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챗봇은 이제 단 한 명의 청중, 바로 당신만을 위해 만든 피자 한 조각을 내놓을 준비가 돼 있다.”
기사 요약
여행 정보를 얻는 방식이 가이드북에서 리뷰 플랫폼으로, 다시 TikTok과 AI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AI도 TikTok처럼 사람들을 똑같은 장소로 몰고 갈 것 같지만, 기사는 반대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AI는 사용자의 취향과 과거 맥락을 반영해 사람마다 다른 여행을 추천할 수 있습니다. 대중에게 가장 좋은 곳이 아닌, 한 사람에게 가장 맞는 곳을 추천하는 거죠.
담은순간들 생각
AI가 사람마다 다른 답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로웠지만, 개인화가 늘 좋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필터버블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나에게 맞는 것”을 잘 찾아주는 능력 때문에 역설적으로 “제가 아직 좋아하는지조차 모르는 것”을 만날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AI가 제가 현대미술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해볼게요. 현대미술 공간을 추천하고, 제가 만족하면 다음에도 현대미술을 추천합니다. 그러면 AI는 제가 현대미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되고, 저는 다시 그 안에서 만족합니다.
추천은 정확해지는데, 저는 조금씩 좁아집니다. 사람마다 다른 곳을 추천할 수 있어도, 제게는 매번 ‘나다운 것’만 반복될 수 있는 거예요.
개인화라는 말을 수요자 쪽에만 가두지 않고, 공급자가 자기 취향과 안목으로 세계를 큐레이션하는 방식까지 확장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언젠가 읽은 이코노미스트의 「Why travel guidebooks are not going anywhere」에서는 여행 가이드북의 차별성은 더 이상 모든 정보를 빠짐없이 담는 데 있지 않고, 진정성과 큐레이션에 있다고 했습니다. 정보가 넘칠수록 오랜 시간 쌓인 신뢰와 브랜드의 안목이 중요해진다는 거죠.
AI가 제공하는 건 수요자 쪽의 개인화입니다.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제게 맞는 여행지와 피자집을 골라주는 거죠. 큐레이션은 공급자 쪽의 개인화로도 볼 수 있습니다. Lonely Planet이나 제가 좋아하는 Monocle은 편집자들의 취향과 안목을 통과한 세계를 독자에게 건넵니다. 저는 그들이 고른 세계를 믿고, 제 취향 바깥을 바라보게 됩니다.
AI는 우리 모두를 같은 장소에서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각자를 자기 취향 안에 가둘 수도 있습니다. 반면 편집자의 안목은 낯선 세계로 독자를 초대해 독자의 취향을 넓혀줄 수 있습니다.
요즘 제 마음은 이미 좋아하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데서, 제가 아직 좋아하는지조차 모르는 것을 만나는 쪽으로 향합니다. 제 취향 바깥으로 일부러 한 걸음 나가보는 탐색(exploration)을 남겨두고 싶은 거죠.
독서모임을 하는 이유도 비슷한 것 같아요. 제가 혼자라면 고르지 않았을 책을 만나기도 하고, 같은 책을 전혀 다르게 읽어낸 사람의 해석을 만나기도 하니까요. 제 취향에 맞는 것을 골라주는 알고리즘과는 다른 방식으로, 독서모임은 제 안에 다른 입력을 넣는 아날로그적 알고리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추천은 제 취향을 정확히 맞히는 일일까요. 제 취향 바깥까지 데려가는 일일까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본래 '진흙'이나 '음식물 쓰레기' 등을 뜻하던 이 단어는, 이제 "인공지능(AI)이 쏟아내는 질 낮은, 영혼 없는 결과물"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검색 엔진 상단을 차지한 그럴듯하지만 알맹이 없는 게시글, 소셜 미디어를 뒤덮는 출처 불명의 영상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당신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당신은 그것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이제 이 '슬롭(Slop)'의 바다를 항해해야 합니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정작 '진짜'를 가려내는 일은 점점 더 고단해집니다. 무엇을 등대 삼아 나아가야 할까요?
