5년 정도였다고 말합니다. 나머지 55년은 대단할 게 없는 해였다는 뜻입니다. 60년 중 5년. 이 숫자가 오래 남았습니다.

시장은 늘 무언가를 하라고 유혹합니다. 하지만 진짜 실력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매력적이지 않은 것을 그냥 놔두는 데 있습니다. 호의적으로 베팅할 수 있는 계절이 올 때까지, 현금을 아껴두고 주의력과 판단력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것입니다.


무위는 행동의 부재가 아니라 기준이 작동한 흔적

해야 할 시기에는 해야 할 일을 한다.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시기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두 번째 문장이 없으면 첫 번째 문장도 함께 망가집니다. 아무 때나 행동하는 사람은 정작 진짜 시기가 왔을 때 쓸 현금도 멘탈도 남아 있지 않으니까요. 평소에 다 소진해버린 사람에게는 결정적 순간이 와도 쥘 힘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매매하지 않는 시간은 무엇을 하는 시간일까요. 다음 기회를 위해 현금과 주의력과 판단력을 보존하는 시간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다음을 위해 자원을 아끼고 있는 겁니다.

현금이 기회가 왔을 때 쓰는 자본이라면, 주의력은 기회를 알아볼 때 쓰는 자본입니다. 지치도록 화면을 들여다보는 동안 닳는 것은 시간만이 아닙니다. 주의력이라는 자본까지 함께 소진됩니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서 기준이 작동하고 있다면 이는 위대한 행동입니다. 무위는 행동의 부재가 아니라 기준이 작동한 흔적입니다.

기준을 낮추지 않기

버핏의 현금이 기준을 낮추지 않은 결과였다면, 저의 6월은 그 반대였습니다. 기회가 없는 계절에 기준을 낮추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몸으로 배웠습니다.

성실함의 역설

저는 성실함을 믿는 사람입니다. 매일 스크리닝을 돌리고 매일 시장을 복기하는 그 반복이 감각을 만든다고 믿어왔습니다. 실제로 기회가 많은 장에서는 성실함이 힘을 발휘합니다. 많이 볼수록 패턴이 눈에 익습니다. 반응도 빨라집니다. 성실함이 저를 더 나은 매매자로 만들어줍니다.

그런데 기회가 적은 장에서는 그 성실함이 저를 배신합니다. 볼 게 없는데 계속 보고 있으면, 감각이 예리해지기는커녕 기준이 무너집니다. 좋은 셋업은 발견하는 것이지 발명하는 것이 아닌데,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없는 것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좋은 장에서는 더 봐야 하고, 나쁜 장에서는 덜 봐야 합니다. 항상 열심히 보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 때에 맞게 열심해지고 때에 맞게 느슨해지는 것입니다.

기준이 낮아지는 과정은 대개 세 단계를 거칩니다. 처음에는 "이 정도면 좀 약한데" 하고 화면을 봅니다. 30분쯤 더 보고 있으면 "그래도 다른 것들보단 낫네" 하는 마음이 듭니다. 다시 1시간을 더 보면 "밑에서 조금씩 모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데까지 갑니다. 처음에 약하다고 판단했던 그 종목을 결국 사고 있는 겁니다. 무엇이 바뀌었을까요. 종목은 그대로입니다. 바뀐 건 제 기준뿐입니다.

로보티즈에서 배운 것

쏠림이 심해서 돌파가 잘 나오지 않는 장이었습니다. 스크리닝을 돌려도 손에 잡히는 게 없었습니다. 그러다 로보티즈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때 시장을 이끌었던 과거의 주도주였습니다. 마침 50일선 근처까지 내려와 있었죠. 저는 "50선 줍줍"을 하기로 했습니다. 주도주가 눌림을 줄 때 50일선에서 받는다는,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은 논리였습니다. 진입하면서 저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정도에선 물려도 된다. 떨어져봐야 얼마나 떨어지겠어."

지금 그 말을 다시 옮겨 적으려니 참 한심하네요. "물려도 된다"는 말은 사실 손절 기준이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얼마나 떨어지겠어"는 리스크를 재보지 않았다는 말이었습니다. 한 달 뒤, 로보티즈는 150일선까지 깨졌습니다. 저는 마이너스 20퍼센트에서 손절했습니다. 과거의 주도주는 현재의 주도주가 아니었습니다. 시장을 이끌던 시절의 기억으로 그 종목을 봤지만, 지금은 그저 힘이 빠진 종목이었을 뿐입니다.

