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부터 7월 초까지, 한남동 P21 갤러리에서 전시《Balance in Motion》이 열렸습니다. 열일곱 명의 작가가 모빌이라는 형식을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해석한 전시였어요. 저는 그 막바지에 이 전시를 봤습니다.

모빌은 알렉산더 칼더가 조각을 받침대에서 떼어내 공중에 매달면서 태어났고, 1931년 마르셀 뒤샹이 거기에 '모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라틴어 'mobilis'(움직일 수 있는)에서 온 이름처럼, 모빌은 고정된 자세를 고집하지 않고 바람과 빛과 관객의 숨결에 응답하며 끊임없이 자기 위치를 바꿉니다. 전시 서문(글 박미주)은 균형을 이렇게 정의해요. 완결된 상태가 아니라 유연하게 흔들리며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흔들리는 것이 본성이고 그 흔들림 속에서 중심을 찾아가는 과정이 곧 모빌의 삶이라고요.


균형은 제 오래된 화두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균형을 '언젠가 도달할 상태'로 여겨왔어요. 안정된 자리, 더는 흔들리지 않는 지점. 그래서 삶이 자꾸 흔들릴 때면 조바심이 났습니다. 아직 거기 닿지 못했다는 초조함이었죠.

이 전시는 그 전제를 조용히 흔들었습니다. 여기 놓인 조각들은 완전한 정지를 알지 못해요. 흔들리는 게 결함이 아니라 본성이고, 흔들리기 때문에 살아있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재밌는 건, 열일곱 개의 모빌이 저마다 다른 얼굴의 균형을 보여줬다는 거예요.


최하늘의 「직전의(Just Before)」 앞에서 제일 오래 서 있었습니다. 석고와 실리콘으로 빚은 손이 가느다란 줄을 쥘 듯 말 듯 붙잡고 있어요. 쥐면 소유가 되어 끝나고, 놓으면 끊어져 끝나는.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은 채 그 사이에 머무는 손이었습니다. 놓칠 듯 잡을 듯한, 그 애틋함. 이상하게 아프면서도 좋았어요. 아마 아프면서도 좋은 건, 그 상태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완전히 쥐거나 완전히 놓는 순간 균형은 사라지고, 하나의 결론이 되어버리니까요.

이은우는 2년쯤 전부터 눈여겨봐 온 작가예요. 작가 이름을 가리고 봐도 "아, 이건 이은우다" 싶은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배치와 물성을 다루는 방식이 그랬어요. 이번 전시 작품 「함께」도 그랬습니다. 5밀리미터씩 커지는 동판들이 한쪽은 정밀하게 계획된 채로, 다른 한쪽은 동전이며 얇은 조각들이 즉흥적으로 매달려 수직을 찾아가요. 비대칭이고 이질적인데, 그게 균형을 이룹니다. 저는 대칭의 균형보다 이런 균형에 늘 끌렸어요. 그냥 나란히 놓인 병치는 싫고, 서로 다른 것들이 맞춰가는 조화. 오묘초의 「빛을 먹는 자들」도 비슷한 결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기후에서 자란 식물들을 금속으로 옮겨 나란히 매달았는데, 저마다 다른 시간을 품은 것들이 같은 공기 속에서 새 균형을 찾더라고요.

윤정민의 인물들 앞에서는 강인함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자코메티가 겹쳐 보이기도 했고요. 불과 망치로 두들겨 편 얇은 사람들이 서로 기대면서도 각자의 무게를 견디고 있었어요. 요란하지 않은, 조용한 강인함.

임민욱의 지팡이 작품은 작품 자체보다 곁에 붙은 글이 더 오래 남았어요. "잊혀졌던 것들이 남긴 무게가 어떻게 삶을 계속 지탱하는지." 채색된 나무에 세라믹과 유리, 깃털이 엉겨 붙은 지팡이였는데, 온갖 것을 짊어졌으면서도 이상하리만치 가벼워 보였습니다. 잃어버린 것들, 미처 완성하지 못한 것들의 무게가 오히려 나를 버티게 한다는 말. 그 문장 앞에서 제법 오래 멈췄습니다.


전시를 보고 나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균형에는 이렇게 여러 얼굴이 있구나. 놓칠 듯 잡을 듯한 긴장도, 이질적인 것들의 조화도, 조용히 견디는 강인함도, 잃어버린 것의 무게도, 전부 균형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얼굴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어요. 어느 것도 완성되어 멈춰 있지 않다는 것. 전부 되어가는 중이라는 것.

사실 저는 몇 해 전에 이 단어를 이미 만난 적이 있어요. 쾨닉 서울에서 온 카와라, 피터 드레허, 알리시아 크바데의 전시를 보고 쓴 글에서였습니다. 그때 저는 제여란 작가의 표현을 빌려 '되ㅡㅁ'이라고 적었어요. 됨이 아니라 되ㅡㅁ, 그러니까 어떤 상태가 되어가고 있는 과정 자체(becoming)에 마음을 주는 일. 그 무렵 제가 세운 다짐이 '집착하지 않는 삶'이었거든요. 지향점은 가지되 거기에 매달리지 않는 것, 바람대로 되지 않아도 수용하는 것. 되어가는 과정에 마음을 주는 것. 머리로는 그렇게 알고 있었던 셈이에요. 그런데도 삶이 흔들릴 때면 자꾸 조바심을 냈습니다. 그런 저에게 이 전시는 그걸 몸으로 다시 느끼게 해준 거예요.

모빌은 자기가 매달린 줄을 고르지 못합니다. 중력도, 매달린 자리도 주어진 것이에요. 그런데도 그 안에서 흔들리며 자기 자리를 찾아갑니다. 어쩌면 우리가 놓인 자리도 그런지 몰라요. 어찌 할 수 없는 제약 속에서, 그래도 흔들리며 균형을 만들어가는 것. 그렇게 보면 흔들림은 아직 닿지 못한 미완이 아니라, 지금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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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 것 #8 — 흔들리며 균형을 이루는 것들

모빌은 자기가 매달린 줄을 고르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그 안에서 흔들리며 자기 자리를 찾아가죠. 어쩌면 흔들림은 아직 닿지 못한 미완이 아니라, 지금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