1. What에서 Who의 시대로
오랫동안 우리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믿어왔습니다. 시각 정보는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음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였습니다. 하지만 생성형 AI의 등장은 이 믿음에 근본적인 균열을 냈습니다.
이제 우리는 눈앞의 이미지나 오디오가 더 이상 '실재의 증거'가 될 수 없음을 배웁니다. 이미지와 영상 모두 AI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세상에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오랜 믿음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온라인 콘텐츠는 더 이상 그 자체로 진실을 담보하지 못합니다.
"온라인 콘텐츠는 더 이상 스스로 그 진위를 입증할 수 없으므로, '무엇(What)'이 게시되었는가보다 '누가(Who)' 게시했는지가 중요해질 것이다. 평판(reputation)과 출처(provenance)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질 것이다."
AI 생성 콘텐츠의 범람은 '신뢰'의 가치를 높이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누가 말하느냐가 중요해진 지금, 검증된 계정 등 신뢰할 수 있는 소스를 통한 신원 확인과 평판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가치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SNS에서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 사진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먼저 의심하게 됩니다. "이거 AI가 만든 가짜 아닐까?" 그러다 그 계정이 '내셔널지오그래픽' 공식 계정임을 확인하는 순간, 비로소 안도하며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콘텐츠의 화려함이 아니라, 그것을 게시한 주체의 '평판'과 '출처'가 감동의 전제 조건이 된 것입니다. 신뢰가 흐릿해질수록 '진짜'를 찾아 헤매는 피로감은 깊어지고, '신뢰'라는 자산의 가치는 그 무엇보다 귀해집니다.
2. '신뢰'라는 이름의 해자(Moat)
기업들은 이미 '생성형 엔진 최적화(GEO, Generative Engine Optimization)' 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챗봇이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에 유리한 정보를 쏟아내도록 유도하는 기술입니다. 누군가의 의도대로 조작된 정보가 AI의 입을 빌려 '객관적 사실'인 양 전달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의 역할이 재조명됩니다. 이코노미스트나 뉴욕타임스 등 레거시 미디어가 오랜 시간 쌓아온 정통성과 신뢰야말로, AI 시대에 강력한 해자(Moat)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AI 모델과 달리 '책임의 주체(Accountability)'가 명확합니다. 오보를 내거나 신뢰를 잃으면 그 오랜 시간 쌓아온 평판이라는 자산에 치명상을 입습니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브랜드를 건 '스킨 인 더 게임(Skin in the game)'의 구조 속에 있습니다.
우리가 지불하는 유료 구독료의 의미도 달라집니다. 과거의 구독료가 단순히 콘텐츠를 보는 대가였다면, 이제는 "AI가 생성한 무책임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책임을 지는 주체가 검증한 정보를 얻는 비용"이 됩니다. 비용을 치르더라도 '책임 소재가 분명한 진짜'를 보겠다는 인식은 머지않아 새로운 상식이 될 것입니다.
3. '비효율'이 주는 신뢰
생물학에는 '신호 효과(Signaling Effect)'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수컷 공작의 화려하고 무거운 꼬리가 대표적입니다. 생존에 불리할 만큼 거추장스러운 꼬리는 역설적으로 "나는 이 정도의 무거운 비용을 감당하고도 살아남을 만큼 건강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가짜가 흉내 낼 수 없는 '비용이 드는 신호(Costly Signal)'가 됩니다.
AI가 만든 콘텐츠(Slop)는 생성 비용이 '0'에 수렴합니다. 누구나 1초 만에 그럴듯한 글과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는 행위가 강력한 신뢰의 신호가 됩니다. (The Economist)
종이 신문·잡지, 물성을 가진 책은 만드는 데 막대한 시간과 자본이 듭니다. 물리적 실체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편집, 감수, 제작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클릭 한 번으로 생성하고 삭제할 수 있는 디지털 데이터와 달리, 한 번 인쇄되면 돌이킬 수 없다는 무거운 리스크와 투입된 비용이 콘텐츠를 함부로 내놓기 어렵게 하는 필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특정 매체나 신뢰하는 사람의 안목에 기꺼이 마음을 여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섞어 1초 만에 가장 '평균적인 답'을 내놓습니다. 반면, 어떤 이의 탁월한 안목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긴 세월이라는 '막대한 시간 비용'을 지불하고서야 비로소 얻어지는 결과물입니다.
