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 Gibson의 『The Street Photographer’s Manual』을 계속 읽고 있습니다. 지난 글에서는 헤매는 일부터 몰입과 사진 버리기까지, 책에서 만난 여러 화두를 두루 살펴봤습니다. 이번에는 그중 우연과 통제에 조금 더 머물러보려 합니다.
깁슨은 거리사진을 ‘계산된 우연(controlled luck)’이라고 표현합니다. 거리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정할 수 없지만, 어디에 서서 무엇을 프레임에 넣고 언제 셔터를 누를지는 사진가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죠.
처음에는 통제할 수 있는 데까지 통제한 뒤, 나머지를 우연에 맡긴다는 뜻으로 읽었습니다. 그런데 준비를 마친 뒤에도 우연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마음속에는 찍고 싶은 사진이 있을 테니까요.
빨간 우산의 소녀는 오지 않았다
비가 내리는 런던 거리에서 깁슨은 구름 모양의 얼룩을 발견합니다.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그 앞을 지나갑니다. 그는 빨간 장화를 신고 빨간 우산을 든 소녀가 구름 아래를 지나가는 장면을 상상합니다.
하지만 그런 소녀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대신 사진에 담긴 것은 수수한 옷차림의 남자였습니다. 남자의 키도 깁슨이 바라던 것과 달랐습니다. 남자는 구름 아래로 깔끔하게 지나가지 않고, 구름과 겹쳐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겹침 때문에 벽의 얼룩이 우산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보이게 됩니다.
사진: David Gibson, London, 2008. 『The Street Photographer's Manual』에서.
깁슨은 여전히 색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아쉬움이 사라진 사진은 아니었던 셈이죠. 다만 다른 불완전함들은 사진 안에서 제 역할을 했습니다. 처음 상상했던 장면에는 없던 재미가 생겼습니다.
자기가 상상한 좋은 사진과 다른 방식으로 좋은 사진이 나타났을 때, 그것을 알아보고 받아들이는 것. 저는 이 태도가 무척 좋았습니다.
스톡홀름에서도 깁슨은 구름처럼 보이는 벽을 발견합니다. 이번에는 회벽이 벗겨진 자국이 여러 개였고, 배경도 복잡했습니다. 구름과 지나가는 사람을 한 장의 사진 안에서 어울리게 담기가 더 어려웠던 셈입니다. 그는 가로와 세로로 구도를 바꿔가며 오래 찍었지만, 결과를 돌아보며 너무 애쓴 사진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골라낸 사진도 어느 정도는 괜찮았으나, 런던 사진처럼 자연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사진: David Gibson, Stockholm, 2012. 『The Street Photographer's Manual』에서.
런던에서는 바라던 모습과 다른 남자가 지나갔고, 구름과 우산의 뜻밖의 겹침이 사진을 살렸습니다. 스톡홀름에서는 구름과 사람이 어울리는 장면을 만들려고 애썼지만, 그 노력만큼 사진이 좋아지지는 않았습니다. 두 사례를 보며 원하는 장면을 기다리는 동안 놓치는 것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상한 모습에 꼭 맞는 것만 찾다 보면, 눈앞에 다른 좋은 장면이 생겨도 지나칠 수 있을 테니까요. 빨간 우산의 소녀만 찾고 있었다면, 우산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파도가 어디로 데려갈지
이 대목은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제가 오래 좋아해온 대사와 이어집니다.
“파도가 어디로 데려갈지 누가 알겠어.”
2022년, 클래식과 조금 거리를 두고 싶다는 글을 쓰면서 이런 질문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영역이 너무 좁은 건 아닐까?”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고는 싶지만, 클래식만 사랑하는 사람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클래식 밖에서도 그만큼 마음을 줄 수 있는 것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파도가 내가 원하는 줄도 몰랐던 곳으로 데려가주지 않을까?
제가 이미 아는 아름다움은 소중합니다. 오래 좋아했기 때문에 길러진 감각도 있을 겁니다. 다만 그 감각이 앞으로 만날 아름다움의 범위까지 정해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재즈에도 그래서 마음이 갑니다. 함께 연주할 곡을 정해두어도, 그 안에서 다른 연주자가 어떤 소리를 들려줄지는 미리 알 수 없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자신의 연주로 응답하면서 음악은 이어집니다. 혼자 구상할 때는 떠올리지 못했던 음악이 함께 연주하는 동안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 그 가능성이 좋습니다.
