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우리 일상 깊숙이 스며들고 있는 요즘, 그 눈부신 발전에 감탄하면서도 문득 질문하게 됩니다. 'AI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시대에, 과연 우리 인간에게 고유하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생성형 AI가 처음 나왔을 때부터 이 물음은 저의 화두였는데요, <담은순간들>에 그 질문에 대한 고민의 과정을 담고자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생각하는 힘'에 주목하여, 삶의 '근본적인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사유, '글쓰기 과정' 속에서 생각을 벼리고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의 중요성을 살펴볼 것입니다. 단순한 지식의 나열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시계공'으로서의 인간의 창조적 역할에 대해서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편리함의 유혹 앞에서: AI 시대, 놓치지 말아야 할 본질적 질문들
AI는 우리 시대 가장 혁신적인 기술 중 하나로 여겨지며, 많은 이들이 그 가능성에 열광합니다. 때로는 "AI만 도입하면 골치 아픈 문제도 단번에 해결될 거야!" 와 같은 성급한 환상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 만능주의적 시각은 AI의 편리함에 기대어 정작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본질적인 질문들을 간과하게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AI가 추천하는 알고리즘이나 자동 생성된 콘텐츠에만 의존하게 된다면, 삶의 소중한 경험을 스스로 포착하고 그 의미를 곱씹으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서사와 가치관을 쌓아가는 경험,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근본적인 사유의 과정을 소홀히 할 위험이 있습니다. '내 삶에서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은 AI의 편리함이 대신 던져줄 수도 답해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AI가 가져다주는 효율성과 편리함이 인간 고유의 '고민하는 힘'을 약화시키거나, 그러한 고민의 시간을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AI가 발전할수록 더욱 의식적으로 사색의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때로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산책을 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떠오르는 단상들을 꾸준히 메모하며, 생각을 다듬어 글로 표현하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고 창의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AI 시대에 이러한 근본적인 고민을 위한 시간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야 합니다.
2. 종이 위의 사유
쓰면서 깊어지고
앞서 AI 시대에 '근본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는데요, 이러한 사유를 더욱 깊고 명확하게 발전시키는 핵심적인 과정 중 하나가 글쓰기입니다. 흔히 글쓰기를 생각을 정리해서 내놓는 결과물 정도로 여기기 쉽지만, 어쩌면 글쓰기의 진짜 가치는 완성된 텍스트 너머, 쓰는 과정 속에서 치열하게 전개되는 '사고의 확장과 심화'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실리콘밸리의 유명 투자자 폴 그레이엄(Paul Graham)은 이 지점을 날카롭게 파고듭니다. 그는 "글쓰기는 사고다(Writing is thinking)"라고 단언하며, AI가 글쓰기를 대신해줌으로써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는 바보'로 만들 위험을 강력히 경고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서만 할 수 있는 종류의 사고가 있다"고 역설하며, 글쓰기라는 핵심적인 사고 과정을 AI라는 조교에게 송두리째 외주를 주어 '지적인 지름길'을 택하는 순간,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꿰뚫거나 최고의 아이디어를 발견할 결정적인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게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우려는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의 사례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회사 GitClear의 보고서에 따르면, 프로그래머들이 AI를 사용해 코드 초안을 작성했을 때, 결과적으로는 버그를 수정하고 코드를 검토 및 편집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경우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는 AI가 생산량 자체는 늘릴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의 깊은 이해와 섬세한 판단이 생략될 경우 결과물의 질은 오히려 저하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AI가 순식간에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낼 수는 있겠지만, 그 안에 담겨야 할 필자 고유의 고민과 논리 그리고 창의적인 발상은 결코 AI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오롯이 쓰는 과정에서의 '생각하는 힘'을 통해서만 길러지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나를 만나다
글쓰기는 단순히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때로는 자기 자신을 가장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정직하게 써내려간 글 속에는 스스로도 미처 알지 못했던 내면의 모습, 가치관, 심지어 무의식적인 패턴까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쓴 글이 AI의 코멘트를 통해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해석되는 경험은 놀랍습니다. 한번은 스스로 꽤 만족했던 글에 대해 지인이 GPT 프로 모델을 통해 얻은 피드백을 전해주었는데, 단순한 글의 평가를 넘어 '저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스스로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근본적인 통찰이 담겨 있어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AI의 이러한 분석 능력은 분명 강력한 도구임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지점은 명확합니다. 바로 그 모든 분석과 성찰의 출발점이 되는 '글'은 반드시 우리 자신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AI가 아무리 뛰어난 분석을 제공한다 한들, 그 분석의 대상이 되는 진솔한 자기 기록, 즉 '나의 이야기'를 AI가 대신 써줄 수는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삶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고민하며 글로 풀어내는 과정이 선행되어야만 비로소 AI를 통한 깊이 있는 자기 이해의 가능성도 열리는 것입니다. 자신만의 생각과 경험을 담아 글을 쓰는 행위야말로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창조이자 자기 발견의 첫걸음입니다.
3. 인간,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시계공
AI는 기존에 존재하는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지식을 요약하고 설명하는 작업에 있어서는 이미 놀라운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기존 이론에 대해서는 교과서에 들어가도 손색없을 만한 정확한 설명을 제공하며 우리를 감탄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물이 겉으로는 매우 그럴듯해 보일지라도, 때로는 전체적인 맥락이나 핵심적인 인과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결여된 채 피상적인 정보의 나열에 그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마치 정교한 시계의 각 부품을 상세히 열거할 수는 있지만, 정작 그 시계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없거나 이미 존재하는 설계도를 단순히 모방하여 전달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AI가 때때로 보여주는 '그럴듯함의 함정'이죠.
단순히 많은 정보를 알고 나열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고 독창적인 체계를 구축하는 ‘시계공(Clockmaker)’의 역할은 여전히 인간의 고유한 영역으로 남아있습니다. 진정한 창조와 발전은 단순히 정보의 양이 많다고 해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흩어진 지식들을 명확한 기준으로 분류하고 연결하여 잘 짜인 ‘디렉토리 구조’로 체계화했을 때 비로소 새로운 통찰로 뻗어나가며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됩니다. 이렇게 구조화된 이해를 바탕으로 본질을 꿰뚫고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며 이전에는 없던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 ‘시계공’이 하는 일입니다.
AI라는 양날의 검
AI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기존의 방대한 지식을 이해하며, 일상의 많은 부분을 자동화하는 데 훌륭한 조력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AI 시대에도 인간 고유의 영역이 존재합니다. 피상적인 정보의 습득을 넘어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깊이 있는 사유, 기존의 것을 단순히 모방하거나 설명하는 것을 넘어 세상에 없던 새로운 개념과 체계를 창조해내는 '시계공'과 같은 창조적 지성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입니다.
AI의 편리함에만 전적으로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 AI가 명확한 강점을 보이는 영역을 정확히 인지하고, 그 부분에서 AI를 지혜로운 도구로 활용해야 합니다. 그렇게 확보된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는 오롯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근본적인 사유와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일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글쓰기를 통해 생각을 벼리며 자신만의 관점을 세우고, 세상에 없던 가치를 설계하고 만들어내는 일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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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갈대, 창조하는 시계공('AI가 대체할 수 없는 것' #1)
AI가 모든 것을 대신할 수 있을까요? 깊이 사유하고, 글로써 나를 발견하며,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시계공과 같은 우리 안의 힘을 탐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