우리는 그들로부터 단순한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소음 속에서 가치 있는 것을 선별해낸 '큐레이션', 그리고 그 이름이 보증하는 단단한 '신뢰'와 '브랜드'의 가치를 향유하는 것입니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글씨, 한 장 한 장 넘기는 종이 매체. 이런 아날로그적 방식과 큐레이션에는 시간과 수고가 듭니다. 가짜가 판치는 세상에서는 그 수고가 "나는 가짜가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4. 슬롭(Slop) 속에서 항해하는 법
슬롭(Slop)의 범람은 우리를 피로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무엇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인지 선명하게 비춰줍니다. 소음이 커질수록 안목은 더욱 중요해지고, 가짜가 판칠수록 검증된 신뢰라는 자산은 더욱 귀해집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닙니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알아보는 안목을 기르는 일입니다. 지난 글(소음 너머 '진짜'를 보는 눈)에서 다루었듯, 꾸준히 양질의 큐레이션을 접하고 아날로그적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는 과정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소음 너머의 진실을 알아볼 수 있는 해상도 높은 눈을 갖는 것. 슬롭(Slop)의 바다를 건너는 단단한 무기가 되어줄 것입니다.
정보의 양이 질을 압도하는 시대, 인공지능(AI)이 생성하는 방대한 콘텐츠의 파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을 식별할 수 있을까요? AI는 대개 최고의 자료보다는 자주 논의되거나 쉽게 접근 가능한 정보를 우선시하며, 방대한 빅데이터를 학습시킨 대규모 언어 모델(LLM)은 그럴듯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다루지 못한 채 피상적인 답변을 내놓곤 합니다. 그 '그럴듯함'은 때로 더 큰 혼란을 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실은 피상적인 이해를 넘어,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안목'의 중요성을 깨닫게 합니다. 이런 안목은 단순히 많은 데이터를 접하는 것만으로는 길러지지 않습니다. 꾸준히 '양질의 것들'을 의식적으로 접하고, 깊이 있게 소화하는 과정을 통해 연마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정보 과잉의 시대에 어떻게 하면 이러한 '안목'을 기르고,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주체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그 여정을 탐색하고자 합니다.
AI와 빅데이터의 그럴듯함, 그 이면의 함정
인공지능은 기존의 널리 알려진 방대한 정보를 신속하게 처리하고 요약하는 데에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AI가 활용하는 정보의 '질'까지 무조건 신뢰하기는 어렵습니다. 양질의 자료보다는 온라인상에서 자주 논의되거나 쉽게 접근 가능한 자료를 우선적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정제되고 검증된 내용을 담고 있는 유료 구독이 필요하거나 특정 데이터베이스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고급 정보보다는, 대중적인 뉴스 기사나 블로그 게시물처럼 즉각적으로 확보 가능한 출처를 참고하는 것이죠. 이는 결과적으로 정보의 편향이나 피상적인 분석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진정한 통찰과는 거리가 먼 결론에 도달하게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빅데이터'에 대한 맹신 역시 경계해야 할 지점입니다. 단순히 데이터의 양이 많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질 높은 분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실제로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의미 있는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과정입니다. 언젠가 대규모 언어 모델(LLM)에 부동산 빅데이터를 투입하여 분석을 시도해본 경험이 있는데요, 결과물은 표면적으로는 매우 그럴듯해 보였지만, 현실의 복잡성과 미묘한 맥락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럴듯하게 포장된 내용이 더 큰 오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에 섬뜩함마저 들었습니다. 그럴듯함에 속지 않고 그 속에서 진주를 골라낼 수 있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입니다.