깁슨의 사진을 보며 그 태도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찍고 싶은 장면을 상상하며 준비하되, 막상 눈앞에 펼쳐진 장면이 다르다면 거기에 맞춰 다시 선택하는 것. 준비해온 만큼 잘 찍고 싶지만, 준비하며 생각하지 못한 것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파도에 몸을 맡긴다는 말에도 그런 적극적인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어디로든 흘러가면 좋다고 여기는 마음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낯선 곳에 도착했을 때 그곳을 살펴보는 일 말입니다.
주고받는 동안 생기는 것
재즈를 생각하다 보면 사람 사이의 대화도 떠오릅니다. 상대의 말을 듣고 나서야 제 안에서 생겨나는 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준비한 이야기와 상대가 준비한 이야기가 만나, 혼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곳으로 대화가 흘러갈 수도 있겠죠.
깊이 교감하고 싶다는 바람은 소중합니다. 다만 그 교감이 꼭 같은 취향이나 제가 상상한 분위기에서만 생길지는 아직 모르는 일입니다. 좋아하는 것이 같아서 반가울 수도 있고, 제게는 낯선 것을 상대가 왜 좋아하는지 듣다가 가까워질 수도 있을 테니까요.
서로에게 무엇을 건넬 수 있는지는 주고받는 동안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상대가 제가 기대한 말을 하는지에만 마음을 쓰면, 예상 밖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지 못할 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하려던 말을 잠시 미뤄두고 듣다 보면, 처음에는 떠올리지 못했던 것이 궁금해지기도 하겠지요.
제가 바라는 교감의 모습이 있어도, 실제 대화가 그 모습에서 벗어날 여지는 남겨두고 싶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그 안에서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을 알아볼 수 있도록요.
책 속에서 깁슨은 원하던 소녀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찍은 남자의 사진에는 소녀를 상상할 때는 없었던 좋음이 있었습니다.
그 장면이 오래 생각날 것 같습니다. 다음에 카메라를 들 때는, 제가 기다리던 장면이 오지 않은 자리도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당신의 챗봇은 이제 단 한 명의 청중, 바로 당신만을 위해 만든 피자 한 조각을 내놓을 준비가 돼 있다.”
기사 요약
여행 정보를 얻는 방식이 가이드북에서 리뷰 플랫폼으로, 다시 TikTok과 AI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AI도 TikTok처럼 사람들을 똑같은 장소로 몰고 갈 것 같지만, 기사는 반대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AI는 사용자의 취향과 과거 맥락을 반영해 사람마다 다른 여행을 추천할 수 있습니다. 대중에게 가장 좋은 곳이 아닌, 한 사람에게 가장 맞는 곳을 추천하는 거죠.
담은순간들 생각
AI가 사람마다 다른 답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점은 흥미로웠지만, 개인화가 늘 좋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필터버블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나에게 맞는 것”을 잘 찾아주는 능력 때문에 역설적으로 “제가 아직 좋아하는지조차 모르는 것”을 만날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AI가 제가 현대미술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해볼게요. 현대미술 공간을 추천하고, 제가 만족하면 다음에도 현대미술을 추천합니다. 그러면 AI는 제가 현대미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되고, 저는 다시 그 안에서 만족합니다.
추천은 정확해지는데, 저는 조금씩 좁아집니다. 사람마다 다른 곳을 추천할 수 있어도, 제게는 매번 ‘나다운 것’만 반복될 수 있는 거예요.
개인화라는 말을 수요자 쪽에만 가두지 않고, 공급자가 자기 취향과 안목으로 세계를 큐레이션하는 방식까지 확장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언젠가 읽은 이코노미스트의 「Why travel guidebooks are not going anywhere」에서는 여행 가이드북의 차별성은 더 이상 모든 정보를 빠짐없이 담는 데 있지 않고, 진정성과 큐레이션에 있다고 했습니다. 정보가 넘칠수록 오랜 시간 쌓인 신뢰와 브랜드의 안목이 중요해진다는 거죠.
AI가 제공하는 건 수요자 쪽의 개인화입니다.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제게 맞는 여행지와 피자집을 골라주는 거죠. 큐레이션은 공급자 쪽의 개인화로도 볼 수 있습니다. Lonely Planet이나 제가 좋아하는 Monocle은 편집자들의 취향과 안목을 통과한 세계를 독자에게 건넵니다. 저는 그들이 고른 세계를 믿고, 제 취향 바깥을 바라보게 됩니다.
