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은 순간들'에서는 제가 마음을 준,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울림을 주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번 글은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았거나 절판되어 쉽게 만나보기 어려운 양질의 책들을 읽고 그 안의 지혜를 탐색하는 두번째 시리즈입니다.
이번 시리즈에서 다룰 책 <The Luxury Strategy>는 럭셔리를 단순한 상품이 아닌, 고유한 철학과 전략을 가진 하나의 세계로 바라보게 해주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럭셔리라는 개념을 통해 제 삶의 가치관과 태도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럭셔리가 삶의 태도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담은 순간들'에 담아보려 합니다.
첫번째 시리즈가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제가 럭셔리에 마음을 주게 된 계기부터 말씀 드릴까 합니다. 저는 헤리티지(heritage), 그러니까 시공간을 초월하여 전해 내려오는 유산에 깊은 애정을 느껴왔습니다. 오래된 것들에 깃든 시간의 흔적과 이야기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과 영감을 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헤리티지에 특히나 애정과 열정을 갖고 해석하고 활용하는 존재가 '럭셔리 브랜드'였습니다.
저는 단순히 값비싼 물건을 소유하는 것을 넘어 삶의 가치와 태도로서의 '럭셔리'를 지향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장 노엘 캐퍼러와 뱅상 바스티앙이 쓴 <The Luxury Strategy>을 만났습니다. 책에서 다루는 럭셔리의 다양한 속성들 – 고유한 정체성, 시간과 여유의 가치, 기능을 넘어선 꿈과 감성,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 전통과 동시대성의 조화, 구별 짓기, 희소성 등 – 은 앞으로 '담은 순간들'을 통해 하나씩 풀어내고 싶은 소중한 화두가 되었습니다. 고민하며 숙성시킨 생각들을 앞으로 꾸준히 글로 발행해 나갈 예정입니다.
그중에서도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문장, 이 책의 핵심적인 메시지 중 하나가 오늘 나눌 이야기입니다.
"럭셔리는 비교급이 아니라 최상급이다.”
(Luxury is superlative, not comparative)
오늘은 이 문장을 실마리 삼아, 럭셔리가 왜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걷는지 그 이유를 '정체성', '기준', 그리고 '전통·유산·역사에 대한 존중'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풀어보고자 합니다.
1. 럭셔리의 정체성: 비교를 거부하는 고유함
럭셔리 브랜드는 자신을 다른 브랜드와 비교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브랜드들이 타 브랜드와의 경쟁 속에서 자신의 우위를 찾고 차별점을 부각하려 애쓰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럭셔리는 오직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
에만 집중할 뿐, 경쟁자를 의식하거나 비교 우위를 점하려 애쓰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고유한 정체성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저는 '꿈'과 '단단한 중심'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떠올렸습니다.
럭셔리는 프리미엄이 아니다: 품질 너머 '꿈'을 담다
먼저 책에서는 '럭셔리는 프리미엄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프리미엄 브랜드가 성능, 품질 등 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가치를 통해 '더 나은' 제품임을 증명하려 한다면 럭셔리는 그 너머의 가치, '꿈'을 추구합니다. 기능적 완벽함보다는 브랜드 고유의 비전과 철학, 그리고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감성적 울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책에서는 '능가하는 것과 정체성을 소유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outclassing a model is one thing, but possessing an identity is another)'라고 지적하며, 아무리 기술적으로 뛰어난 제품이라도 브랜드만의 '꿈'을 담아내지 못한다면 진정한 럭셔리가 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럭셔리는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 때도 있습니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이상과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생긴 '결함'은 때로는 럭셔리만의 독특한 매력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단단한 중심: 흔들리지 않는 브랜드의 축
'단단한 중심'이라는 제 오랜 화두도 떠올랐습니다. 럭셔리 브랜드가 외부의 시선이나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비교를 거부하며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근원은, 바로 이 '단단한 중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단한 중심은 브랜드가 오랜 시간 지켜온 철학이자 비전이며, 모든 활동의 기준점이 됩니다. 결함을 매력으로 승화시키는 것도 이 단단한 중심의 힘이죠.
유행이나 시장의 요구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힘도 바로 이 단단한 중심에서 나옵니다. 럭셔리는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동시대와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전통에만 집착하면 시대에 뒤처져 고리타분해지기 쉽고, 반대로 동시대의 유행만을 좇다 보면 브랜드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단단한 중심'의 역할이 중요해집니다.
브랜드는 단단한 중심을 축으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변화시킬지 판단합니다. 책에서는 브랜드 정체성의 '중심적인(central)' 측면과 '주변적인(peripheral)' 측면을 식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변치 않아야 할 핵심(중심적인 측면)을 굳건히 지키면서, 시대의 흐름에 맞춰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는 부분(주변적인 측면)을 조화롭게 관리하는 것. 비단 럭셔리 브랜드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중요한 인사이트입니다.