'진짜'를 알아보는 힘: 양질의 자극에 대한 의식적인 노출
그렇다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해야 그럴듯함에 현혹되지 않고 본질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을까요? 그 시작은 '다양한 양질의 자극에 대한 의식적인 노출(exposure)'에 있습니다. 단순히 정보를 많이 접하는 것을 넘어, 어떤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만나느냐가 우리의 감각과 지성을 단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감각이나 지성이 퇴화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양한 양질의 자극에 상시로 노출되어 있어야 합니다. 물론 혼자 책을 읽어도, 그 책의 내용이 어느 정도 자신에게 자극을 줍니다. 그러나 자극은 다양할수록 좋겠지요. 독서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전시, 답사, 강연에 참여하는 일, 그리고 좋은 자극을 줄 수 있는 사람과의 만남이 필요합니다. 퇴화하지 않기 위해서는 양질의 자극 속에 자신을 놓아두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안목은 일종의 근육과 같아서, 꾸준히 양질의 자극을 통해 단련하지 않으면 그 기능이 저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대신 적극적으로 양질의 경험을 찾아 나서고 다양한 자극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주체적인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알고리즘의 유혹: 보이지 않는 손에 흔들리는 선택
하지만 이렇게 의식적으로 다양한 양질의 자극에 자신을 노출하려는 노력은 오늘날 강력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리 일상을 깊숙이 파고든 알고리즘 때문입니다. SNS 피드, 쇼핑몰의 추천 상품,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알고리즘은 일상에서 끊임없이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편리함을 제공하는 동시에 알고리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생각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거나 제한함으로써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빼앗고, 결과적으로 취향의 단순화·몰개성화·획일화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뉴요커(The New Yorker)의 한 기사는 이러한 '알고리즘 불안(Algorithmic Anxiety)' 현상을 심층적으로 다룹니다.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스스로 충분히 생각하고 판단할 시간을 갖기 전에 원하는 것을 예측하고 추천합니다. 알고리즘의 추천에 끊임없이 노출되면서 우리가 선택한 것이 과연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알고리즘이 우리에게 원하도록 교묘하게 만드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디지털 홍수 속 나만의 안식처: 양질의 큐레이션과 종이 잡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알고리즘의 보이지 않는 손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양질의 정보를 선택하고, 소셜 미디어 피드 바깥에서 자신만의 취향을 탐구할 수 있을까요? 그 핵심은 '양질의 큐레이션'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데 있습니다.편집자의 깊이 있는 안목과 철학이 담긴 콘텐츠는 알고리즘이 제공하기 어려운 다채로운 자극과 깊이 있는 관점을 선사합니다. 이러한 양질의 큐레이션의 대표적인 예 중 하나가 바로 '잡지', 특히 '종이 잡지'입니다.
종이 잡지가 지닌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다양한 콘텐츠와 우연히 마주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알고리즘에 기반한 온라인 환경에서는 자신의 관심사를 벗어나는 정보를 만나기 어렵지만, 종이 잡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주제나 이미지와 연이 닿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특히 지금은 검색어조차 떠올리기 어려운 머나먼 과거의 콘텐츠나 분위기를 접하는 데에는 종이 잡지만큼 좋은 매체도 드뭅니다. 저 역시 작업을 위한 레퍼런스를 찾을 때 종이 잡지를 많이 활용하곤 합니다. 특별한 목적 없이 죽 훑어보다가 아이디어나 작업의 방향과 연결될 만한 이미지를 발견하면 스크랩하여 아이디어 보드를 만들곤 했는데요, 이러한 과정 자체가 알고리즘의 추천과는 다른 즐거움과 자극을 주었습니다.
시대의 거울, 문화의 기록: 한 시대를 대표한 잡지의 힘
종이 잡지가 지닌 이러한 발견의 즐거움과 자극은, 잡지가 한 시대의 문화와 지성을 깊이 있게 담아낸 '양질의 큐레이션'의 정수일 때 더욱 커집니다. 저는 2년 전 주말마다 국립중앙도서관을 찾아 GQ 국내판을 정주행했는데요, '종이 잡지'를 주제로 다룬 잡지(어반라이크 34호)에서 여러 전문가들이 GQ 초기판에 보낸 뜨거운 찬사가 계기가 되었습니다.