AI는 우리 모두를 같은 장소에서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각자를 자기 취향 안에 가둘 수도 있습니다. 반면 편집자의 안목은 낯선 세계로 독자를 초대해 독자의 취향을 넓혀줄 수 있습니다.
요즘 제 마음은 이미 좋아하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데서, 제가 아직 좋아하는지조차 모르는 것을 만나는 쪽으로 향합니다. 제 취향 바깥으로 일부러 한 걸음 나가보는 탐색(exploration)을 남겨두고 싶은 거죠.
독서모임을 하는 이유도 비슷한 것 같아요. 제가 혼자라면 고르지 않았을 책을 만나기도 하고, 같은 책을 전혀 다르게 읽어낸 사람의 해석을 만나기도 하니까요. 제 취향에 맞는 것을 골라주는 알고리즘과는 다른 방식으로, 독서모임은 제 안에 다른 입력을 넣는 아날로그적 알고리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추천은 제 취향을 정확히 맞히는 일일까요. 제 취향 바깥까지 데려가는 일일까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어느 순간 셔터를 눌러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관점과 태도였습니다. 어떻게 보고 어떻게 돌아다니며 우연을 받아들이는가를 다루고 있는데요, 사진가는 거리에 머물러 관찰하고, 우연에 열려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진에 관한 책을 읽는데, 제가 오래 생각해온 화두들이 사진 안에 이미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글은 그 화두들을 스케치하듯 담아볼게요.
헤매는 사진
사진을 찍으러 나갈 때 보통 “오늘 뭘 찍지?”부터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하는 출발점은 조금 다른 곳에 있는 것 같아요.
일단 나가서 돌아다니고, 내가 무엇에 반응하는지를 보는 것.
그렇다고 완전히 아무 계획 없이 헤매는 건 아닙니다. 책에서는 재즈 연주자를 이야기합니다. 연주자는 어디로 갈지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지만, 연주하는 순간에는 모든 것을 미리 정해두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통제하면서도 우연과 그 순간의 감각에 열려 있습니다.
거리사진가도 비슷합니다. 사진을 찍겠다는 방향은 있지만, 어떤 장면을 만나게 될지는 모릅니다. 거리를 걷고 기다리며, 때로는 목적 없이 헤매다가 어느 순간 장면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곤 하죠. 저자는 이런 상태를 거리사진의 다른 이름으로 ‘길 잃은 사진’(lost photography)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헤매는 일이 방향을 잃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아무것도 찍지 못한 채 돌아오는 날도 있겠지만, 그 시간을 실패라고만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내가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어떤 장면 앞에서 걸음을 늦추는지, 무엇은 그냥 지나치는지를 알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니까요.
우연을 위해 준비하다
좋은 사진은 우연히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장면이 좋은 사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보는 능력까지 우연일 수는 없겠죠.
우연을 기다리면서도, 그 우연을 알아볼 눈은 준비해두는 것.
나를 상황 속에 두고, 나타난 장면을 알아볼 수 있도록 눈을 준비해두는 일. 모든 것을 계획한다고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채 기다린다고 우연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통제와 우연 사이에 자신을 놓아두는 것. 이 책에서 말하는 거리사진은 그런 상태에 가까웠습니다.
장비보다 사진집
장면을 알아보는 눈은 장비만으로 생기지 않습니다.
좋은 사진을 많이 보고, 여러 사진가의 작업을 접하고, 사진집을 곁에 두는 일. 저자는 사진집이 사진가에게 영감을 주는 가장 중요한 매체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인쇄된 페이지는 화면의 방해 없이 한 작업을 오래 바라보게 하고, 사진을 더 온전히 흡수하게 합니다.