이 매매에서 저는 기준이 낮아지면 미련이 자꾸 생긴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동안 저는 미련이란 보유하는 동안 생기는 감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손실을 보면서, 본전이 아까워서 못 파는 그 마음 말입니다. 그런데 로보티즈를 겪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미련은 보유 중에 생기는 게 아니라 기준을 낮춰 진입한 그 순간에 이미 잉태됩니다. 확신 없이 들어갔기 때문에 확신 없이 붙들게 됩니다. 명확한 기준으로 사지 않았기 때문에 명확한 기준으로 팔지도 못합니다. 낮은 기준으로 시작한 매매는 처음부터 미련을 품고 태어납니다.

모양보다 계절

기준이 낮아지는 일은 맥락 없이 차트만 들여다볼 때 벌어집니다. 개별 차트 하나만 놓고 보면, 언제나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20일선 근처에 왔네." "거래량 없는 하락이니까 매물이 적은 거네." "50일선까지는 봐줘도 되지 않을까." "이거 셰이크아웃 아닐까." 이런 해석들은 하나하나 놓고 보면 다 말이 됩니다. 문제는 이 모든 해석이 하위 논리라는 데 있습니다. 시장이 죽어 있고 섹터가 죽어 있으면 개별 차트를 아무리 정교하게 읽어도 그 위에 세운 논리는 무너집니다. 종목의 모양은 시장이라는 계절 위에서만 의미를 가집니다. 차트에 집착하기 전에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겁니다. "지금은 베팅을 호의적으로 할 수 있는 계절인가?"

나쁜 장에서는 종목을 찾지 말고 지도를 그린다

이렇게만 말하면 "아무것도 하지 마라"는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 한다"로만 끝나면 공허합니다. 저 같은 사람은 특히 그렇습니다. 손을 완전히 놓으라고 하면 그 남는 에너지가 어디론가 새어 나가 기어이 기준을 낮춘 매매로 돌아옵니다.

화면을 계속 들여다보면 기준이 낮아질 위험이 있습니다. 화면을 완전히 닫아버리면 좋은 장이 왔을 때 준비가 안 되어 있습니다. 둘 다 문제입니다.

나쁜 장에서 종목을 찾는 것은 위험하지만, 지도를 그리는 것은 유용합니다. 둘은 전혀 다른 작업입니다. 종목을 찾는 것은 "지금 살 것"을 고르는 일입니다. 지도를 그리는 것은 "나중에 볼 것"을 표시하는 일입니다.

지도를 그릴 때 저는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누가 덜 망가지는가. 하락장에서 상대적으로 버티는 종목이 누구인지를 봅니다.
어떤 섹터가 시장이 좋아질 때 치고 나갈 후보인가.
그리고 지금 오르고 있는 것이 방어적 순환매인가, 아니면 다음 주도주의 전조인가.

마지막 질문이 특히 까다롭습니다. 약세장에서 강해 보이는 종목에는 두 종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진짜 다음 주도주 후보입니다. 시장이 나빠도 상대적으로 강하게 버팁니다. 시장이 돌아서면 앞장서서 나갈 종목이죠. 다른 하나는 방어주나 소외주의 순환매입니다. 시장이 나쁘니까 돈이 잠깐 피난 온 것일 뿐입니다. 시장이 좋아지면 그 돈은 다시 빠져나갑니다.

저는 경기방어주가 강할 때 이 둘을 헷갈려서 기준이 엉킨 적이 있습니다. 방어주가 튼튼하게 올라가는 것을 보고 "이게 다음 주도주인가" 싶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저 나쁜 장에서 잠깐 돈이 몰린 자리였습니다. 늘 되물어야합니다. "시장이 좋아져도 이 종목으로 돈이 계속 들어올까?" 방어적 순환매라면 시장이 좋아지는 순간 돈이 떠납니다. 진짜 후보라면 시장이 좋아질 때 오히려 더 들어옵니다. 약세장에서는 후보를 지도에 올려두고, 강세 전환에서 검증합니다.