“패션을 비롯, 문화 전반에 걸친 강렬한 콘텐츠로 대한민국 잡지 저널리즘의 잊혀지지 않는 순간들을 기록했다”
"GQ 초기 에디션, 창간호부터 2~3년 정도를 좋아한다. 당시 GQ가 쏟아냈던 콘텐츠는 그야말로 폭격이었다. 당시 에디터들(이충걸, 문일완, 송원석, 정석헌, 장우철)이 썼던 기사는 지금 봐도 훌륭하다. 도발적인 아젠다를 던지는 데 주저함이 없었고, 같은 사안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매체였다. 잡지가 뭘 해야 하는지, 잡지의 갈 길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줬다”
그 시절의 GQ를 읽으며 이 코멘트들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잡지가 시대를 대표하는 매체'였던 2000년대 초반, GQ는 주제 선정·필진의 역량· 섭외력 등 모든 면에서 그야말로 끝판왕이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잡지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아 그 시대적 소명은 다했을지언정, 그 정신성은 여전히 영원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양질의큐레이션이 담긴 종이 매체를 통해, 평소 제 관심 분야가 아니었거나 온라인이었다면 무심코 지나쳤을 법한 깊이 있는 콘텐츠들을 접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자극과 영감을 얻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추후 담은순간들에 과거 잡지에서 받은 영감도 다룰 예정입니다.)
오래된 미래: 낡은 잡지에서 발견하는 시간의 지혜
발행된 지 시간이 꽤 흐른 잡지에서는 현재의 일회성 리뷰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독특한 관점이 담겨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순히 최신 정보가 아니라는 이유로 멀리하기에는 그 안에 담긴 시대의 고민과 지혜,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발견의 즐거움이 너무나 큽니다.
10년도 더 된 '매거진 B' 에이솝 편(2013년 발행, 당시 브랜드명은 이솝이 아니라 '에이솝'이었습니다!)을 다시 펼쳐보며, 지금은 글로벌 브랜드가 된 이솝의 초기 철학과 당시의 시대상을 느끼며 남다른 감회에 젖기도 했습니다. 또 50년 가까이 된, 우리나라 모든 잡지의 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뿌리 깊은 나무'를 들춰보며 이 시대에 느끼기 힘든 정신성과 깊이에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오래된 잡지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잘 보존된 '타임캡슐'로서, 현재의 획일화된 시각에서 벗어나 세상을 보다 다채롭고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는 예상치 못한 창을 열어줍니다.
동시대를 보는 눈: 동시대 잡지의 역할과 가치
과거의 잡지들이 시간의 깊이를 통해 빛나는 통찰을 제공한다면, 동시대와 발맞추며 현재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 곁의 양질의 잡지들에도 꾸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과거의 지혜와 동시대의 흐름이 균형 있게 만날 때 비로소 세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깊이 있는 시각과 신뢰할 만한 정보를 꾸준히 제공하는 동시대의 잡지를 주체적으로 선택하여 꾸준히 보아야 합니다. (저는 정밀한 팩트에 기반하여 특유의 사고방식으로 국제 정세를 짚는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비즈니스·문화·디자인에 대한 독창적인 시선을 제시하는 '모노클(Monocle)'을 꾸준히 구독하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며 안목 있는 편집자의 철학이 담긴 양질의 큐레이션을 꾸준히 접하는 습관은, 단편적인 정보의 파편을 넘어 세상을 읽는 자신만의 프레임을 구축하고 깊이 있는 안목을 기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나만의 리듬 찾기: 디지털을 넘어 '아날로그적 알고리즘'으로
의식적으로 양질의 잡지를 찾아 읽는 행위는 단순히 정보를 얻는 것을 넘어, 디지털 시대의 정보 소비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우리를 자연스럽게 '아날로그적 경험'의 가치로 이끌기도 합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잔카를로 발레(Giancarlo Valle)는 프로젝트에서 실제가 축소된 모형을 중요하게 활용하는데요, '모노클(Monocle)'과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접근이 "인터넷 알고리즘에 대한 우리 스튜디오의 해독제"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었고 모두가 같은 것을 봅니다. 자신만의 아날로그적 알고리즘(analogue algorithm)을 만들지 않는 한 그 순환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습니다."