책 속에는 “장비보다 책을 사라”는 조언도 나옵니다. 비싼 카메라를 하나 더 사는 것보다 사진집 몇 권을 오래 보는 일이 사진을 바라보는 범위를 더 넓혀줄 수 있다면서요.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
카메라를 들고 나서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건물 사이로 떨어지는 빛의 각도, 나뭇잎에 드리운 그림자의 결, 콘크리트 벽의 거친 질감과 옷감의 주름, 사람들 얼굴 위의 명암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디를 가든 빛과 형태와 질감을 먼저 보게 됐고, 걷는 일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장면이 사진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처음부터 타고나는 것이라기보다, 오래 보고 비교하고 다시 보는 과정에서 조금씩 생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왜 그 장면 앞에서 멈추는지, 무엇이 나를 끌어당기는지, 다른 사람의 좋은 사진을 보고도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어디서부터 내 기준을 세울지를 알아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기술로부터의 자유
기술에 대한 이야기도 다른 방향으로 읽혔습니다. ISO·셔터속도·조리개를 아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중요한 건 촬영할 때 기술을 의식하느라 장면을 놓치지 않을 만큼 손에 익히는 일입니다.
처음에는 어떤 일을 하든 방법과 순서를 계속 생각합니다. 반복하다 보면 방법이 몸에 남고, 그때부터는 방법 자체를 의식하지 않은 채 눈앞의 장면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저자는 카메라 설정에 정답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편하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카메라를 골라 기술을 뒤로 물리라고 말합니다. 기술을 익혀 기술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사진에는 사진가가 담겨있다
사진은 어느 정도 가르칠 수 있지만, 결국 사진가 자신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진가의 관심과 태도는 사진 안에 남습니다.
그냥 눈에 들어온 장면을 찍어 올렸을 뿐인데, 사진을 본 지인이 사진에서 제가 느껴진다고 말하거나, 제가 평소 생각하던 화두들이 느껴진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조금 놀랐습니다. 찍는 순간에는 그런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거든요.
사진은 카메라를 드는 순간에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평소 무엇을 보고, 무엇에 마음을 두는지,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지를 가꾸는 일도 사진의 일부였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일상을 잘 가꾸어야 한다는 것. 분야를 막론하고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집착, 몰입, 숙성된 몰입
좋은 사진가들에게는 몇 년에 걸친 강렬한 집중의 시간이 있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한 가지에 깊이 들어가면 삶이 좁아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만 보고, 그림자만 보고, 빛과 색과 프레임만 보는 시간. 다른 것들은 잠시 뒤로 밀어두고 한 가지에 집중하는 시간.
그런데 한 가지를 오래 바라본 시간은 어느 순간 다른 것들과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좁아진 줄 알았던 삶이 다른 방향으로 넓어지는 전환점이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제 과거를 돌아봤습니다.
저는 무언가에 마음을 주면 깊이 빠지는 편이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취약해졌고,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으려고 클래식과 거리를 두려 했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열정이 사라진 건 아니었습니다. 그 마음은 운동으로 옮겨갔고, 다른 방식으로 계속 살아 있었습니다.
정보의 양이 질을 압도하는 시대, 인공지능(AI)이 생성하는 방대한 콘텐츠의 파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을 식별할 수 있을까요? AI는 대개 최고의 자료보다는 자주 논의되거나 쉽게 접근 가능한 정보를 우선시하며, 방대한 빅데이터를 학습시킨 대규모 언어 모델(LLM)은 그럴듯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다루지 못한 채 피상적인 답변을 내놓곤 합니다. 그 '그럴듯함'은 때로 더 큰 혼란을 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실은 피상적인 이해를 넘어,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안목'의 중요성을 깨닫게 합니다. 이런 안목은 단순히 많은 데이터를 접하는 것만으로는 길러지지 않습니다. 꾸준히 '양질의 것들'을 의식적으로 접하고, 깊이 있게 소화하는 과정을 통해 연마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정보 과잉의 시대에 어떻게 하면 이러한 '안목'을 기르고,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주체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그 여정을 탐색하고자 합니다.
AI와 빅데이터의 그럴듯함, 그 이면의 함정
인공지능은 기존의 널리 알려진 방대한 정보를 신속하게 처리하고 요약하는 데에는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AI가 활용하는 정보의 '질'까지 무조건 신뢰하기는 어렵습니다. 양질의 자료보다는 온라인상에서 자주 논의되거나 쉽게 접근 가능한 자료를 우선적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정제되고 검증된 내용을 담고 있는 유료 구독이 필요하거나 특정 데이터베이스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고급 정보보다는, 대중적인 뉴스 기사나 블로그 게시물처럼 즉각적으로 확보 가능한 출처를 참고하는 것이죠. 이는 결과적으로 정보의 편향이나 피상적인 분석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진정한 통찰과는 거리가 먼 결론에 도달하게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빅데이터'에 대한 맹신 역시 경계해야 할 지점입니다. 단순히 데이터의 양이 많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질 높은 분석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실제로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의미 있는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과정입니다. 언젠가 대규모 언어 모델(LLM)에 부동산 빅데이터를 투입하여 분석을 시도해본 경험이 있는데요, 결과물은 표면적으로는 매우 그럴듯해 보였지만, 현실의 복잡성과 미묘한 맥락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럴듯하게 포장된 내용이 더 큰 오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에 섬뜩함마저 들었습니다. 그럴듯함에 속지 않고 그 속에서 진주를 골라낼 수 있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입니다.
