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낯선 것을 만나면 본능적으로 익숙한 이름을 붙이려 합니다. 새로운 무언가가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그 낯섦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아는 것에 빗대는 일입니다. "이건 결국 예전 ~~의 발전된 버전이지", "요즘 유행하는 ~~ 같은 거지."

그 순간, 낯선 것은 이해 가능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아주 많은 가능성들이 함께 사라집니다.

어쩌면 AI에게도 우리는 지금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최근 와튼 스쿨의 교수 에단 몰릭(Ethan Mollick)이 이코노미스트지에 기고한 글을 읽으며 그런 질문이 들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기술을 단순한 소프트웨어 배포로 취급하는 것은, 마치 신비한 외계 유물을 발견하고도 그것을 즉시 책상 위 장식품으로 써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전례 없이 강력한 무언가가 도착했는데, 우리는 그걸 책상 한 켠의 장식품으로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1. 상상력이 납작해지는 순간

몰릭은 'de-weirding'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기묘함을 지워내는 일' 정도가 될까요. 낯설고 정체불명인 것을 낯익은 범주에 끼워 맞춰, 안전하고 다룰 수 있는 무언가로 바꾸는 것. 그는 그것이 AI 앞에서 우리가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라고 말합니다.

"AI를 사용하기 쉽게 만들고 익숙한 도구나 작업 흐름에 통합하는 것은 현명한 공학적 접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매끄러운 인터페이스로 인해 이 기술이 가진 가능성에 대한 이해까지도 단순화해버리는 데 있습니다."

매끄러운 인터페이스는 사용을 쉽게 만듭니다. 그런데 동시에 그 기술로 무엇을 상상할 수 있는지까지 납작하게 만듭니다. AI를 '더 똑똑한 구글'이나 '더 빠른 워드'로 대하는 순간, 우리는 구글이나 워드로 할 수 있는 상상 안에 갇힙니다.

몰릭은 그 결과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회의록 필사, 수십 장의 메모, 끝없이 쏟아지는 파워포인트. 없던 가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래 하던 일을 더 많이 하기 위해 AI를 쓰는 것. 그는 이것을 '워크슬롭(workslop)', 말하자면 작업 쓰레기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요즘 스레드(Threads)를 열면 이런 게시물들이 타임라인을 채웁니다. "AI로 하루에 인스타 피드 50개 만드는 법", "ChatGPT로 블로그 글 100편 양산하는 프롬프트." 화려한 섬네일과 자신감 넘치는 문장들. 처음 몇 초간 "오, 멋진데" 하고 혹합니다. 그런데 몇 초가 더 지나면 어김없이 현타가 찾아옵니다.

무엇이 남는 거지.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빨리 만들어내는 것. 그 화려한 방법론들은 결국 몰릭이 말한 '워크슬롭' 생산법의 세련된 포장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 강력한 기술을 손에 쥐고, 그것으로 쓰레기를 더 빨리 만드는 법에 열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곤 합니다.


2. 부지런한 지능에 감탄하지 말라

송길영 작가의 <시대예보 — 경량문명의 탄생>에는 제가 자주 되새기는 구분이 있습니다. 지능에도 두 종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부지런한 지능'은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일을 대신 해줍니다. 원래 하려면 할 수는 있는데, 너무 오래 걸리고 손이 많이 가서 엄두가 안 나던 일들이요. 효율의 영역입니다.

'거대한 지능'은 좀 다릅니다. 인간이 애초에 할 수 없었던 일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볼 수 없었던 규모를 보여주고, 우리가 닿을 수 없었던 패턴을 찾아냅니다. 초월의 영역입니다.

송길영 작가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하기 힘든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잘 고민하고 찾는 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오는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 문장이 저에게는 묵직한 당부로 읽혔습니다. 부지런한 지능이 해주는 일에만 감탄하지 말라는 이야기로요. 저는 감탄하는 쪽이었거든요. AI가 한 시간 걸릴 작업을 10초 만에 해낼 때마다 "와" 했고, 감탄이 끝나자마자 또 다른 새 도구로 옮겨가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부지런한 지능의 영역 안에서 도구를 갈아타는 일만 반복하고 있었던 거예요.


몰릭의 언어로 이 구분을 옮겨 보면 이렇게 됩니다.

부지런한 지능 = 자동화(automation)입니다. 기존에 하던 일을 더 빠르게 하는 것.

거대한 지능 = 증강(augmentation)입니다.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

몰릭은 이 차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기업이 AI로 생산성이 30% 올랐다는 연구 결과를 보면, 리더들은 본능적으로 "그러면 인력을 30% 줄이자"고 생각합니다. 그 산수는 쉽습니다. 정작 어려운 질문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한 명의 프로그래머가 100배 더 많은 코드를 작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떤 새로운 제품이 가능해지는가? 어떤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가?"

30%를 감축할지, 100배로 무엇을 새로 만들지. 같은 도구를 두고도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열리는 세계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리고 전자는 산수가 풀어주는 질문이지만, 후자는 누구도 답을 대신 해줄 수 없는 질문입니다.


3. '어떻게'의 방에서 '왜'로 나오기

지난 몇 달간 저는 AI로 참 많은 것을 만들었습니다. 노션 문서를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변환기, 투자 스크리너, 지식 관리를 위한 여러 도구들.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저는 꽤 능숙하게 답해왔습니다.