그의 지적처럼, 디지털 콘텐츠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만의 아날로그적 알고리즘은 의도적으로 다른 리듬과 질감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되어줍니다. 목적 없이 산책하며 마음 가는 대로 향하기, 목적 없이 서점을 거닐며 우연히 발견한 책을 들춰보는 것, 하루 중 특정 시간만이라도 의도적으로 디지털 기기를 멀리하고 주변을 관찰하거나 사색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제니퍼 이건(Jennifer Egan) 역시 한 인터뷰에서 이러한 아날로그적 접근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이나 옥스포드 영어 사전 같은 전통적인 레퍼런스를 여전히 활용하는데요, 물리적인 실체가 있는 자료가 주는 힘을 신뢰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모든 정보에 즉시 접근할 수 있는 디지털 방식으로는 따라올 수 없는 깊이가 있다는 것이죠. 이러한 생각은 새롭게 알게 된 단어를 컴퓨터 파일이 아닌 손으로 직접 노트에 정리하는 그녀의 오랜 습관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이처럼 그녀에게 물리적 실체가 있는 책과 손으로 기록하는 행위는, 디지털의 무한한 접근성만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생산성과 사유의 깊이를 가져다주며,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정보를 체화하는 '아날로그적 알고리즘'의 좋은 예입니다.
우연한 발견과 '공예적 즐거움'
제니퍼 이건이 언급한 물리적 매체와의 깊이 있는 상호작용은, 종이 매체가 선사하는 또 다른 중요한 가치, '예상치 못한 발견의 즐거움'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과거의 신문이나 잡지에는 편집자의 고뇌와 안목이 담긴 야심 찬 기획이나 실력 있는 필자의 깊이 있는 칼럼이 지면을 채웠습니다. 독자들은 설령 그 기사를 읽으려고 산 것이 아닐지라도, 이왕 샀으니 아까워서라도 한번은 읽게 되고, 예상외로 새로운 영감을 얻어 또 다른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이러한 '예상 밖의 콘텐츠 소비'는 종종 효율성과 '가성비'라는 잣대에 밀려 무용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우연한 만남과 어떻게 보면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과정 속에 창의성과 다채로운 사유가 싹트는 토양이 마련됩니다.
종이 매체를 한 장 한 장 넘기고, 마음에 드는 문장에 밑줄을 긋고, 여백에 짧은 생각을 메모하는 그 모든 아날로그적 행위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것을 넘어, 자신만의 의미를 능동적으로 구성해 나가는 과정이며, 여기에는 디지털이 제공하기 어려운 '공예적 즐거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스스로 정보를 탐색하고, 선택하고, 관계 맺는 주체적인 과정에서 오는 만족감.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스포티파이와 같은 플랫폼이 아무리 정교한 알고리즘으로 개인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한다 해도, 때로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이 있음에도 공허하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러한 '공예적 즐거움'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자신만의 손길과 노력을 거쳐 의미를 쌓아 올리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발견과 연결되는 기쁨이야말로 알고리즘의 효율성을 넘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깊이 있는 경험이 아닐까요.
정보의 파도 속, 나를 지키는 주체적인 삶
우리는 정보의 양이 그 어느 때보다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알고리즘이 보이지 않는 손처럼 우리의 일상과 생각에 깊숙이 관여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관점을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세상을 명료하게 바라보며 자신만의 생각과 취향을 가꾸어 나가는 여정은 우리 자신의 주체적인 선택과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알고리즘의 추천에 수동적으로 따르기보다 때로는 불편함과 비효율을 감수하더라도 스스로 찾아 나서고, 예상치 못한 만남을 즐기며, 자신만의 속도로 정보를 음미하고 내면화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능동적인 자세야말로 알고리즘과 AI가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 자신을 지키고, 진정으로 충만한 생활을 누리는 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