'진짜'를 알아보는 힘: 양질의 자극에 대한 의식적인 노출
그렇다면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 해야 그럴듯함에 현혹되지 않고 본질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을까요? 그 시작은 '다양한 양질의 자극에 대한 의식적인 노출(exposure)'에 있습니다. 단순히 정보를 많이 접하는 것을 넘어, 어떤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만나느냐가 우리의 감각과 지성을 단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감각이나 지성이 퇴화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양한 양질의 자극에 상시로 노출되어 있어야 합니다. 물론 혼자 책을 읽어도, 그 책의 내용이 어느 정도 자신에게 자극을 줍니다. 그러나 자극은 다양할수록 좋겠지요. 독서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전시, 답사, 강연에 참여하는 일, 그리고 좋은 자극을 줄 수 있는 사람과의 만남이 필요합니다. 퇴화하지 않기 위해서는 양질의 자극 속에 자신을 놓아두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의 안목은 일종의 근육과 같아서, 꾸준히 양질의 자극을 통해 단련하지 않으면 그 기능이 저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수동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대신 적극적으로 양질의 경험을 찾아 나서고 다양한 자극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주체적인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알고리즘의 유혹: 보이지 않는 손에 흔들리는 선택
하지만 이렇게 의식적으로 다양한 양질의 자극에 자신을 노출하려는 노력은 오늘날 강력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리 일상을 깊숙이 파고든 알고리즘 때문입니다. SNS 피드, 쇼핑몰의 추천 상품,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알고리즘은 일상에서 끊임없이 우리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편리함을 제공하는 동시에 알고리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생각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거나 제한함으로써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빼앗고, 결과적으로 취향의 단순화·몰개성화·획일화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뉴요커(The New Yorker)의 한 기사는 이러한 '알고리즘 불안(Algorithmic Anxiety)' 현상을 심층적으로 다룹니다.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스스로 충분히 생각하고 판단할 시간을 갖기 전에 원하는 것을 예측하고 추천합니다. 알고리즘의 추천에 끊임없이 노출되면서 우리가 선택한 것이 과연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알고리즘이 우리에게 원하도록 교묘하게 만드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디지털 홍수 속 나만의 안식처: 양질의 큐레이션과 종이 잡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알고리즘의 보이지 않는 손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양질의 정보를 선택하고, 소셜 미디어 피드 바깥에서 자신만의 취향을 탐구할 수 있을까요? 그 핵심은 '양질의 큐레이션'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데 있습니다.편집자의 깊이 있는 안목과 철학이 담긴 콘텐츠는 알고리즘이 제공하기 어려운 다채로운 자극과 깊이 있는 관점을 선사합니다. 이러한 양질의 큐레이션의 대표적인 예 중 하나가 바로 '잡지', 특히 '종이 잡지'입니다.
종이 잡지가 지닌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다양한 콘텐츠와 우연히 마주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알고리즘에 기반한 온라인 환경에서는 자신의 관심사를 벗어나는 정보를 만나기 어렵지만, 종이 잡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주제나 이미지와 연이 닿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특히 지금은 검색어조차 떠올리기 어려운 머나먼 과거의 콘텐츠나 분위기를 접하는 데에는 종이 잡지만큼 좋은 매체도 드뭅니다. 저 역시 작업을 위한 레퍼런스를 찾을 때 종이 잡지를 많이 활용하곤 합니다. 특별한 목적 없이 죽 훑어보다가 아이디어나 작업의 방향과 연결될 만한 이미지를 발견하면 스크랩하여 아이디어 보드를 만들곤 했는데요, 이러한 과정 자체가 알고리즘의 추천과는 다른 즐거움과 자극을 주었습니다.