몰릭의 글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할지를 묻느라, '왜' 하는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고, 파이프라인을 다듬고, 도구를 하나 더 얹는 일에 저는 오래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 작업들은 전부 의미가 있었고 성취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몰릭의 질문 앞에서 저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100배의 생산성을 가진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것"에 대해 저는 한 번도 진지하게 상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몰릭이 기업에 던진 이 질문을 저 자신에게 옮기면 이렇게 됩니다.

'나는 AI로 무엇이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어떻게'의 질문이 아닙니다. '무엇'과 '왜'의 질문입니다. 그래서 답하기 어렵습니다. '어떻게'의 질문은 검색하면 답이 나옵니다. 누군가 먼저 해본 사람이 있고, 따라 할 방법론이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될 수 있는가'는 달라요. 아무도 대신 답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도망갑니다. 답할 수 있는 작은 질문들로요. "어떻게 하면 더 빨리 요약할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생산할까", "어떻게 하면 이 작업을 자동화할까". 이 질문들은 전부 쓸모 있습니다. 어느 영역에서는요. 하지만 저는 이 질문들이 제 사유를 미루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있습니다. '어떻게'의 방은 따뜻하고 안전합니다. 그 안에 있으면 '무엇이 되고 싶은가'를 묻지 않아도 되거든요.


4. 모든 순간이 나의 도메인을 만든다

다만 '무엇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 앞에서 저를 오래 붙잡아둔 다른 생각도 있었어요.

"그 질문에 답하려면 결국 도메인(domain)이 있어야 할 텐데..."

한 분야에 깊이 뿌리내린 사람이 AI를 쓸 때와 그렇지 않은 사람이 쓸 때, 결과물은 완전히 다릅니다. 도메인이 없으면 AI는 그저 도구일 뿐이지만, 도메인이 있으면 AI는 증폭기가 됩니다.

저는 오랫동안 제가 "도메인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투자에서는 대가들의 렌즈를 빌려 보고, AI에 대해서도 여러 전문가의 렌즈를 빌려 보고. 어디에서도 저만의 깊이가 없는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그 생각 자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도메인'을 너무 좁게 정의하고 있었거든요. 의사의 의학, 변호사의 법, 애널리스트의 재무. 그런 식의 단일 전문성만이 도메인이라고 여겼습니다. 그 기준에 맞지 않으니 "나는 도메인이 없다"고 스스로 판정해버린 것이지요.

그 좁은 정의를 내려놓고 지난 몇 년의 저를 돌아보니, 저는 한 영역에만 머물러 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투자를 공부하다가 예술로 건너가고, 예술에서 철학으로, 철학에서 다시 기록과 지식을 쌓는 방법으로. 어떤 이름표도 저를 온전히 설명하지 못했고, 그래서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왔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무작위로 흩어져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오랫동안 마음을 주고, 고민하고, 사유하고, 서로 연결해온 자리들이었습니다. 하나의 이름으로 묶이지 않을 뿐, 전부 제가 진심으로 들여다본 영역이었어요.

내가 오랫동안 마음을 준 것들. 그것도 도메인이 될 수 있습니다.

꼭 학위나 자격증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투자와 예술처럼 이질적인 관심사들이 만나는 교차점도 하나의 도메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교차점이야말로 가장 희귀한 도메인일지도 모릅니다.

생각해보면 '나는 도메인이 없다'는 느낌은 결국 도메인을 좁게 정의한 결과였습니다. 저 자신에게 행한 탈기묘화였던 셈입니다. 저의 낯선 조합을 익숙한 범주에 끼워 맞추려다, 거기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는 도메인이 없다"고 판정해버린 것이니까요. 몰릭이 기업에 대해 한 지적이, 제가 저 자신을 대하는 방식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습니다.

모든 순간이 저의 도메인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본 한 편의 글, 지난주에 들렀던 전시, 지난달에 복기했던 투자. 하나의 이름으로 묶이지 않을지라도, 그 전부가 언젠가 거대한 지능과 만날 때 쓰일 재료들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모든 순간이 더 재미있어집니다.


마치며

여전히 저는 "나는 AI로 무엇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선명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아마 당분간은 계속 그럴 것 같습니다. 누구도 답을 대신 해줄 수 없는 질문이니까요.

다만 AI를 다룰 때 품는 질문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걸 더 빨리 할 수 있지'에서 '내가 이걸로 무엇이 될 수 있지'로. '무엇을 자동화할까'에서 '무엇을 새로 상상할까'로. 방 하나를 옮겨 다니는 일일 뿐인데, 그 안에서 보이는 풍경은 꽤 다릅니다.

그리고 저녁에 스레드를 열 때, 'AI로 하루에 피드 100개 만드는 법' 같은 게시물이 눈에 들어오면 이제는 조금 다르게 읽히기 시작합니다. 저걸 따라 할지 말지가 아니라, 저 사람은 이 엄청난 기술 앞에서 어떤 질문을 고른 걸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그리고 같은 물음이 저에게도 돌아옵니다. 너는 어떤 질문을 고르고 있느냐고.

'더 많이, 더 빨리'의 자리에 '나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를 조용히 놓아두고, 그 질문 앞에 잠시 머물러 보려 합니다. 매일의 그 작은 머무름이, 언젠가 저를 낯선 영토 어딘가로 데려가 주기를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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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길들이지 않기 — 자동화 너머, 증강이라는 상상력

나는 AI에게 무엇을 시킬 수 있을까. 이 질문이 너무 익숙해진 사이, 다른 질문 하나가 자꾸 뒤로 밀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AI로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답이 없는 이 질문 앞에 잠시 머물러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