비선형의 시간, 대부분의 날은 관찰의 날

투자를 어렵게 만드는 것 중 하나는 시장이 매일 열린다는 사실입니다. 매일 아침 장이 섭니다. 매일 어딘가에서 급등주가 나옵니다. 그러면 뇌는 착각합니다. "오늘도 중요한 선택의 날 아닐까." 매일이 결정의 날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날은 결정의 날이라기보다 관찰의 날입니다. 대부분의 움직임은 기회처럼 보여도 실은 소음입니다. 매일 열린다는 사실이 매일 행동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세 번의 결정으로 충분했던 사람

이건 시장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언젠가 어느 블로그에서 읽은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필자의 아버지는 투자에 별 관심이 없는 분이었는데, 인생에서 가장 큰 세 번의 결정 — 두 번의 이사, 그리고 자녀의 유학을 쿨하게 지원한 것 — 만큼은 직접 내렸다고 합니다. 그 세 번으로 자산도 자식 농사도 남부럽지 않게 일구었고, 평소에는 골프를 치고 바둑을 두며 지냈다고요. 10년에 한두 번의 좋은 선택이면 충분할 수도 있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어느 투자자의 글에서도 만났습니다. 매일 최선의 선택을 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변곡점에서 좋은 방향의 선택을 쌓아가면, 그 결정이 누적되어 인생의 복리가 된다는 것. 핵심은 매일이 아니라 몇 번의 변곡점에 있습니다.


이 비선형의 감각을 저는 카바나에서 몸으로 배웠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은 준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수익의 대부분은 소수의 결정에서 나왔습니다. 매일 무언가를 해서 얻은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오래 기다렸다가 몇 번 크게 움직여서 얻은 결과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매일 이기는 것이 아니라 변곡점에서 크게 틀리지 않는 것. 매일의 수익률보다 드문 변곡점에서의 판단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기다림이라는 럭셔리에서 저는 기다림이 게으름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라고 썼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남들 눈에도, 심지어 제 눈에도 나태해 보입니다. 이번 글에서 저는 그 게으름을 '현명한 게으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데려오고자 합니다. 게으름처럼 보이는 그 시간이 실은 자원을 아끼고 지도를 그리는 시간이라면 그건 나태가 아닙니다. 준비입니다.

FOMO는 그 반대편에 있습니다. 준비를 나태로 착각하게 하고, 오늘도 이번 주도 이번 달도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조급함으로 시간을 선형으로 만듭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날은 흘려보내도 되는 날입니다.

승부사는 기다릴 줄 아는 사람

카바나는 저에게 기회가 왔을 때 크게 움직여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버핏은 저에게 대부분의 시간에는 기회가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이 두 가르침은 언뜻 모순처럼 보입니다.

저는 이 둘을 함께 품어야 한다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조건부로 과감해지는 일입니다. 시장의 계절이 좋고, 주도섹터가 살아 있고, 종목이 그 섹터 안의 리더이고, 손익비가 좋고, 틀렸을 때 나갈 기준이 분명할 때. 그 조건이 맞을 때는 망설이지 않고 크게 움직여야 합니다. 조건이 맞지 않을 때는 손을 묶습니다. 조건이 맞을 때 크게 움직이기 위해서요.

과감함만 있으면 도박꾼이 되고, 절제만 있으면 겁쟁이가 됩니다. 필요한 것은 둘 중 하나가 아니라 기다림 끝에 과감해지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시장은 예고 없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평온할 때 미리 분석해두어야 패닉이 와도 당황하지 않고 제 기준을 지킬 수 있습니다. 패닉이 지나간 자리에서는 다음 주도주가 태어납니다. 그때 알아보는 사람은 지도를 미리 그려둔 사람입니다.

진짜 승부사는 자주 베팅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베팅하지 않을 시간을 견딘 뒤에, 조건이 맞을 때 크게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무위가 불안한 것은 오늘이 혹시 중요한 날이면 어떡하지 싶어서입니다.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그 불안이 행동을 재촉합니다. 그런데 기준이 생기면 대부분의 날을 편안하게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오늘 안 산다"가 아니라 "오늘은 내 기준상 결정의 날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겉으로는 같은 말이지만 그 말을 하는 마음은 전혀 다릅니다. 쉬는 것은 승부를 포기하는 일이 아닙니다. 다음 승부를 위해 현금과 주의력과 판단력을 남겨두는 일입니다.

언제나 투자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투자해야 할 때를 알아보기 위해 쉬는 동안에도 지도는 그려두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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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게으름 - 언제나 투자할 필요는 없어

'지금 뭘 사야 하느냐'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게 있었습니다. 언제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느냐, 그리고 진짜 기회가 왔을 때 크게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느냐. 기회가 드문 계절을 보내는 법을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