시대의 거울, 문화의 기록: 한 시대를 대표한 잡지의 힘
종이 잡지가 지닌 이러한 발견의 즐거움과 자극은, 잡지가 한 시대의 문화와 지성을 깊이 있게 담아낸 '양질의 큐레이션'의 정수일 때 더욱 커집니다. 저는 2년 전 주말마다 국립중앙도서관을 찾아 GQ 국내판을 정주행했는데요, '종이 잡지'를 주제로 다룬 잡지(어반라이크 34호)에서 여러 전문가들이 GQ 초기판에 보낸 뜨거운 찬사가 계기가 되었습니다.
“패션을 비롯, 문화 전반에 걸친 강렬한 콘텐츠로 대한민국 잡지 저널리즘의 잊혀지지 않는 순간들을 기록했다”
"GQ 초기 에디션, 창간호부터 2~3년 정도를 좋아한다. 당시 GQ가 쏟아냈던 콘텐츠는 그야말로 폭격이었다. 당시 에디터들(이충걸, 문일완, 송원석, 정석헌, 장우철)이 썼던 기사는 지금 봐도 훌륭하다. 도발적인 아젠다를 던지는 데 주저함이 없었고, 같은 사안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매체였다. 잡지가 뭘 해야 하는지, 잡지의 갈 길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줬다”
그 시절의 GQ를 읽으며 이 코멘트들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잡지가 시대를 대표하는 매체'였던 2000년대 초반, GQ는 주제 선정·필진의 역량· 섭외력 등 모든 면에서 그야말로 끝판왕이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잡지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아 그 시대적 소명은 다했을지언정, 그 정신성은 여전히 영원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양질의큐레이션이 담긴 종이 매체를 통해, 평소 제 관심 분야가 아니었거나 온라인이었다면 무심코 지나쳤을 법한 깊이 있는 콘텐츠들을 접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자극과 영감을 얻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추후 담은순간들에 과거 잡지에서 받은 영감도 다룰 예정입니다.)
오래된 미래: 낡은 잡지에서 발견하는 시간의 지혜
발행된 지 시간이 꽤 흐른 잡지에서는 현재의 일회성 리뷰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독특한 관점이 담겨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순히 최신 정보가 아니라는 이유로 멀리하기에는 그 안에 담긴 시대의 고민과 지혜,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발견의 즐거움이 너무나 큽니다.
10년도 더 된 '매거진 B' 에이솝 편(2013년 발행, 당시 브랜드명은 이솝이 아니라 '에이솝'이었습니다!)을 다시 펼쳐보며, 지금은 글로벌 브랜드가 된 이솝의 초기 철학과 당시의 시대상을 느끼며 남다른 감회에 젖기도 했습니다. 또 50년 가까이 된, 우리나라 모든 잡지의 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뿌리 깊은 나무'를 들춰보며 이 시대에 느끼기 힘든 정신성과 깊이에 감동을 받기도 했습니다. 오래된 잡지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잘 보존된 '타임캡슐'로서, 현재의 획일화된 시각에서 벗어나 세상을 보다 다채롭고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는 예상치 못한 창을 열어줍니다.
동시대를 보는 눈: 동시대 잡지의 역할과 가치
과거의 잡지들이 시간의 깊이를 통해 빛나는 통찰을 제공한다면, 동시대와 발맞추며 현재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 곁의 양질의 잡지들에도 꾸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과거의 지혜와 동시대의 흐름이 균형 있게 만날 때 비로소 세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깊이 있는 시각과 신뢰할 만한 정보를 꾸준히 제공하는 동시대의 잡지를 주체적으로 선택하여 꾸준히 보아야 합니다. (저는 정밀한 팩트에 기반하여 특유의 사고방식으로 국제 정세를 짚는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비즈니스·문화·디자인에 대한 독창적인 시선을 제시하는 '모노클(Monocle)'을 꾸준히 구독하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며 안목 있는 편집자의 철학이 담긴 양질의 큐레이션을 꾸준히 접하는 습관은, 단편적인 정보의 파편을 넘어 세상을 읽는 자신만의 프레임을 구축하고 깊이 있는 안목을 기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나만의 리듬 찾기: 디지털을 넘어 '아날로그적 알고리즘'으로
의식적으로 양질의 잡지를 찾아 읽는 행위는 단순히 정보를 얻는 것을 넘어, 디지털 시대의 정보 소비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우리를 자연스럽게 '아날로그적 경험'의 가치로 이끌기도 합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잔카를로 발레(Giancarlo Valle)는 프로젝트에서 실제가 축소된 모형을 중요하게 활용하는데요, '모노클(Monocle)'과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접근이 "인터넷 알고리즘에 대한 우리 스튜디오의 해독제"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었고 모두가 같은 것을 봅니다. 자신만의 아날로그적 알고리즘(analogue algorithm)을 만들지 않는 한 그 순환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습니다."
