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을 가꾸다가 - 쌓아온 취향을 부정하지 않고 넓히는 일

“모르는 곡 들으면 더 좋을 것 같아.” 두에냐스의 브람스를 들으며 익숙한 취향을 돌아봤습니다. 좋아해온 시간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낯선 해석에도 마음을 열어둘 수 있을까요.

무대 앞에 선 마리아 두에냐스와 오케스트라 단원들

마리아 두에냐스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었습니다. 처음 보는 연주자였어요. 기교와 표현력이 훌륭하다고 느끼면서도 해석은 어딘가 낯설었습니다. 공연을 보며 남긴 메모에는 이런 말이 있었어요. “모르는 곡 들으면 더 좋을 것 같아.”

지인에게 두에냐스의 해석이 조금 과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지인은 그동안 제가 많이 들어온 연주들의 영향일 수 있다고 했어요. 제가 익숙하게 들어온 해석과 다른 방식으로 연주하기 때문에 어색하게 들릴 수 있다고요. 그 말을 듣고 최근 독서모임에서 읽은 『모든 것은 예측 가능하다』가 떠올랐습니다. 베이지안 사고방식을 다룬 책이었어요.

새로운 증거를 만나기 전에 가지고 있던 사전 믿음(prior). 이 개념을 떠올리니 제 감상을 다시 살펴보게 됐습니다. 오래 들어온 연주들이 이번 음악을 듣기 전부터 어떤 기대를 만들고 있었을까요. 두에냐스의 해석이 어색했던 걸까요, 제게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나 있었던 걸까요.


취향에 갇힌 건 아닐까

취향을 가꾸려고 오랫동안 노력해왔습니다. 그 덕분에 예전에는 지나쳤을 차이도 듣게 됐고, 좋아하는 연주도 생겼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연주들에 대한 익숙함이 다른 해석에 마음을 여는 일을 어렵게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취향을 가꾸려다가 취향의 노예가 된 건 아닐까. 종종 하던 고민이 그날의 음악을 듣고 다시 떠올랐습니다.


좋아해온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그렇다고 쌓아온 취향을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오래 듣고 좋아한 연주들은 음악을 섬세하게 들을 수 있게 해준 바탕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거기에는 음악을 들으며 받은 기쁨도 있어요. 어떤 해석에 익숙해졌다는 이유로 그 기쁨까지 잘못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나를 넓히는 일이 지금까지의 나를 잘못으로 만드는 일일 필요는 없어요.

그날 두에냐스의 연주에 전적으로 공감이 갔던 건 아니에요. 다만 낯설게 느낀 이유를 조금 더 열어둘 수 있게 됐습니다. 익숙한 해석의 영향이 있었을 가능성과, 그 연주가 제 마음을 충분히 움직이지 못했다는 경험은 함께 남을 수 있었어요.


다음 연주를 향해

그래도 경험의 범위는 넓혀보고 싶습니다. 오래 사랑한 연주들이 음악이 들려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 것은 아닐 테니까요.

다양한 연주를 통해 여러 해석을 만나기. 나를 잠시 내려두고, 내가 좋아하던 방식과 다른 연주에도 시간을 내어 귀를 기울이기. 어떤 기대가 어긋났는지, 그 연주자는 그 자리에서 무엇을 들려주려 했는지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귀 기울이기. 그렇게 사전 믿음을 형성하는 경험의 범위를 넓혀갈 수 있겠지요.

그 뒤에도 예전부터 좋아하던 연주를 더 좋아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여러 해석을 만나고 돌아온 ‘나는 이게 좋아’에는 처음과 다른 이해가 담겨 있을 것 같아요. 다른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그중에서도 제 마음이 더 움직이는 곳을 말하게 될 테니까요.

어느 날 전혀 다른 해석에 마음을 빼앗길 수도 있겠지요. 좋아하는 것이 달라져도, 예전에 사랑했던 것이 잘못이 되는 것은 아닐 거예요. 그때 받은 기쁨은 그대로 남아 있을 테니까요.

책과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가 공연장까지 따라와, 음악을 듣는 제 모습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취향에 갇힌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은 여전히 남아 있어요. 다만 그동안의 취향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앞으로 무엇을 좋아하게 될지는 조금 더 열어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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