2. 럭셔리의 기준: 시간 속에서 숙성된 가치
럭셔리가 비교급이 아닌 최상급인 두 번째 이유는 "스스로 설정한 아주 높은 수준의 기준"을 따른다는 점입니다. 럭셔리의 기준에는 '축적되고 계승되어 온 가치와 정신’이라는 요소가 중요하게 포함됩니다. 럭셔리 제품 하나에는 브랜드가 오랜 시간 쌓아온 역사와 고유한 문화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오래되었다는 의미를 넘어, 시간을 견디며 연마되고 숙성된 원칙이 그 기준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럭셔리 브랜드가 오랜 시간 쌓아온 시간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은 제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외부의 평가나 단기적인 유행에 휩쓸리기보다, 스스로 고민하며 충분히 숙성시킨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따라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저만의 '최상급' 기준을 만들어가는, 때로는 흔들리고 고민하며 그 기준을 숙성시켜 나가는 과정을 '담은 순간들'에 꾸준히 기록하고 나누고자 합니다.
3. 전통·유산·역사에 대한 존중: 시간 속에서 길어 올린 깊이
럭셔리가 비교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마지막 이유는 "전통·유산·역사에 대한 깊은 존중"에 기반하기 때문입니다. 책은 럭셔리 브랜드에 있어 역사와 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러 차례 강조합니다.
헤리티지와의 소통: 과거와 현재를 잇는 서사 만들기
역사가 짧거나 없는 신생 브랜드는 어떻게 역사를 만들어갈까요? 책에서는 이들이 종종 역사적 서사를 '발명'하거나 '차용'하여 브랜드의 깊이를 더한다고 설명합니다. 저는 여기서 '차용'의 방식에 특히 주목했습니니다. 저는 ‘헤리티지와 소통하는 삶’을 모토로 삼고 있는데요, 책을 읽으며 신생 브랜드가 역사를 차용해서 브랜드의 깊이를 더해가듯 저 역시 헤리티지와 소통하며 저만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의 유산을 저의 맥락 속으로 가져와 새롭게 해석하고, '헤리티지의 맥락에 나를 위치시키는' 과정을 통해 저만의 고유한 서사를 만들어갑니다. 이는 신경미 작가가 본인의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을 보편적인 역사와 문화라는 더 넓은 시공간 속에 위치시키며 아픈 기억과의 화해를 시도하는 작업 방식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저 역시 때때로 찾아오는 깊은 외로움을, 유구한 헤리티지 속에 홀로 존재했던 수많은 섬세한 영혼들을 떠올리며 그 보편적인 맥락 속에 배치함으로써 위안을 얻곤 합니다.
아카이브의 힘: 브랜드의 정수를 담다
헤리티지를 존중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는 헤리티지를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이는 아카이브의 중요성으로 이어집니다. 책에는 칼 라거펠트가 샤넬의 디렉터를 맡았을 때 샤넬 하우스의 아카이브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샤넬만의 언어를 깊이 연구했다는 사례가 나옵니다. 아무리 뛰어난 디자이너라도 브랜드의 뿌리가 되는 역사와 정신을 존중하고 계승해야 진정한 창조가 가능합니다. 역사는 브랜드의 뿌리이며, 아카이브는 그 뿌리로부터 자양분을 길어 올려 현재를 풍요롭게 하고 미래를 여는 통로입니다.
이는 저로 하여금 저만의 아카이브를 구축해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습니다. 제가 경험하고 사유하며 마음을 주었던 순간들을 이 공간 '담은 순간들'에 차곡차곡 기록하고 모으는 것이 그 시작입니다. 책, 음악, 미술, 영화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발견들까지, 제 마음을 움직였던 것들을 담아두려 합니다. 이렇게 쌓인 기록들이 훗날 저만의 소중한 헤리티지가 되어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든든한 뿌리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맺음말
결국 "럭셔리는 최상급이지 비교급이 아니다"라는 말은, 럭셔리가 외부와의 비교·경쟁보다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고유한 정체성, 스스로 세우고 숙성시킨 높은 기준,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전통과의 연결을 통해 자신만의 독보적인 가치를 만들어간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는 비단 브랜드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삶 또한 남들과 비교하며 조급해하기보다 자신만의 색깔과 기준으로 채워나가며 고유한 이야기를 써 내려갈 때 더욱 풍요롭고 단단해지지 않을까요? 외부의 기준이 아닌 내 안의 '최상급'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것이 어쩌면 럭셔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럭셔리한' 삶의 태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담은 순간들'에서는 앞으로도 럭셔리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우리 삶의 가치를 더해줄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꾸준히 담아갈 예정입니다. 당신이 추구하는 '최상급'의 가치는 무엇인가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것도 언제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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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는 비교하지 않는다 ('The Luxury Strategy' #1)
<The Luxury Strategy>를 통해 '럭셔리는 비교급이 아닌 최상급'이라는 명제를 파헤칩니다. 럭셔리가 어떻게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를 만드는지 탐구합니다. 외부의 시선이 아닌 내 안의 '최상급'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에 대한 영감을 얻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