그의 지적처럼, 디지털 콘텐츠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만의 아날로그적 알고리즘은 의도적으로 다른 리듬과 질감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되어줍니다. 목적 없이 산책하며 마음 가는 대로 향하기, 목적 없이 서점을 거닐며 우연히 발견한 책을 들춰보는 것, 하루 중 특정 시간만이라도 의도적으로 디지털 기기를 멀리하고 주변을 관찰하거나 사색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제니퍼 이건(Jennifer Egan) 역시 한 인터뷰에서 이러한 아날로그적 접근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이나 옥스포드 영어 사전 같은 전통적인 레퍼런스를 여전히 활용하는데요, 물리적인 실체가 있는 자료가 주는 힘을 신뢰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모든 정보에 즉시 접근할 수 있는 디지털 방식으로는 따라올 수 없는 깊이가 있다는 것이죠. 이러한 생각은 새롭게 알게 된 단어를 컴퓨터 파일이 아닌 손으로 직접 노트에 정리하는 그녀의 오랜 습관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이처럼 그녀에게 물리적 실체가 있는 책과 손으로 기록하는 행위는, 디지털의 무한한 접근성만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생산성과 사유의 깊이를 가져다주며,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정보를 체화하는 '아날로그적 알고리즘'의 좋은 예입니다.
우연한 발견과 '공예적 즐거움'
제니퍼 이건이 언급한 물리적 매체와의 깊이 있는 상호작용은, 종이 매체가 선사하는 또 다른 중요한 가치, '예상치 못한 발견의 즐거움'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과거의 신문이나 잡지에는 편집자의 고뇌와 안목이 담긴 야심 찬 기획이나 실력 있는 필자의 깊이 있는 칼럼이 지면을 채웠습니다. 독자들은 설령 그 기사를 읽으려고 산 것이 아닐지라도, 이왕 샀으니 아까워서라도 한번은 읽게 되고, 예상외로 새로운 영감을 얻어 또 다른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이러한 '예상 밖의 콘텐츠 소비'는 종종 효율성과 '가성비'라는 잣대에 밀려 무용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우연한 만남과 어떻게 보면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과정 속에 창의성과 다채로운 사유가 싹트는 토양이 마련됩니다.
종이 매체를 한 장 한 장 넘기고, 마음에 드는 문장에 밑줄을 긋고, 여백에 짧은 생각을 메모하는 그 모든 아날로그적 행위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것을 넘어, 자신만의 의미를 능동적으로 구성해 나가는 과정이며, 여기에는 디지털이 제공하기 어려운 '공예적 즐거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스스로 정보를 탐색하고, 선택하고, 관계 맺는 주체적인 과정에서 오는 만족감.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스포티파이와 같은 플랫폼이 아무리 정교한 알고리즘으로 개인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한다 해도, 때로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이 있음에도 공허하다고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러한 '공예적 즐거움'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자신만의 손길과 노력을 거쳐 의미를 쌓아 올리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발견과 연결되는 기쁨이야말로 알고리즘의 효율성을 넘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깊이 있는 경험이 아닐까요.
정보의 파도 속, 나를 지키는 주체적인 삶
우리는 정보의 양이 그 어느 때보다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알고리즘이 보이지 않는 손처럼 우리의 일상과 생각에 깊숙이 관여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관점을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세상을 명료하게 바라보며 자신만의 생각과 취향을 가꾸어 나가는 여정은 우리 자신의 주체적인 선택과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알고리즘의 추천에 수동적으로 따르기보다 때로는 불편함과 비효율을 감수하더라도 스스로 찾아 나서고, 예상치 못한 만남을 즐기며, 자신만의 속도로 정보를 음미하고 내면화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능동적인 자세야말로 알고리즘과 AI가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 자신을 지키고, 진정으로 충만한 생활을 누리는 길일 것입니다.