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취약함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
낙선한 작품까지 전시장에 내놓은 건축가.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그 이유를 듣고 가슴이 떨렸습니다. 제가 택한 길이 맞는지 고민하던 때, 안도 다다오의 전시에서 만난 용기에 관한 기록입니다.
담은순간들 소개글에 취약함을 드러내면서도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에게 위로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2023년 봄 뮤지엄산에서 본 안도 다다오의 낙선작도 그런 기억 중 하나입니다.
당시의 글에는 전시에서 느낀 것과 함께, 일을 하느라 좋아하던 독서모임을 그만둔 아쉬움과 그 뒤에 만난 인연들이 담겨 있습니다. 제가 택한 길이 맞는지 고민하면서도 그 길을 좋은 선택으로 만들어가고 싶었던 마음까지요. 그날의 기록을 이곳에도 옮겨둡니다.

1.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열정을 말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한 정신이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는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 - 사무엘 울만
청춘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닌 마음가짐.
어찌보면 진부할 수도 있는 메시지이지만,
뮤지엄산에서 개관 10주년을 맞이하여 열리고 있는 안도 다다오 기획전은
안도 다다오가 말하는 청춘의 메시지를
실로 아름답게 전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안도가 공모전에 출품했다
낙선한 작품들도 전시가 되어 있다.
처음 볼 때는 왜 이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을까 의문이 들었는데,
오후 도슨트를 진행하신 박소은 대표님의 설명을 듣고서 가슴이 떨렸다.
"건축가가 어떻게 보면 어디 이력서 넣었다가
떨어진 거를 전시하는 거거든요.
그런 이유는 실패하는 것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거고
그런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 같은 게
나의 마음이고 그게 청춘이다.
그리고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청사과다"
자신의 어떤 취약함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
깊은 울림을 준 윤혜정 국제갤러리 디렉터의 글이 떠오른다.
윤혜정 디렉터는 저서 <인생, 예술>에서
양혜규의 작품 창고 피스를 언급하며
'취약함을 드러내는 용기'에 대해 말한다.
작품을 보관할 장소가 없는 상황에서
양혜규는 전시장에라도 보관하고자 하는 마음에
폐기 처분 직전의 작품들을 포장상태 그대로 모아
팔레트 위에 쌓아두고 작품이라 명명한다.
자신의 어떤 취약함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
그럼으로써 "당면한 현실을 예술적 경험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용기.
안도 다다오의 전시에 출품된 낙선작에서도,
양혜규의 작품에서도 이런 용기가 느껴졌다.
"‘용기 없음’은 불확실성과 위험, 실패의 취약함과 그 가능성이 깨끗이 제거된 '기형적인 용기'를 바라면서 생긴 부작용"이며,
"용기 courage의 어원은 ‘심장’이라는 뜻의 라틴어 cor,
즉 ‘내가 누구인지 진심을 다해 이야기한다’는 의미라고 하던데,
이것이 비단 예술가만을 위한 전언은 아닌 것"이라는
윤혜정 디렉터의 문장을 가슴으로 느낀 시간이었다.
2.
뚜벅이에게는 멀고도 멀게만 느껴졌던
뮤지엄산을 마침내 방문했다.
소중한 인연 덕분에.
5개월 전 스토리에 어떤 기록을 남겼다.
내 삶에 큰 비중을 차지하던 독서모임을
직장 업무 때문에 그만두게 된 상황,
비록 내 의지에 따른 선택은 아니었지만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아쉬움이 없도록 만들기를
간절히 바랐나보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별을 포기하고 우주를 얻었다.
업무상 만난 분들 모두 문화예술에 조예가 깊으셔서
가까워지게 됐다.
뮤지엄산에서 도슨트로 활동하는 분도 계셨는데
마침 뮤지엄산에는 안도 다다오의 기획전도 열리고 있기에,
우리는 자연스레 뮤지엄산으로 향했다.
멀게만 느껴졌던 뮤지엄산을 방문한 것도,
박소은 대표님의 도슨트를 들으면서 청춘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된 것도
모두 별을 포기한 덕분이다.
"별을 포기하면 우주를 얻게 될테니까"라는
내가 무척 아끼는 문장을 가슴으로 느낀 날.
이로써 나는 집착으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지게 됐다.
3.
공교롭게도 오늘은 입사 3년째되는 날이다.
2020년 4월 29일 입사 이후
내가 선택한 길이 맞는지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에 겨운 날들도 많았는데,
입사 3주년을 사회생활을 하며
소중한 인연이 닿은 분들과
아름다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나는 애틋함이 많은 사람인지라
내가 행한 선택이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자주 한다.
언제까지 이 길을 걸을지는 모르겠지만,
걷는 동안은 내가 택한 길이
좋은 선택이 되도록 늘 애쓰고 싶다.
이 조직에서 경험해볼 수 있는 건 다 경험해보고 싶다.
이 경험들로 뿌린 씨앗들이
훗날 어떤 형태로든 아름답게 피어나리라 믿는다.
내 길 앞에 펼쳐질 풍경들에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